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미슐랭 셰프' 최지형, 그가 '순대'를 만드는 이유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스토리를 요리에 접목하고 싶었다"
"한식 콘텐츠를 외국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공간 만들고파"
"이북 음식과 순대가 주가 되는 다이닝 레스토랑 만들 것"

셰프 최지형[사진=이무현 기자]
셰프 최지형[사진=이무현 기자]

【뉴스퀘스트=이무현 기자】 셰프 최지형은 서른 여섯살 젊은 요리사다. 요리가 좋아 미국 유학을 떠나 존스 앤 웨일스대와 대학원에서 조리ㆍ호텔경영을 전공했다. 

학교를 마친 최지형은 뉴욕 미슐랭 2스타 마레아(Marea)를 거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며 실력을 다졌다. 

최지형은 미국에서의 안정적 셰프의 길을 뒤로한 채 지난 2017년 돌연 귀국한다. 우리나라에서 셰프로서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심이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고정관념을 깬 파격적인 요리를 선보이기 위한 '맛있는 고뇌'를 시작했다. 자신이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서 답을 찾겠다는 도전이었다.

오랜 고뇌의 시간 끝에 그가 내놓은 요리는 순대와 와인, 전통주를 매칭해 시장의 맛으로 여겨지던 순대를 품격 있는 맛으로 한단계 끌어올린 '최지형표 요리'였다. 트래디셔널(traditional), 곧 전통의 재해석이다. 유학파 셰프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는 내친김에 식당을 개업했다. 그리고 오픈 1년도 채 안돼 순대로 미슐랭 플레이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세계 최초이자 국내 외식시장에 충격파를 던진 '사건'이었다.

최지형은 지난해 또다른 변신을 위해 잠정 휴업을 선언하고 작은 와인바를 오픈하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순대를 만들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12일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다음은 최지형 셰프와 일문일답.

요리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

-집안에 미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도 어랄 적부터 자연스레 붓을 잡았다. 유아미술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미술을 공부했지만 청소년기에 들어서며 점차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상경계열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던 중 어머니께서 요식업계의 전망을 설명하시며 요리를 공부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어릴 때부터 자주 요리를 했고, 평소 흥미도 있던 터라 조리학과에 진학했다.  

유학을 간 계기는?

-전문대에서 공부하던 중 미국에서 요리하고 싶어 문화교류(J1)비자를 통해 마이애미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에서 근무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대부분 30여년 경력의 베테랑 요리사들이었는데, 책임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대부분의 책임자가 존스 앤 웨일스대 조리학과 출신이었다. 

요리사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대학 진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존스 앤 웨일스 대학에 진학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을 소개한다면?

-‘세계 1위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일레븐 매디슨 파크(EMP)가 기억에 남는다.

EMP의 경우 워낙 많은 셰프들이 지원을 하다 보니 실무 면접을 본다. 보통 오믈렛을 만들거나 특정 재료를 주는데, 나는 관자 2개를 이용해 요리해야 했다. 

대부분 신입 면접은 수셰프(부부주방장) 담당인데, 그날은 현장에 있던 오너인 다니엘 흄이 직접 면접을 보겠다 했다. 

너무 떨려서 무슨 음식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내 요리를 본 대니엘 흄은 전 요리사들을 불러 내 요리 설명을 듣게 했고 맛보게 했다.

면접 후 백스테이지에서 다니엘 흄은 “두 가지 관자를 모두 이용해 요리한 참가자는 몇 없었다”며 나의 태도를 칭찬했고, 대면 면접에 가게 되면 꼭 보여주라며 명함을 건넸다. 

다니엘 흄 명함 덕에 면접을 프리패스했고, 꿈에 그리던 식당에서도 일할수 있었다.

2년차에는 총 책임자인 브라이언 락우드와 함께 EMP 내 VIP를 위한 공간인 PDR(Private Dining Room) 담당 팀에 합류해 1대 1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저 좋아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수셰프로 근무 중이었던 송훈 셰프님의 입김이 꽤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웃음)

셰프 최지형에게 송훈은?

-송훈 셰프님은 나의 멘토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업장도 소개해 주셨고, 처음 순댓집을 오픈할 때 송 셰프님의 도움으로 연습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사석에서는 TV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한없이 온화하시지만, 요리 앞에서는 누구보다 꼼꼼하고 타협이 없는 분이다. 

함께 근무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귀국 후 업장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대학원 졸업 후 ‘미국에 있느냐?’, ‘한국으로 돌아가느냐?’의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귀국을 선택했고, 나의 업장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보통 유학을 다녀오면 그곳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할까를 생각하며 괴리가 생기는데, 나의 경우는 ‘순댓집’을 하자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어 큰 고민 없이 시작했다.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 1년 차에 미슐랭도 받고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순댓집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외가가 함경도 피난민 집안이어서 어릴 때부터 집에서 순대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당시 90세가 넘으셨던 할머니와 함께 마장동에 들려 돼지 피를 구매하고, 막걸리 뚜껑을 잘라 손가락으로 소를 채워 순대를 만들었던 기억은 유년 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 요리하며 배웠던 것 중 하나가 오래가는 브랜드들은 좋은 메뉴를 파는 게 아닌 ‘스토리’를 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스토리를 요리에 접목하고 싶었다. 트랜드를 따라가기 보다는 가장 나 답고, 잘할 수 있는 요리들에 대중성을 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순대를 하며 힘들지는 않았나?

