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산불로 인해 시커멓게 타버린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산불 현장.
2021년 산불로 인해 시커멓게 타버린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산불 현장.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2021년 10월 2일과 3일 남부지방산림청(청장:조병철)과 사회적협동조합 모천이 함께 주관한 ‘산불 피해 현장 답사’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는 시인 이하석, 송재학, 송찬호, 안도현, 안상학, 장석남, 손택수, 김성규와 소설가 황현진, 이주란 등이 참가했다. 본지 하응백 문화에디터도 동참했다. 하응백문화에디터의 원고를 시작으로 황현진, 이주란씨의 원고를 차례로 게재한다./편집자주

산불은 예방이 최선

해마다 봄철이면 전국 여러 곳에서 산불이 난다. 1990년대 중반 강원도 고성의 산불, 2000년과 2005년, 2017년의 강원도 산불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2005년 양양군 낙산사 산불은 TV 중계로 지켜본 기억도 난다. 산불은 순식간에 길을 건너서 사찰로 옮겨붙었다.

불을 왜 화마(火魔)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장면이었다. 이 산불로 양양이 고향인 소설가 이경자 선생의 생가도 불탔다.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보니 1672년(현종 13년)에 역대급 산불이 있었다.

“...양양·강릉·삼척·울진 등 네 고을에 산불이 거세게 번지는 통에 하루 사이에 불이 번져 타버린 민가가 1천 9백여 채나 되었고, 강릉의 우계창(羽溪倉)과 삼척의 군기고가 모조리 불에 타버렸으며, 화상을 입어 사망한 백성이 65명이었다.”

이 기록만 보면 1672년의 산불은 역대 최악의 대형산불이다. 현재로 치면 강원도와 경상북도 영동 지역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민가가 1900채가 타고 65명이 사망했다. 조선 조정은 이때의 이재민을 위해 긴급히 구휼미를 마련했다.

강원도 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경상북도 지역에도 최근에 큰 산불이 일어난다.

2020년 4월 경북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일대에 큰 산불이 났고 2021년 2월에도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일대에 큰 산불이 났다.

산불은 아이러니하게 산림이 잘 가꾸어진 수목 밀생 지역에서 발생하기 쉽다.

안동 산불은 우리나라도 산에 나무가 빼곡해짐으로 하여, 이제 어디도 산불 안심 지역이 없어졌음을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남부지방산림청의 드론.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어 산불 진압에 활용한다.
남부지방산림청의 드론.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어 산불 진압에 활용한다.

산불이 나면 진압도 신속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예방이다.

특히 대부분의 산불이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 캠페인도 매우 중요하다.

산불로 인한 생명의 파괴와 국토의 손실은 끔찍하고, 이 끔찍함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 문인, 기자다. 이런 생각에서 남부지방산림청은 문인 10여 명을 초청해 산불 현황과 진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설명했다.

산불은 산림청이 끈다

불이 나면 119에 신고한다.

신고를 받은 소방관은 신속히 출동하여 화재를 진압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 이 진술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산불은 누가 끄나?

대부분의 국민이 소방관이라고 생각한다. 강원도에 대형 산불이 났을 때 전국 소방관들이 살수차를 타고 강원도에 모여드는 것을 TV 뉴스로 보았기에 그들을 응원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하지만 소방청 소속의 소방관이 산불을 끄는 건 아니다.

산불은 산림청 소속의 ‘산불진화대’가 끈다. 산불진화대는 산림항공본부 소속의 공중진화대의 헬기와 각 지방산림청 소속의 지상진화대로 나뉜다.

그러니 산림청의 공중진화대와 지상진화대가 산불을 끈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소방관은 산불을 직접 진화하기보다는 인명을 구조하고 산불로 인해 취약해질 수 있는 건물이나 시설 등을 지킨다고 보면 된다.

특히 가파른 산에 올라가서 호스를 연결하여 산불 현장에 물을 뿌리고 잔불을 정리하는 등 직접으로 산불을 진압하는 현장에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앞장선다.

이들이 지상에서 산불을 끄는 사람이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위험을 무릅쓰고 산불 현장에서 맹활약하지만, 정작 국민은 정작 소방관이 산불도 끈다고 생각하기에 조금 억울해 한다.

누가 불을 끄든지 무슨 상관이냐, 잘 끄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산불 진압도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고, 잘하는 일은 잘한다고 해 주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산불을 잘 끄니, 일반 국민도 산불은 산림청 소속의 진화대가 제압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아야겠다.

남부지장산림청의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대원.
남부지장산림청의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대원.

시인이 뿌리는 말의 씨

일행은 차를 나누어 타고 2021년 산불 현장에 도착한다.

아름다운 임하댐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숯 검댕이 가득한 을씨년스런 풍경이 펼쳐진다. 시커먼 나무들이 듬성듬성 검댕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임도로 걸어 들어가면서 자세히 살펴본다. 20시간 불에 타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산지 약 307 헥타아르에 있는 38만 그루의 침엽수림이 불탄 현장이다. 죽음의, 생매장의 현장이다.

산불 현장에는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산불이 난 곳에는 새소리조차 없다. 그럴 거다, 먹을 게 있어야 새도 살지. 적막이다. 무생명의 적막은 두렵다. 우리의 죽음도 그럴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있다.

싸리나무와 아까시나무는 어리기는 하지만 제법 있다. 고사리도 지표면을 뒤덮고 있다. 가끔 불탄 떡갈나무 둥치에서 돋아난 떡갈잎을 보았다.

안상학 시인이 이건 산부추, 이건 잔대, 이건 구절초라고 설명한다. 시인은 꽃 이름과 풀 이름을 많이 안다. 그래야 시에 구체적인 식물 이름이 등장하는 시를 쓸 수 있다.

“산에는 이름 모를 꽃이 피었다.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면 시인 자격이 없다.

모름지기 구체적으로 써야 좋은 시가 된다. 시인이 여럿이니 불탄 자리에서 겨우 소생한 식물 이름이 하나하나 나열된다. 자연의 소생을 열망하는 이름 부르기다.

역시 시인이 이런 죽음의 자리에 오길 잘했다.

이제 1, 2년에 걸쳐 불탄 자리를 정리하고 이곳에 맞는 수종을 식목한단다.

아마도 최소 4, 5십 년은 되어야 이곳은 다시 숲이 된다.

오늘 이곳을 탐방한 문인 중 대부분은 그 숲을 보지 못한다. 말의 씨만 뿌린다.

그래도 그게 희망이다.

말의 씨가 있으면 나무가 자라고 숲이 된다.

불탄 떡갈나무 그루터기에서 새 잎이 돋아났다.
불탄 떡갈나무 그루터기에서 새 잎이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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