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우리는 일상에서 공정거래란 말을 수도 없이 접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불공정문제는 시대적 화두가 된지 이미 오래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이는 인간생활의 숙명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세상만사를 공정거래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어떤 시대도 그것을 완전히 해결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그 문제를 끊임없이 궁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궁리하게 될 것이다. 제도로서의 공정거래가 어디에서 출발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그 주요 내용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 볼 생각이다. 공정거래제도는 그 시대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왔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혁명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상 앞에 놓여 있다. 앞으로 공정거래제도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공정의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이번 연재가 독자들이 공정거래제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필자로서는 더 없는 영광이 될 것이다.

【뉴스퀘스트=신동권 KDI연구위원 】 불공정 문제는 비단 현대사회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아도 인류가 경제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불공정성의 문제는 지속되어 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가격의 공정성 문제에 대해 최초로 문제 제기를 하였다고 하고, 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떤 물건을 그 가치보다 비싸게 팔거나 싸게 사는 것은 그 자체로 불공정하고 불법이다“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을 두고 현대적 의미에서 공정거래 제도의 맹아라 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16~18세기에 걸쳐 중상주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1600년 영국과 1602년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식민지 무역독점권을 주고 배타적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하였다.

공정거래 관점에서 보면 국가가 공인한 독점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상주의의 국가 독점주의, 식민지와의 배타적 거래 등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 등장한 사상가가 영국 글래스고우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였던 애덤 스미스였다.

동 시대의 계몽철학자인 흄의 진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사상, 그리고 중농주의의 자유방임사상에 영향을 받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을 통하여 자유시장경제라는 개념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어느 학자의 표현처럼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있었다면 경제학의 태초에는 애덤 스미스가 있는 셈이다. 갈브레이드는 국부론에 대하여 “사상이 정책에 대해 사상 최대의 타격을 가한 사건”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때는 바야흐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산업자본주의가 시작되던 18세기 중반기였다.

[국부론 초판(영인본): 필자 소장]

자유시장경제의 경전인 국부론이 공정거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놀랍게도 자유시장경제와 함께 독점이나 불공정거래 문제 역시 국부론을 통해 인류역사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이번 여름 역대급 무더위 속에서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국부론을 일독하였다. 방대하고도 난해한 내용으로 경제학의 문외한인 필자가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가히 역부족이었지만 최소한 국부론이 자유시장경제의 경전인 동시에 공정거래의 고전이라는 점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애덤 스미스는 최초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였으며 동시에 최초의 공정거래학자인 셈이다. 소위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으로 상징되는 그의 핵심적 주장도 국부론의 전모를 파악하지 않으면 진의가 왜곡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부론은 금·은이 아닌 노동생산량을 국부의 원천으로 삼고, 국부증진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 분업을 통한 거래의 발생, 독점가격과 자연가격 또는 경쟁가격, 소비자이익 등 오늘날 공정거래의 핵심적 개념들에 대하여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가격규제, 동업조합(길드)을 통한 경쟁제한, 규제의 폐해 등 중상주의가 낳은 폐단들에 대하여 방대한 사례를 들어가면서 집요한 비판의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완전히 자유롭고 공정한 자연적인 체계(natural system of perfect liberty and justice)는 어떤 방식으로 점차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를 장래의 정치가와 입법가의 지혜에 맡겨둘 수 밖에 없다”. 그가 말한 자유와 공정은 공정거래의 핵심적 가치이기도 하다.

반독점, 그리고 공정거래 정책이라는 강물의 발원지는 바로 이 지점이다. 시장경제와 공정거래는 서로 다르지 않다. 동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인 것이다.

필자소개

신동권은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군복무후 1992년부터 공직생활을 시작, 대부분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근무했다. 경희대학교 법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법학석사를 취득하였고, 공직생활 중 독일에 국비유학하여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크 대학원에서 법학석사(LL. M.) 및 법학박사(Dr. jur.) 학위를 취득했다. 공직생활 동안 청와대 선임행정관,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지방사무소장, 대변인, 카르텔조사국장, 사무처장을 지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위원회 부의장도 역임하였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의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원장으로 재임하였다. 공직 퇴임 후 현재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초빙연구위원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2018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으며, 주요저서로는 경제법 I 독점규제법(박영사, 2020), 경제법 II 중소기업보호법(박영사, 2020), 경제법 III 소비자보호법(박영사,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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