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해부해 보는 男子 女子, 그리고 女子(3)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여자는 남자보다 오래 산다. 통계로 볼 때 정말 그렇다. 그러면 왜 오래 살까? 이런 질문에 언뜻 나오는 대답이 있다. 남자는 몸에 해로운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군대도 가서 사고로 죽고, 때에 따라서는 전쟁에 참여해 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답변이다.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 범인이며 호흡기관만이 아니라 위장을 비롯해 심지어 뼈 등 모든 장기의 적이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보다 수명을 앞당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분석능력이라면 초등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된 유전학적 비밀과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의 요체가 숨어 있다. 다시 말해서 여자가 오래 사는 것은 얄궂게 표현해서 팔자라는 의미다.

담배, 술, 그리고 전쟁 때문에? No. 유전자가 그 해답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의 기대수명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러한 경향은 주로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 운동 등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의학적 진단과 치료 분야의 진보 덕분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동물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산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진화와 자연선택으로 돌렸다. [사진= Yale University]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동물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산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진화와 자연선택으로 돌렸다. [사진= Yale University]

그리고 건강을 중요시하는 생활양식의 변화, 그리고 특히 흡연 비율이 감소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다. 수명이 연장된 것은 남녀 공통이지만 여성의 기대수명은 줄곧 남자들을 앞섰다. 적게는 3년에서 많게는 7년 정도 여성이 많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사람에게서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몸집이 큰 포유류의 경우에도 암컷이 수컷보다 기대수명이 길다. 심지어 사람들보다 10~15년 정도 긴 경우도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호르몬과 함께 여성에게는 없는 남성의 Y염색체에서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Y염색체와 기대수명 연장과의 분명한 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와 관련해 인기있는 대중적인 이론이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전쟁과 폭력에 대한 노출, 그리고 위험한 직업 등이 그것이다. 또한 알코올을 더 많이 마시고 담배를 많이 피우면 의사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들이다.

그러나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대학(UNSW) 과학자들은 실제 이유는 담배와 술과 같은 인간의 행동과는 관련이 적고 대신 대부분의 동물 종과 공유하는 성염색체의 차이에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원들은 성염색체와 기대수명에 관한 모든 가능한 학술 문헌을 분석했다. 그들은 노화와 수명의 성별 차이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남성 성염색체(XY)의 Y염색체는 여성 성염색체(XX)보다 발현된 유해한 유전자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데 취약함을 시사하는 '무방비 X-가설(unguarded X hypothesis)’를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이 가설은 Y염색체가 X염색체보다 작기 때문에 X염색체에 해로운 돌연변이가 일어날 경우 이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남성)이 건강 위험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이론이다.

Y염색체는 자신 보다 3배 정도 긴 염기서열을 지닌 짝인 X염색체가 갖고 있는 유전자의 2% 정도 만 보유하고 있다. 서로 상동성(homology)을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작고 진화적 보존성이 매우 낮아 유전적으로 퇴행하는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반대로 여성의 꼭 같은 한 쌍의 균질 염색체(XX)에는 유해한 유전자가 발현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다른 X염색체가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기체의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포유류, 파충류, 곤충, 물고기 등 229종의 동물 군을 대상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암수 간에 성염색체 차이가 생존 능력은 물론 수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Y염색체가 수명 단축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연구 결과가 가설에 머물러 학계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UNSW 연구팀은 229종의 동물을 대상으로 성염색체와 수명과의 관련성 자료를 대량 수집하는 연구에 착수한 것이다. 조사대상의 암수 간 수명 차이를 비교 분석한 결과 수컷이 암컷보다 평균 17.6% 수명이 짧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조물주는 왜 암컷을 수컷보다 오래 살도록 만들었을까? 진화론의 자연선택은 무엇일까?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서? 그 때는 이미 자식들은 다 컷을 때다. 그러나 여자의 임무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할머니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싫든 좋든 말이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그들의 손자 손녀들을 아주 좋아한다. 이러한 손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실질적으로 뇌를 촬영해본 결과에서 나왔다. 뇌 스캔이 이를 설명해 준다.

이 연구에 따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할아버지, 또는 아이의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할머니가 어린 손주와 같이 있을 때는 뇌 활성 정도가 훨씬 크다는 것이 스캔에서 나타났다.

할머니는 대체적으로 손주들을 사랑하며 직접 키우고 싶어하는 충동을 갖는다. '할머니 가설'은 여자가 왜 더 오래 사는지를 설명하는 한 이론이다. 손자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할머니는 자연산택적으로 오래 산다는 내용이다. [사진= pexels]

할머니의 가설” 여자가 왜 오래 사는지에 대한 해답 안겨

2021년 11월 생명과학저널 ‘영국왕립학회보 B(Royal Society)’에 실린 미국 에모리 대학 연구팀의 논문 내용이 바로 그렇다. 전형적인 할머니들은 손자들을 돌보고 싶은 본능적이고 신경학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연구원들은 50명의 할머니들을 상대로 손주들의 사진을 보는 동안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그들의 뇌를 스캔했다. 또한 할머니들에게 모르는 아이들과 어른이 된 손주 사진도 보여줬다.

연구 결과 연구팀은 할머니들이 그들의 어린 손주들을 볼 때마다 감정적 공감을 결정하는 뇌의 부분들이 밝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를 이끈 제임스 릴링(James Rilling) 인류학 교수는 "할머니들에게는 감정적 공감과 관련된 뇌의 영역, 그리고 움직임과 모토 시뮬레이션(motor simulation), 그리고 준비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기쁨을 표현할 때 할머니도 같이 기쁨을 느끼고 아이들이 고통을 표현할 때 그 고통을 같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릴링 교수는 “연구를 통해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할머니의 뇌가 손주가 느끼는 것에 공명하도록 진화가 이뤄졌음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손주가 크면 할머니에서 다시 남편의 아내로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성인이 된 손주 보여주었을 때는 (감정적이 아니라) 인지적 공감과 관련된 뇌의 부분들이 밝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할머니들이 손주에 대해 감정에 공감하기 보다는 그들의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지에 궁금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손주들의 귀여움이 사라지면 감정적 사랑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릴링 교수는 “이것은 평균적인 할머니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손주에 대한 애착은 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할머니가 손주들을 무엇보다 사랑하고 아낀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진화생물학 이론 가운데 하나인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hothesis)’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다른 동물의 암컷은 생식기간이 끝나면 죽지만 인간 여성은 가임기가 끝난 뒤에도 훨씬 오랫동안 사는 것은 손주와 자손에게 진화적 이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자연선택의 가설이다.

이제 손주가 성장하면 할머니는 다시 남편의 아내로 돌아간다. 결국 여자가 오래 사는 것은 생물학적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위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자연선택과 진화는 여자의 수명을 오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아내가 볼 때 남편은 늘 어디 내놔도 불안하고 무모(無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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