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전순기 베이징 통신원】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현실세계에서도 자주 증명이 된다. 기업 분야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호부견자(虎父犬子. 아버지는 호랑이, 아들은 개)’라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의 황당한 케이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자(子)기업이나 손자기업이 모기업을 먹여 살리는 경우가 세계 어디에서나 왕왕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는 ‘견부호자(犬父虎子. 아버지는 개, 아들은 호랑이)’라는 말을 써도 크게 무리하지는 않을 듯하다.

중국의 미디어 업계에서도 청출어람이 현실로 구현된 케이스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의 인터넷 자회사인 런민왕(人民網)의 경우를 꼽을 수 있다. 모기업인 종이신문 런민르바오는 4차 산업혁명의 도도한 기류에 휩쓸린 채 시쳇말로 죽을 쑤고 있는데 반해 런민왕은 마치 “내가 모기업이요!”라는 말을 하겠다는 듯 그야말로 쾌속의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이런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 확실하다. 런민왕이 4차 산업혁명 파도를 타고 마치 자유자재로 서핑하듯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조만간 모자간의 위상이 진짜 완전히 바뀌어도 하나 이상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런민왕은 매년 대학 총장 포럼을 주최하면서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적 공익활동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사진=런민왕(人民網)]

런민르바오와 런민왕의 현황은 이 단정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우선 런민르바오를 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약 230만 부를 발행하는 중국 내 굴지의 신문이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솔직히 신문 자체를 정독하는 독자들도 거의 없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종이 신문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앞으로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종이 신문 자체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에는 직면하지 않겠으나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해도 괜찮다.

반면 1997년 1월 1일 모기업 런민르바오의 위용을 등에 업은 채 당시만 해도 우려 반, 기대 반 조촐하게 출범한 런민왕은 지금은 완전히 대해를 만난 물고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사이트를 방문하는 전 세계의 누리꾼들이 일 평균 6억 명 가까이에 이른다. 극강의 압도적인 세계 최대 뉴스 포털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서비스되는 언어도 가공할 만한 수준이라고 해야 한다. 통칭 중국어로 불리는 한어(漢語)를 비롯한 각종 소수민족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15개 외국어로도 서비스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어도 이에 포함된다.

런민왕은 직접 대면해야 읽을 수 있는 종이 신문과는 달리 PC와 스마트폰,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접근이 가능한 특징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런민르바오에서 남북한 특파원을 모두 역임한 후 런민왕에서 칼럼리스트로 활약한 유명 언론인 쉬바오캉(徐寶康) 씨의 설명을 들어봐야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종이 신문만 있던 시절 내가 쓴 기사의 생명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설사 반응이 뜨거워 누가 스크랩을 해서 보관하더라도 잊히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런민왕에 썼던 기사들은 달랐다. 금세기 초에 썼던 기사들도 SNS에 돌아다니고 있다. 생명력이 영원하다. 하기야 PC와 스마트폰, 각종 SNS에 다 기사들이 뜨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나는 종이 신문 출신이기는 하나 영향력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양사의 위상 격차는 영업 이익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런민르바오의 경우 비공식 매출액은 수백억 위안(元. 수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나 영업 이익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마이너스라고 해도 좋다.

런민왕은 당연히 반대의 경우에 해당한다. 2020년 기준의 매출액은 모기업의 10분 1 정도인 25억 위안 전후에 불과하나 영업 이익은 엄청나다. 매년 매출액의 15% 전후를 기록한다. 2020년의 경우 4억 위안 가까이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전도유망한 데카콘 후보를 증시가 가만히 놔둘 까닭이 없다. 대박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2010년 이후부터는 본토를 비롯해 미국 나스닥, 홍콩 증시 등이 치열한 유치 경쟁에 나서기도 했다.

최종 승리를 거머쥔 곳은 본토의 상하이 증권거래소였다. 2012년 4월 27일 상장되자마자 가볍게 96억 위안의 시가총액을 기록한 바 있다. 일거에 유니콘이 된 것이다. 현재는 150억 위안 전후를 헤아린다. 수년 내 가치가 500억 위안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런민왕은 한국에도 진출, 각종 사업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저위보(사진왼쪽) 한국 지사 대표가 한국의 경상북도를 방문 이철우 지사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은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런민왕]

런민왕은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위상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모기업을 가볍게 제친 기세를 계속 이어가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를 위해 국제화에도 더욱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15개국에 단순히 지사를 설립한 것에 그치지 않고 각종 사업 역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지사의 저우위보(周玉波) 대표는 “한국은 런민왕의 가장 핵심 지사 중 한곳으로 꼽힌다. 지난 2012년 3월에 프레스 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한국의 기업, 단체들과 각종 사업을 진행, 우리의 존재를 알렸다. 당연히 현재 영업 상황은 나쁘지 않다. 우리 사이트의 성가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서 런민왕이 단순한 뉴스 포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런민왕은 장기적으로 뉴스 포털 사이트 공룡인 신랑(新浪), 왕이(網易) 등이 그런 것처럼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불후의 진리를 상기하면 굳이 뉴스 포털 사이트 업계라는 작은 시장에 안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 간의 경계가 애매한 만큼 종합 플랫폼을 지향해도 언론사가 그럴 수 있느냐는 욕을 먹지 않을 수 있다.

종합 플랫폼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런민왕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기술 분야에 대한 대대적 투자도 준비하고 있다. 신랑 등 외에도 알리바바, 징둥(京東 ) 같은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들이 최근 런민왕의 행보에 바짝 긴장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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