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삼분(三粉)폭리사건, 최초 공정거래 논의 시발점, 1975년에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정

신동권 KDI연구위원

【뉴스퀘스트=신동권 KDI연구위원 】 우리나라에서 공정거래에 대한 논의가 불이 붙은 최초의 사건은 1963년의 삼분(三粉)폭리사건이었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본격 추진, 1년째 되던 1963년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 소위 삼분의 사재기 열풍이 불었는데, 당시 밀가루 폭리가 가장 심해, 외국에서 들여온 원맥을 배정받은 10여개 제분업체들이 고시가격의 몇 배나 폭리를 취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5·16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들어선 뒤 1964년 1월 15일 제6대 국회의 임시국회에서 삼분폭리사건은 정치쟁점화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에 공정거래법 초안이 나왔으나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하였다. 1966년 경제개발계획 추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다시 공정거래법안 추진되었으나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되었다.

1968년 국회의 외자도입특별 국정감사과정에서는 차관업체의 폭리문제가 거론되었는데, 특히 신진자동차의 코로나 승용차를 둘러싼 독과점 횡포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등장하였다.

당시에도 공정거래법안을 만들어 제출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69년 2월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2년을 끌다가 1971년 6월 역시 회기종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1973년에 제1차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다시 공정거래법안이 추진되었고, 1975년에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는 주요 상품의 최고가격지정, 독과점 가격의 통제 등 물가안정에 주안을 둔 법이었다.

1975년 법은 공정거래란 명칭에도 불구하고 주 목적이 물가통제를 위한 법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공정거래 입법으로 보기 어렵다.

어찌됐든 이 법은 1980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일부 공정거래에 관한 규정이 삭제되고, 1995년 1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어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주로 비상시의 물가 관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각 국의 공정거래제도의 발전 과정을 보면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물가나 폭리문제로 촉발된 경우가 많았다.

어느 정부나 물가는 민생과 직결되는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강한 개입욕구를 느낀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핵심은 수요와 공급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고, 정부가 가격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가격을 마음대로 통제한다면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정거래라는 친 시장경제적인 제도를 통하여 이에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론에 폭리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공정위는 욕을 한 바가지씩 얻어 먹는다. 제대로 대응을 못한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공정거래법에 독과점 사업자의 가격남용을 규제하는 제도가 있지만 거의 실효성이 없다.

최근에 플랫폼사업자들의 인앱결제를 통한 과도한 수수료가 언론의 도마위에 오른 적이 있다. 결국에는 수수료에 대한 직접적 개입보다는 인앱결제 강제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거래질서의 일반법인 공정거래법 보다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점은 경쟁당국으로서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1960, 1970년대 공정거래법 제정논의는 경제계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하다가 1980년에 제정되기에 이른다.

1976년 12.12. 사태로 촉발된 제5공화국 헌법 수립을 위한 개정 과정에서 독과점규제가 논의되었고 이러한 경향에 발맞춰 정부에서도 새로운 경제운용방식으로의 전환을 모색하였다.

1980년 10월27일 제5공화국 헌법에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는 규정이 삽입되었고, 1980년 12월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최종 통과되었다.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안)」 경제장관회의 안건(1980.11.20.)]

이는 정부주도 경제에서 민간중심경제로의 경제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1979년의 비상시국에서 신군부가 이러한 민간중심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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