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정상 천왕봉 일대서 대규모 산사태...칠선계곡 등 주요 탐방로 영향
원인은 침엽수 집단고사...개선문~응급쉼터 사이 구상나무 군락 70% 고사 상태

구상나무의 집단고사로 지리산 탐방로가 산사태 위험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지리산 중봉·하봉 능선~칠선에서 일어난 산사태 모습. [사진=녹색연합]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기후변화로 고산 지역의 침엽수가 떼죽음을 당하면서 산사태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는 지리산이다. 최근 10년간 지리산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대부분 고산 침엽수의 집단고사 지점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녹색연합은 백두대간 국립공원의 산사태 실태 조사 자료를 통해 2010년 이후부터 지리산 정상 천왕봉(해발 1915m) 일대에서 대규모 스키장 크기의 산사태가 5곳 이상 발생했다고 밝혔다.

대형 산사태가 일어난 곳은 칠선계곡코스 마폭포, 주능선코스 제석봉, 중산리코스 구조쉼터 및 법계사, 대원사계곡코스 중봉 등이다.

녹색연합은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 천왕봉으로 오르는 탐방로 주변이 산사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주요 탐방로가 산사태 위험에 놓인 배경에는 고산 침엽수의 '집단고사'가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분 스트레스로 침엽수가 대거 쇠퇴하자, 뿌리의 토양 응집력이 약해지고 그 아래로 강우가 유입돼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2차 피해가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 산사태가 번진 피해 지역 주변에서 침엽수 고사가 확산될 경우, 고사목이 계곡으로 쓸리면서 토사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리산은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의 고사로 산사태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중 구상나무의 집단고사는 심화되고 있다. 지리산 개선문에서 응급구조 쉼터 사이의 구상나무 군락은 약 70% 고사가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일대의 구상나무는 2017년부터 녹색이 아닌 갈색을 띠기 시작, 2019년부터 집단고사가 가속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녹색연합이 발표한 지리산 천왕봉·중봉(1875m)·하봉(1755m)의 지난해 10월~올해 7월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구상나무는 잎·잔가지 탈락 등 고사 유형을 띠거나 수피가 벗겨진 채 서 있었다.

당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천왕봉으로 오르는 중산리 코스의 1500m 근처부터 구상나무의 본격적인 떼죽음을 마주하게 된다"라며 "해발 1800m에서는 대규모 구상나무 군락이 죽음의 전시장처럼 고사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이자 한국 특산종인 구상나무는 2000년에 들어선 이래 점점 개체 수가 줄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 수종을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지리산 중산리 코스인 법계사 위쪽부터 천왕봉까지 구상나무가 집단고사한 모습(위쪽). 아래 사진은 중봉 북서능~칠선계곡 산사태 고사목이 뒹굴며 훼손된 모습. [사진=녹색연합]

한편 지리산 외 오대산, 설악산과 같은 고산 지역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 또한 산사태 발생지역의 능선부 주변에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가문비나무의 집단고사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때문에 녹색연합은 고산 지역에서 일어난 산사태를 기후위기의 경고등으로 인식하고, 환경부·산림청 등 관계 부처가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녹색연합은 "정밀 전수조사를 통해 뿌리가 얼마나 토양에서 떠 있는지, 폭우 시 쓰러질 가능성과 경사도에 따른 산사태 가능성은 얼마나 큰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라며 "기후위기 적응 차원에서 탐방로 관리의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