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조선일보가 지난 5월30일 사설을 통해 ‘5000만명이 밀집해 사는 좁은 대한민국에 원전이 뭔가 큰 사고를 낼 임계점(臨界點)에 도달한 것 아닌가하는 예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고리원전의 정전사고 은폐사건이 적발된 이 후 같은 해 5~7월 부품납품 비리로 22명 구속, 9월 한수원 직원 필로폰 상시투약, 11월엔 납품업체 20곳이 위 조서류로 영광 5·6호기 등에 1만3794개 부품을 납품한 사실이 적발되는 등 비리가 계속 밝혀지는 과정에, 이번에는 신고리 1·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원전에 핵 심부품인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불량부품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지자 전력당국은 물론 급기야 보수언론까지 두려움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에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제어케이블은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자로의 냉각과 방사선 누출을 막는 안전설비에 동작신호를 전달하는 부품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핵연료 냉각, 방사성물질 차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곧바로 초대형 원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핵심부품이다. 문제는 지난해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에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 5년여의 시간 동안 은폐되어 있다가 제보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이다. 원전안전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지난 5월28일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을 발표한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도 “앞으로도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국내 원전에 불량 부품이 정확히 어느 정도 사용됐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백했다. 특히 안전을 담보해야 할 시험검증기관까지 자료를 조작했다는 점과 시험검증기관을 거쳐 납품되는 부품의 수와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국내 원전은 한마디로 위조부품으로 건설·운영된 시한폭탄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대책이다. 정부는 금년 들어 사흘에 한 번 꼴로 전력예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져 온 상황을 무시하고 전력대란을 부추기며 후쿠시마 원전참사와 같은 치명적인 사고 발생가능성은 애써 외면해 왔다.

후쿠시마 대참사는 은폐·축소를 계속해온 일본 원자력행정의 거짓신화가 빚은 인재다. 노후화된 후쿠시마원전의 안전문제는 사고 전에도 심각했고 은폐사고 또한 일상화돼 있었다. 지난 2002년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수증기건조기에 발생한 균열사고를 도쿄전력이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이 원전 제작사인 제너럴일렉트릭 파견기술자의 고발로 드러났다. 당시 조사 결과 도쿄전력의 원전 정기검사기록에 후쿠시마 1, 2호기 등의 노심 내 설계에 균열이나 그런 징조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는 등 은폐사건이 더 드러났던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금 원전사고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고리1호기 정전사고 은폐사건과 후쿠시마 1·2호기 은폐사건이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고리원전 1호기는 12분 간 발전을 멈추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제3기관의 검증평가 결과를 놓고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으나 고리1호기 안전점검에서 가장 중요한 노후화된 원자로 용기의 안전성에 대해서 신뢰할 반한 결과를 내놓지 않아 전문가들의 불신과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전문가(일본도쿄대학 이노히로미츠 명예교수/ 금속물리학 공학박사)의 지적대로 고리1호기의 6개 중 마지막 남은 감시시편 하나의 건강성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감시시편은 수명말기 원자로 용기 재료의 건전성을 미리 확인하는 것으로 원자로 압력용기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감시시편 실험을 통한 원자로 압력용기의 건전성이 확인되지 않는 한 정부는 고리1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한 모든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 고리1호기가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치명적인 대참사의 격발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국은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하고는 1인당 전기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다. 2000년 초반부터 최근까지 10여 년 동안 전기요금은 21% 올랐고, 가스는 72%, 경유는 165% 값이 뛰었다. 같은 기간 경유 소비는 27% 줄어든 반면, 전기 사용량은 63%나 늘었다. 전기 사용이 급격히 증가한데는 ‘값싼 전기, 녹색 전기’로 포장한 원전의 거짓신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전력판매량 가운데 산업용은 53.6%, 상업용이 22.4%인 반면 가정용은 14.6%에 불과하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는 발전 원가보다 싸게 공급되고 있다. 2011년 한전의 1KWh당 판매단가는 산업용의 경우 81원으로 주택용 120원 보다 훨씬 싸며, 한국의 산업용 전기 요금은 2010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의 겨우 62%에 그친다. 또한 국내 일반 가정의 가구당 전기 소비량은 미국의 4분의 1, 프랑스와 일본의 2분의 1, 영국과 독일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 OECD의 한국경제보고서가 “제조업의 생산 단가 중 전기요금의 비중이 겨우 1~2%에 불과한 한국의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체계가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를 고착시켜 전력대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OECD의 지적대로 매년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전력대란 문제는 산업용·상업용 전기요금의 인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현재 재벌그룹들이 발전소 사업으로 매년 수천 억 원대의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특혜'와 '폭리' 구조도 뜯어 고쳐야 한다. 2012년 3분기 금감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한전이 매년 840억 원의 영업 손실을 발생시키는 반면 GS와 포스코는 3,89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는 대기업이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값싸게(1kWh당 81원) 사서 비싸게(1kWh당 168원)되파는 폭리구조의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호 환경운동가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