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구포동 은행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구미 구포동 은행나무는 선비 김경장이 심은 정자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보호수 11-5-4호인 구미 구포동 은행나무는 구미 4공단 가까이에 옹기종기 모여 이룬 마을 끝자락에 서 있는 큰 나무다.

공단을 관통하는 구미시의 간선도로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서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길 맨 끝 언덕 위에 서 있다.

은행나무 앞에 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즐비하게 늘어선 구미 시내의 고층아파트 단지다.

이 은행나무는 마을 선조가 심어 키운 마을의 상징목이며 정자나무다.

나무 곁에는 정자가 놓여 있고, 정자 맞은 편에는 근사한 긴 의자까지 있어 마을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구포동은 마을 뒤에 거북의 생김새를 닮은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개울이 흘러서 ‘거북개’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구포(龜浦)라고 했다.

구포동에 속하는 자연마을로는 온천수가 나는 온조, 갈대가 아름다웠다는 가락, 소나무가 울창한 송산, 돌로 덮인 고개인 석현, 붓끝과 닮은 봉우리인 필봉 등이 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구미 구포동 은행나무는 보호수 표지석 뒤편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1606년(선조 39년)이 이 마을 출신인 구암(龜巖) 김경장(金慶長:1597~1653)이 아홉 살 때 고령 지방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장원한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나무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근거다.

이 은행나무가 이 자리에 뿌리를 처음 내린 건 2021년 기준으로 416년 전이다. 

김경장은 백일장에 장원하기 전에도 경사(經史)에 능통할 정도로 매우 총명한 학동으로 인근에 소문이 났던 인물이다.

나이 들어 그는 구미 지역 유림의 큰 봉우리인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학문의 세계를 구축했다.

1617년(광해군 9)에 향시에 합격했지만 고향 마을에서 후진 양성과 학문에만 힘썼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그의 가르침이 뛰어난 것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유생이 찾아왔다.

김경장은 자신을 ‘문림처사’라고 불렀다.

훗날 한성우윤을 지냈던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1587~1667)는 김경장을 조정에 천거하면서 “세상일을 피하여 조용히 사는 학덕 높은 선비이며, 성군이 다스리는 세상에 어울리는 인격이 고결한 선비”라고 평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지난 400년간 마을 선조의 숨결이 담긴 나무를 극진히 보호했다.

그 사이에 구미 구포동 은행나무는 곧은줄기를 하늘로 솟구쳐 올렸다.

나무 높이가 실제 약 18m쯤 되는데 나무가 서 있는 자리 주변에는 별다른 조형물이 없어서 실제보다 훨씬 커 보인다.

<구미 구포동 은행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5-4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9. 24.
·나무 종류 은행나무
·나이 400년
·나무 높이 30m
·둘레 4.5m
·소재지 구미시 구포동 418
·위도 36.129871, 경도 128.4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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