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 서울
    Y
    21℃
    미세먼지 좋음
  • 경기
    Y
    21℃
    미세먼지 좋음
  • 인천
    B
    22℃
    미세먼지 좋음
  • 광주
    B
    20℃
    미세먼지 좋음
  • 대전
    B
    22℃
    미세먼지 좋음
  • 대구
    B
    21℃
    미세먼지 좋음
  • 울산
    B
    22℃
    미세먼지 좋음
  • 부산
    B
    22℃
    미세먼지 좋음
  • 강원
    B
    20℃
    미세먼지 좋음
  • 충북
    B
    20℃
    미세먼지 좋음
  • 충남
    B
    21℃
    미세먼지 좋음
  • 전북
    B
    21℃
    미세먼지 좋음
  • 전남
    B
    21℃
    미세먼지 좋음
  • 경북
    B
    21℃
    미세먼지 좋음
  • 경남
    B
    22℃
    미세먼지 좋음
  • 제주
    B
    20℃
    미세먼지 좋음
  • 세종
    B
    22℃
    미세먼지 좋음
최종편집 2021-09-21 21:47 (화)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⑳] 여름의 싸리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⑳] 여름의 싸리
  • 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 승인 2021.07.26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우리나라 사람들의 세간살이 곳곳에 빠지지 않는 나무 하나가 있다.

식물 공부를 시작하기 훨씬 전에 그 사실을 나는 할머니에게서 듣고 배웠다.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집은 울섶을 따라 이어지는 대문도 싸리를 엮어 만들었지. 할머니의 싸리나무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나는 할머니의 입을 통해 나오는 싸리나무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자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훌쩍 지났지만 싸리꽃 피는 여름이 오면 그이가 들려주던, 싸리나무 가득했던 살림살이 풍경이 내 앞에 복원되곤 한다.

우리네‘살이’에서 얻은 이름 ‘싸리’. ‘살다’의 어근인 ‘살-’에 접미사 ‘-이’가 붙어 파생된 ‘살이’라는 말이 또 한 번 가지를 쳐서 우리 나무 이름 ‘싸리’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싸리 가지를 엮어 만든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면 벗어둔 지게가 서 있다. 싸리로 짠 발채가 지게에 얹혀있고 땔감으로 쓸 싸리 서너 단이 묶여 그 안에 들어가 있다.

싸리로 초벽을 얽고 흙을 발라 세운 초가집 벽에는 싸리로 짠 삼태기와 채반과 멍석과 키와 빗자루가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머지않아 매싸리가 될 한 단의 싸리는 시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채 훈육의 도구로 나서야 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고. 그 온갖 집안 물건들이 지금은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부엌살림에서 싸리나무는 대 하나에도 쓰임이 달리 있다며 할머니는 그 사용법을 내게 긴밀하게 알려준 적이 있다.

복날 가마솥에서 닭이 얼마나 잘 익었는지 확인할 때는 싸리나무의 굵은 밑단을 써야 하고 제삿날 산적 꼬치를 꿸 때는 반드시 싸리나무의 가늘고 뾰족한 윗대를 써야 한다고.

고운 꽃이 꿀도 많아서 벌을 치기에 좋고, 어린 순은 묵나물로 먹고, 회창거리는 줄기는 끊어서 그늘에 말렸다가 차로 마시고, 엄지발가락만 한 굵기의 대는 활을 만드는 살로,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의 대는 밭에서 고춧대로, 얄브스름한 대는 한 단씩 얽어서 물에서 고기잡이 어롱으로 썼다는 싸리의 면면을 할머니는 어떤 고마움에 대한 화답처럼 내게 말하고는 했다.

여름이 오면 그래서 나의 마음은 부쩍 그들을 향하게 된다. 고약한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한 기세로 그 고운 꽃 피워내는 여름의 싸리에게로.

우리 문화에서 말하는 싸리나무는 같은 용도로 쓰인 서로 다른 종류의 싸리를 아우른 것이고, 실제로 우리 땅에는 ‘싸리’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싸리속 식물들이 산다.