-정말 힘들었다.(웃음) 우선 순대는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돼지 피와 소창은 위생문제도 있고 정식으로 거래가 되지 않아 매번 직접 사러 가야 했다. 

당시에는 자가용도 없던 터라 작은 손수레를 끌고 새벽 지하철을 타고 가서 사 왔다. 한여름에 마장동을 한곳 한곳 찾아다니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만드는 과정은 더 힘든데, 좁은 주방에서 돼지 피와 소창을 가공하고 순대에 들어가는 20여 개의 재료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한가지 재료가 상해서 모두 폐기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한번에 평균 120㎏의 순대를 만들었다. 속을 채우고, 삶고, 식히고, 소분하다 보면 어느새 다음날의 해가 떠 있었다.

게다가 점심에 팔아야 할 국밥 육수부터 명태 식해,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기타 메뉴들도 준비했으니 정말 모든 게 일이었다.

아직 젊은 친구들이 순대를 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너무 고생스럽다. 

그럼에도 순대를 고집하는 이유는?

-내 목표는 좋은 한식 콘텐츠로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다. 

한국을 넘어 외국에도 한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고, 모두가 아는 한식 브랜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봉준호 감독의 어록 중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거다”는 말을 좋아한다.

나 역시도 ‘순대’가 가장 나다운 것으로 생각하고, 가장 나다운 것을 곧 한국적인 것으로 생각해 순대를 고집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못해도 1주일에 2번은 순대를 만들었고, 총 500번은 넘게 만들었다. 순대를 만들 때마다 느끼는 것이 점점 나의 경험과 노하우가 순대에 녹여진다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순대는 계속할 것 같다.

순대에 집중하려 잠시 리뉴얼 중이라고 들었다. 

-처음으로 이야기하는데 새 업장 오픈까지 2달 정도 남은 상황이다. 가제는 ‘이북식 순대 오마카세’로 지었다. 이북 음식과 순대가 주가 되는 다이닝 형태의 한식 레스토랑을 만들고 있다. 

이번에는 양고기 순대와 오징어 순대, 아바이 순대 등 여러 순대 라인을 넣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형태를 만들어 보려 한다.  

다행히 ‘매니멀 트라이브’에 김대영 대표가 인테리어 및 기획을 도와줘 예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진행 중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무모한 도전이지만 김 대표와 함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이면 충분히 현실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갑작스레 와인바를 열었다.

-와인바는 나와 정재용 이사, 김호윤 셰프, 김대영 대표. 이렇게 4명이 의기투합한 프로젝트다. 

4명 모두 전통적인 외식업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패션 프로젝트가 필요하기도 했고 실험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와인바는 특유의 재치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또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유일한 형태의 업장이다.  

손님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레스토랑이라면 주저했겠지만, 와인바여서 함께 하게 됐다. 

최근에는 ‘피코크’와 손을 잡고 밀키트를 출시했다.

-친구인 ‘미슐랭 1스타’를 받은 황진성 셰프가 이미 밀키트를 하고 있어, 친구의 소개로 좋은 기회를 얻었다. 

밀키트의 기술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회사 측에 시스템도 훌륭했고, 돼지 소창부터 피까지 모두 취급 가능하다는 점도 놀라웠다. 
 
몇 차례 테이스팅과 수정을 거쳐 순대 전골, 순대 단품 등을 출시했는데, 80% 이상 퀄리티의 제품이 출시됐다.

2차 조리과정을 거치며 어쩔 수 없는 20% 정도의 맛 차이는 있지만, 충분히 타협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밀키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매우 긍정적이다. 최근에는 매니멀 트라이브 김대영 대표와 함께 바비큐 HACCP 공장도 추진 중이다. 

물론 밀키트가 요식업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음악에도 장르가 있듯 밀키트 역시 하나의 장르로 꾸준히 사랑받을 것 같다. 

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개그맨인데, 전국으로 진출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음반 발매를 통해 성공하는 이야기다. 

우리가 하는 레스토랑이 스탠딩 코미디고 밀키트가 음반이라 생각한다. 스탠딩 코미디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의 호흡이나 분위기를 즐길 수는 없지만, 밀키트를 통해 내 음식을 직접 먹을 수 없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 사업은 사람들의 관심과 자본이 들어와야 발전한다. 밀키트를 통해 나를 알게 된 소비자가 언젠가 내 음식을 먹기 위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밀키트는 하나의 장르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외식시장에 관한 생각도 궁금하다.

-우선 우리나라는 직관적인 맛과 비주얼, 트랜드같은 흐름 위주로 많이 평가된다. 

그렇다 보니 대중들에게 선택받기 위한 ‘공식’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흐름에 맞는 메뉴에 적당한 가격대만 맞추면 중간은 가는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외식시장을 지배하는 두 가지 단어가 바로 ‘가성비’와 ‘가심비’다.

2000년대 초반 내가 처음 일했던 곳은 종로 뒷골목에 간판 없는 집이었는데, 그럼에도 하루 50명가량의 예약이 있었다. 근처 유명한 식당 역시 민어 한 상 4인을 100만원에 파는 비싼 요릿집이었지만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많은 게 변하며 식생활에서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지만 ‘외식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소비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우리나라 전통의 맛과 내가 배운 서양 요리를 접목해 새로운 맛의 신세계를 여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직 젊기 때문에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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