택배기사 과로사·코로나19 집단감염 등 징후 있었지만 예방·대응책 미흡했다는 지적
소비자 마음 돌리기 위해 '획기적 대책' 필요...소통·책임 중시하는 젊은층 성향 고려해야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일어난 화재가 엿새 만에 완전 진화됐다. 사진은 지난 21일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소방관과 함께 건물 구조 안전진단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기업은 소비하지 않겠다."

지난 17일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일어난 화재가 엿새 만에 진화됐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번진 불평은 쉽사리 꺼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번 화재와 직접 연관이 없는 전범기 판매, 쿠팡이츠 갑질손님 등 다른 논란까지 지적하며 소셜미디어(SNS)에 잇따라 불매와 탈퇴를 선언하고 있다.

업계는 이러한 사태가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라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물류센터 화재가 불만을 쏟아내게 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할 말은 하는' 소비자들은 오래 전부터 회사의 사고 예방·대응책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작은 불씨들이 쌓여왔다

빅데이터 플랫폼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수는 이번 화재 사건을 계기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달 초 1021만여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지만 지난 20일 817만8963명으로 감소했고, 이중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고객은 지난 7일 대비 22만2193명 이탈하며 가장 큰 감소세를 보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분노는 기대수준과 현실 간의 격차가 클 때 발생한다"라며 "쿠팡은 창업 성공으로 소비자에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기대하게 했지만, 현실과 괴리가 커 소비자들의 실망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화재가 쿠팡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팬데믹 장기화로 전자상거래 호재가 본격화되면서 쿠팡은 매출 상승과 미국 뉴욕증시 상장 등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책임지는 기업'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지금의 사태가 마치 '하인리히의 법칙'과 같다고 말한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비슷한 징후들이 존재했지만 회사의 예방책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쿠팡은 자사를 성장궤도에 올려놓은 로켓배송의 이면에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힘든 택배기사를 외면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5월에도 쿠팡의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하며 근무환경 안전 관리에 대한 경종이 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화재 사건에서 물류센터 직원들이 규정에 따라 근무지에 휴대전화를 반입하지 못해 신고 시간이 지연됐고, 화재 초기진압에 필요한 스프링클러(자동 소화장치) 결함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쿠팡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회원들이 22일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이츠 등 음식 배달앱의 리뷰·별점 제도가 블랙컨슈머(악의적 소비자)를 양산하고 있다며 규탄했다. [사진=연합뉴스]

◇ 위기의 쿠팡, '획기적인 터닝포인트' 필요하다

현재 쿠팡은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부정적 여론을 쉽게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쿠팡이 획기적인 대책 마련 없이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로켓배송 등 충성고객을 확보했던 '록인'(lock-in) 전략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박은아 대구대 소비자심리학과 교수는 "배송시스템이라는 것은 어느 기업이나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라며 "소비자가 느끼는 배신감이 큰 만큼 철저하게 이번 사태를 다루지 않으면 위기가 올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탈률이 높은 MZ세대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은아 교수는 "젊은 소비층은 이제 경영자와 노동자를 상하관계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이들은 '내가 저 노동자였다면'과 같이 타인의 삶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주요 소비층이 소통과 책임을 중시하고 있는 만큼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도 나왔다.

서용구 교수는 "김범석 창업자에 준하는 무게감이 있는 인물이나, 로켓배송을 만든 개발자 등 회사에 오래 머물렀던 직원이 재발방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라며 "연봉이 높은 순이 아니라 진정한 '쿠팡맨'이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쿠팡은 강한승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을 내며 사고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강 대표가 쿠팡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쿠팡은 24일 경기도 이천 덕평물류센터의 직원 1446명를 수도권 20여개 물류센터에 이전 배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쿠팡]

한편 쿠팡은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숨진 경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김동식(52) 구조대장의 유가족을 평생 지원할 것이며 화재 피해지원센터를 운영해 인근 주민들에게 보상할 계획이다.

또한 일터를 잃은 직원 1400여 명의 전환배치를 완료했고, 화재로 개인 소지품이 소실된 직원에게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쿠팡이츠의 갑질 이용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악성 리뷰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고 절차도 개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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