싸리(왼쪽)와 참싸리(오른쪽). 포도송이처럼 모여 핀 꽃차례가 전체적으로 길어서 잎보다 두드러지면 싸리, 꽃차례가 작달막해서 마치 잎이 꽃을 둘러싼 것 같으면 참싸리다. [사진: 허태임]
싸리(왼쪽)와 참싸리(오른쪽). 포도송이처럼 모여 핀 꽃차례가 전체적으로 길어서 잎보다 두드러지면 싸리, 꽃차례가 작달막해서 마치 잎이 꽃을 둘러싼 것 같으면 참싸리다. [사진=허태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에 두고 쓴 나무가 ‘싸리’와 ‘참싸리’다.

한반도 도처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지역의 불균형 없이 선조들은 이들을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둘은 사는 곳과 쓰임이 거의 비슷하지만 생김새는 다르다.

포도송이처럼 모여 핀 꽃차례가 전체적으로 길어서 잎보다 두드러지면 싸리, 꽃차례가 작달막해서 꽃이 마치 잎에 싸인 것 같으면 참싸리다.

싸리와 달리 꽃받침 갈래 끝이 눈에 띄게 뾰족한 것도 참싸리의 특징이다.

싸리와 참싸리의 매력은 헐벗은 땅에서 특히 빛난다.

‘산림녹화’에 가장 적합한 식물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흙이 흙으로만 존재할 때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풀과 나무의 뿌리가 흙을 그러쥐고 있을 때야 비로소 숲이 만들어지고 산이 우거진다.

초록이 사라진 헐벗은 땅에 서둘러 뿌리를 내리고 생존을 알리는 나무가 싸리와 참싸리다. 맵게 내리쬐는 태양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애써 뿌리를 뻗어 흙을 거머쥐고 땅을 다지는 나무.

허물어진 땅은 싸리를 통해 초록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숲을 이루게 된다.

대형 산사태로 허물어졌던 경북 영천의 보현산과 강원도 정선의 오장폭포에서 나는 산과 숲을 살려내는 싸리의 위력을 보았다.

2003년 태풍 매미와 2006년 태풍 에위니아는 한반도를 맹렬히 할퀴며 각각 보현산과 오장폭포에 대형 산사태를 남겼다. 그 두 곳을 다시 세워 일으키는 데 싸리와 참싸리가 동원되었다.

그들이 투입되자 땅이 다져지고 흙은 또 다른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을 품어 초록의 힘을 뿜기 시작했다.

이게 다 타고난 그들의 본성 때문이다.

싸리와 참싸리는 드물게도 척박한 땅에서 거리낌 없이 자라는 식물이다. 심지어 그 척박한 땅을 개간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콩과식물이라는 혈통의 특성상 ‘뿌리혹박테리아’를 품고 있어서다.

식물이 자신의 뿌리에 세균을 들여 함께 사는 것을 말하는데, 세균은 식물의 뿌리에서 탄소와 영양분을 얻고 식물은 세균으로부터 질소화합물을 공급받는 공생의 원리다.

질소화합물은 땅과 식물에게 일종의 비료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그 원리를 알고 논밭 둘레에 콩을 둘러 심거나 콩을 먼저 심어 거둔 후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도 했다.

겨울이 오면 앙상하게 말라서 나무가 아닌 풀처럼 보이는 ‘풀싸리’도 우리 땅에 산다. 언뜻 보면 꽃이 싸리와 닮았지만 풀싸리는 꽃받침이 참싸리의 것처럼 갈래 끝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풀싸리에 비해 꽃이 훨씬 크고 생육이 왕성한 ‘중국풀싸리’가 최근 산림녹화용 식물로 국내에 들어와 우리 풀싸리와 참싸리와 싸리의 자리를 넘보기도 한다.

풀싸리는 겨울이 오면 앙상하게 말라서 나무가 아니라 마치 풀처럼 보인다. 꽃이 싸리와 닮았지만 꽃받침 갈래 끝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사진: 허태임]
풀싸리는 겨울이 오면 앙상하게 말라서 나무가 아니라 마치 풀처럼 보인다. 꽃이 싸리와 닮았지만 꽃받침 갈래 끝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사진=허태임]

극동아시아에 똑같이 퍼져 사는 싸리나 참싸리와 달리 전 세계 어디에도 없고 오직 한반도에만 사는 ‘해변싸리’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보길도에서 처음 채집되어 일본 식물학자에 의해 국제 식물 학계에 알려진 우리 식물이 해변싸리다.

