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지동리 소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영주 지동리 소나무는 의병 활동을 하다 순국한 선조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마을에서 심어 키운 소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지동리 소나무는 너른 들 한가운데에 농부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지은 당집 옆에 있다.

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넘는다.

2019년 가을부터 나무의 줄기가 쓰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줄기가 3m 정도 높이에서 90도 넘게 완전히 구부러지고 솔잎도 모두 떨어뜨렸다.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영주 지동리 소나무는 불과 3년 전인 2018년까지만 해도 높이 4m 정도에 가슴높이 둘레가 4m쯤 되는 아름다운 나무였다.

수령에 비하면 키가 작은 편이지만 너른 들녘에 홀로 선 자태가 아름다웠다.

2019년 늦가을까지만 해도 지동리 소나무의 가지에는 솔잎이 푸르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을 지나며 남아있던 솔잎을 하나둘 떨어뜨리며 결국은 2020년 가을엔 나무에 솔잎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지동리 소나무가 수명을 다해 죽어가는 걸 보고 마을 사람들은 바로 옆에 젊은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500년 동안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며 살아왔던 지동리 소나무의 역할을 이어가고, 지동리 소나무가 운명을 다 하여 생길 허전함을 달래려는 뜻이었다.

더불어 소나무와 당집 울타리 바깥에 어린 소나무 몇 그루와 팽나무도 심었다.

영주 지동리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된 건 2010년이다.

보호수로 지정돼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세월은 고작 10년이 채 안 된다.

나무 앞에는 나무를 처음 심었던 때의 사연을 적은 표지석이 남아있다.

한쪽 귀퉁이가 깨진 표지석에는 ‘선조의 거룩한 의절을 기리며 고향의 발전을 바라는 뜻으로 여기 소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 1993. 4.’이라는 글이 아직 선명하다.

영주 지동리 소나무를 이 자리에 옮겨 심은 건 30년 전이었다.

표지석에 기록된 ‘거룩한 의절’ 중 하나가 마을의 선조인 서재승(徐在承:1876~1915)의 행적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서재승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여 탁지부 주사직(職)을 사임하고 의병 활동에 투신해 군량 모집 등의 활동을 했다.

1909년에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수년간에 걸쳐 항일 의병 활동을 계속하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영주군에 피신했다.

1915년 첩자의 밀고로 붙잡혀 서울로 압송돼가던 중 극심한 고문을 받다가 7월 22일 현재의 풍기인 기주(基州)에서 총살당했다.

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백산서원(白山書院)을 짓고 서재승을 배향해왔지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를 계기로 1993년 수령 500년에 이르는 지동리 소나무를 마을 들녘으로 옮겨심고 그 앞에 표지석을 세운 것이다.

지동리 소나무는 이제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이지만, 불굴의 애국지사 서재승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영주 지동리 소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0-06-02
·보호수 지정 일자 2010. 11. 25.
·나무 종류 소나무
·나이 500년
·나무 높이 4m
·둘레 4m
·소재지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 863-2
·위도 36.886204, 경도 128.596565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