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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12-01 17:38 (수)
[한국의 보호수-①경상북도편] 상주 수봉리 옥동서원 배롱나무(120)
[한국의 보호수-①경상북도편] 상주 수봉리 옥동서원 배롱나무(120)
  •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승인 2021.10.15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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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수봉리 옥동서원 배롱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상주 수봉리 옥동서원 배롱나무는 부침(浮沈)을 거쳐온 옥동서원의 역사를 품고 살아남은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상주 수봉리 옥동서원(玉洞書院) 배롱나무는 옥동서원의 긴 역사를 품고 있는, 서원의 가장 안쪽에 배치된 강당인 온휘당(蘊輝堂)에 들어서야 만날 수 있다.

보호수임을 알리기 위해 나무 앞에 세운 안내판에는 배롱나무의 수령을 434년으로 적어두었다.

이는 옥동서원을 처음 세운 1580년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해인 2014년까지의 햇수다.

나무의 나이를 측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300년 이상 된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측정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알기 위해서 나무 조각을 빼내는 기구인 생장추(生長錐)나 초음파를 이용한 나이테 측정기구를 사용해서 나이테를 관찰하는 게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300년 이상 된 나무는 나이테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 식재에 관한 기록에 기대거나, 전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상주 수봉리 옥동서원은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의 철퇴를 피해간 전국의 마흔일곱 개 서원 가운데 하나다.

옥동서원의 남다른 기운은 청월루(淸越樓)라 부르는 문루(門樓)에서부터 느껴진다.

다른 곳의 외삼문(外三門)을 닮은 출입문이기는 하지만, 누각의 기능이 더해져 독특하다.

문루를 들어서면서부터 하나하나 마주치게 되는 모든 건축물에는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옥동서원이 처음 지어진 건 중종 13년인 1518년이었다.

대개의 서원이 그렇듯, 옥동서원 역시 이 지역을 빛낸 선현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대대로 선현의 덕행과 가르침을 이어받기 위해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비들이 뜻을 모아 지은 서원이다.

옥동서원을 지으며, 기억하고자 한 이 지역의 선현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 문신인 황희(黃喜)와 유학자 황맹헌(黃孟獻)과 그의 아우인 황효헌(黃孝獻)이었다.

황맹헌과 황효헌은 황희(黃喜)의 고손자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황맹헌은 연산군 시절에 문과에 급제하며 벼슬살이를 시작해서, 중종 때에는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올랐으며, 곧바로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다.

이어 그는 이과(李顆)의 옥사(獄事)를 다스렸는데, 그 공을 인정받아 다시 정난공신(定難功臣) 3등에 책록된 뒤, 장원군(長原君)에 봉해졌다.

그 후에도 경상도관찰사, 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황효헌은 1514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동부승지 등을 거쳐 이조참판까지 올랐다.

1530년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편찬에 참여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뒤인 1580년(선조 13)에 상주 모동면 지역의 선비들은 이들 황희, 황맹헌, 황효헌을 기리기 위해 영당(影堂)을 짓고, 그때부터 영당은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향사(享祀)를 올리며 선현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지켜졌다. 

‘옥동(玉洞)’이라는 서원의 이름이 사액(賜額)된 건 1789년이었다.

옥동서원은 고종 5년인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철폐되지 않고 남은 몇 안 되는 서원이었다.

오늘날까지 건축물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었으며, 황희 등 4명의 선현을 기리는 향사(享祀)가 전승되어 오고 있다.

향사는 매년 3월과 9월에 한 차례씩 지낸다.

황희의 영정을 비롯해 '갈천문집(葛川文集)' 외 수백 권의 문헌을 소장한 옥동서원은 사적 제5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봉리 옥동서원 배롱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옥동서원을 지켜온 나무며, 옥동서원과 이 지역 선비들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유서 깊은 나무다.

<상주 수봉리 옥동서원 배롱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4-08-02
·보호수 지정 일자 2014. 6. 5.
·나무 종류 배롱나무
·나이 434년
·나무 높이 7m
·둘레 1.6m
·소재지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546
·위도 36.289740, 경도 127.941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