지금은 보길도뿐만 아니라 전라도의 많은 해변을 비롯하여 경상도의 바닷가나 인근 산지에서도 해변싸리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잎에 반질반질한 광택이 있고 그 질감이 두꺼운 가죽 느낌이라 다른 종류의 싸리와 선명하게 구분된다.

싸리나 참싸리보다 꽃은 늦게 피는 편이다.

몇 해 전 나는 경북 울진 왕피천의 어느 길섶에서 유독 아름다운 해변싸리를 만난 기억이 있다. 싸리와 참싸리의 꽃자리가 잦아들 무렵이었다.

해변싸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고 오직 한반도에만 산다. 전라도의 많은 해변을 비롯하여 경상도의 바닷가나 인근 산지에서도 자란다. 잎에 반질반질한 광택이 있고 그 질감도 두꺼운 가죽 느낌이라 다른 종류의 싸리와 선명하게 구분된다. [사진=허태임]
해변싸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고 오직 한반도에만 산다. 전라도의 많은 해변을 비롯하여 경상도의 바닷가나 인근 산지에서도 자란다. 잎에 반질반질한 광택이 있고 그 질감도 두꺼운 가죽 느낌이라 다른 종류의 싸리와 선명하게 구분된다. [사진=허태임]

싸리나 참싸리처럼 한반도 전역에 널리 자라지만 그들과 달리 잎 끝이 뾰족하게 생겼다면 ‘조록싸리’다. 끝이 점차 가늘어지는 잎 모양이 조롱박을 떠올리게 한다고 조록싸리라고 부른다.

조록싸리와 닮았지만 꽃잎 색이 다양해서 꽃 한 송이에 색이 세 가지나 비친다는 삼색싸리도 있다. 남부지방의 산지에 드물게 자라는 편이다.

해남의 어느 오래된 사찰 근처에 있는 삼색싸리 군락지에서 나는 그들의 생육 상태를 살피는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조록싸리. 끝이 점차 가늘어지는 잎 모양이 조롱박을 떠올리게 한다고 조록싸리라고 부른다. 싸리나 참싸리처럼 우리나라 전역에 자란다. [사진=허태임]
조록싸리. 끝이 점차 가늘어지는 잎 모양이 조롱박을 떠올리게 한다고 조록싸리라고 부른다. 싸리나 참싸리처럼 우리나라 전역에 자란다. [사진=허태임]
삼색싸리. 조록싸리와 닮았지만 꽃 한 송이에 세 가지 색이 담겨 있다. 남부지방의 산지에 드물게 자라는 편이다. [사진: 허태임]
삼색싸리. 조록싸리와 닮았지만 꽃 한 송이에 세 가지 색이 담겨 있다. 남부지방의 산지에 드물게 자라는 편이다. [사진: 허태임]

사실 내가 우리 땅의 싸리 종류를 줄줄이 열거한 이유는 ‘검나무싸리’를 소개하고 싶어서다.

꽃의 자줏빛이 유독 짙어서 마치 검게 보인다고 해서 검나무싸리다. 꽃의 크기가 작은 편이라 북한에서는 ‘쇠싸리’라고 부른다. 싸리류의 꽃은 꽃잎이 상하좌우 사방에서 정확하게 포개져 밑씨를 안전하게 감싸서 보호하도록 짜여있다.

이를 선체(船體)에 비유해서 위와 아래의 꽃잎을 각각 깃발을 닮았다고 기판(旗瓣), 배밑의 용골을 닮았다고 용골판(龍骨瓣)이라고 부른다.

나머지 좌우의 날개 모양 꽃잎이 익판(翼瓣)이다. 익판이 두드러지게 커서 용골판을 덮고 있는 게 검나무싸리 꽃의 특징이고 꽃받침 갈래 조각이 두루뭉술하고 몸 전체에 털이 없는 점 등이 다른 싸리류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다.

검나무싸리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지구에서는 한반도의 지리산 일대, 일본 큐슈와 혼슈의 일부 지역에만 아주 드물게 산다.

검나무싸리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지구에서는 한반도의 지리산 일대, 일본 큐슈와 혼슈의 일부 지역에만 아주 드물게 산다. 익판이 두드러지게 커서 용골판을 덮고 있는 게 검나무싸리 꽃의 특징이고 꽃받침 갈래 조각이 두루뭉술하고 몸 전체에 털이 없는 점 등이 다른 싸리류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다. [사진: 허태임]
검나무싸리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지구에서는 한반도의 지리산 일대, 일본 큐슈와 혼슈의 일부 지역에만 아주 드물게 산다. 익판이 두드러지게 커서 용골판을 덮고 있는 게 검나무싸리 꽃의 특징이고 꽃받침 갈래 조각이 두루뭉술하고 몸 전체에 털이 없는 점 등이 다른 싸리류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다. [사진: 허태임]

지난가을에 나는 검나무싸리가 자라는 곳으로 조사를 간 적이 있다.

구상나무의 고사 현장을 확인하러 지리산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열매를 달고 있는 검나무싸리 무리가 정확하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검나무싸리의 그 흑자색 꽃을 보기 위해 나는 여름을 기다려왔다.

중복을 코앞에 둔 지난 주말에는 지리산에서 검나무싸리의 개화를 목격했다. 꽃 한 송이의 색은 특별하게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보통의 싸릿빛 자주색처럼 보였는데, 하지만 나무 전체의 검은 이미지는 나를 압도했다.

다른 싸리류에 비해 꽃은 작지만 꽃송이 수가 많아서 꽃차례는 자줏빛을 겹겹이 덧칠한 듯이 어둡고 짙은 농도를 뽐냈다.

볕이 쏟아지는 곳을 고수하는 여느 싸리들과 달리 검나무싸리는 그늘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리산에서 만난 그들은 대부분 그늘진 곳에서 검은빛을 두르고 있었다.

그 많던 여름의 싸리들 다 지고 나면 ‘꽃싸리’의 개화가 시작된다.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와 똑같아지는 추분 무렵에 만개하는 꽃. 앞서 소개한 싸리류와는 혈통이 달라서 꽃싸리는 별도의 꽃싸리속(Campylotropis)이라는 계통을 이룬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생물학적 지위를 갖는 침팬지와 오랑우탄의 관계도 이와 같다.

꽃싸리는 추분 무렵에 핀다. 싸리류와는 혈통이 달라서 꽃싸리는 별도의 꽃싸리속(Campylotropis)이라는 계통을 이룬다. 꽃이 풍성하고 화려해서 꽃이 좋은 싸리라는 뜻에서 꽃싸리라고 부른다. 중국과 몽골의 남부지역과 대만에 분포하고 한반도에는 경북 성주 근방에서 자란다. [사진: 허태임]
꽃싸리는 추분 무렵에 핀다. 싸리류와는 혈통이 달라서 꽃싸리는 별도의 꽃싸리속(Campylotropis)이라는 계통을 이룬다. 꽃이 풍성하고 화려해서 꽃이 좋은 싸리라는 뜻에서 꽃싸리라고 부른다. 중국과 몽골의 남부지역과 대만에 분포하고 한반도에는 경북 성주 근방에서 자란다. [사진: 허태임]

꽃대에 꽃이 두 송이씩 피는 싸리류와 달리 꽃싸리는 한 송이씩 핀다.

길게 나온 꽃자루는 끝이 살짝 꺾인 채 다소 큰 꽃을 달고 있는데, 한 송이, 한 송이 꽃이 수없이 모여 피어 전체적으로 풍성한 꽃차례를 이룬다. 꽃이 정말 이름처럼 예쁘다. 꽃싸리는 중국과 몽골의 남부지역과 대만에도 산다.

한반도에는 경북 성주 근방에서 자란다. 우리 할머니 산소가 근처에도 꽃싸리가 산다. 벌초하러 갔다가 거기 꽃싸리를 만난 게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봉분 다듬는 일에 극진했던 우리 할머니. 추석 다가오면 그 일 잊지 말라는 그이의 당부처럼 꽃싸리는 올해에도 때맞춰 필 것이다.

싸리가 지면 여름이 가고 꽃싸리가 피면 가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