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5)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20세기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펄 벅(Pearl Buck 1892~1973)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대지(大地, The Good Earth)’는 1930년대 말 근대 중국 농촌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파헤치면서 토지가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한 작품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영화로도 나온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농작물을 비롯해 심지어 가축까지도 먹어 치워버리는 무서운 메뚜기 떼의 공격이 절정을 이룬다.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먹을 양식을 전부 잃어버린 농부들의 허탈하고 망연자실한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지금도 개발도상국 해충 공격으로 10~30% 농산물 손실 입어

따지자면 우리를 못살게 구는 곤충들도 다 그 존재이유가 있다. 우리의 전체적인 생태계에서 나름대로 충분한 존재의 목적을 갖는다. 따라서 곤충이나 해충들을 근원적으로 박멸시킨다는 것은 생태계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여류 소설가 펄 벅의 작품 '대지' 영화의 한 장면. 농민들이 농작물을 공격해 완전히 파괴시킨 메두기들과 싸우고 있다. [사진=FilmFanatic.org]
여류 소설가 펄 벅의 작품 '대지' 영화의 한 장면. 농민들이 농작물을 공격해 완전히 파괴시킨 메뚜기들과 싸우고 있다. 메뚜기는 지금도 개발도상국의 골칫거리다. [사진=FilmFanatic.org]

아마 인간에게 치명적인 각종 병을 매개하는 모기도 존재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흡혈 해충이 생태계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인류에게 가치 있다는 의미심장한 설명은 한번도 들어본 바가 없다. 말라리아를 비롯해 각종 질병을 전파시킨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불필요한 곤충은 단순한 골칫거리 그 이상의 존재다. 농작물을 완전히 황폐화해 막대한 손실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가축에도 질병을 일으킨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해충들 때문에 개발 도상국가의 경우에는 그 손실이 10~30%에 이를 정도다.

20세기에 들어 값이 싸고 효과가 강한 농약의 개발은 새로운 농업혁명을 가져왔다. 이러한 농약으로 인해 세계식량은 곤충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인류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이로 인해 축산업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살충제는 환경오염으로 생태계 파괴시켜

그러나 농약살포에 의한 해충방제는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나아가 잠재적으로는 인간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잔류농약 때문이다. 물론 농약도 상당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독성이 저절로 소멸되는 농약들도 많이 개발된 상태다.

최근에는 농약살포가 필요 없는 병충해에 강한 유전자변형식품(GMO)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유해성여부를 놓고 과학자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현재 해충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여전히 농약에 의한 방법이 9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농약으로 인해 생태계와 환경을 정상으로 복원시키는데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이러한 합성 살충제는 꿀벌과 같은 종종 꽃가루를 전달하는 유익한 곤충을 죽인다. 동시에 먹이사슬을 파괴시키는 환경오염을 야기시키고 중독성찌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더구나 곤충들도 살충제에 내성이 생길 정도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계속 독성이 더 강력한 살충제를 개발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모기다. 어떤 다른 곤충보다 살충제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해로운 곤충을 진압하거나 제거하는 한 가지 증명된 방법으로 방사선 조사(照射)를 이용해 곤충의 가임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곤충불임기술(SIT: sterile insect technique)이 있다. 말 그대로 해충의 가임을 방해해 자손을 못 만들도록 하는 방법이다.

“소를 잡아먹는다”는 나사벌레파리 유충을 근절

1950년대 미국 농무성(USDA) 소속 곤충학자 에드워드 니플링(Edward Knippling)이 개발한 기술이다. 니플링 박사가 방사선 조사기술을 처음으로 적용한 대상은 온혈동물, 특히 소를 잡아먹는 나사벌레파리(screwworm fly) 유충이었다.

이 파리는 가축의 상처에 알을 낳는다. 그러면 유충들은 가축의 살 속으로 들어가 살을 파먹는다. 이 유충에 감염된 소는 10일만에 죽는다. SIT기술이 개발되기 전인 1950대만 해도 이 유충으로 인해 미국의 육류와 유제품 산업에 무려 2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끼쳤다.

이 파리 유충은 상처를 통해 사람의 살에도 기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나사벌레파리 연구에만 평생 몰두해 온 니플링 박사는 이 파리의 암컷은 평생 한번만 짝짓기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암컷과 짝짓는 수컷을 불임으로 만들어버리면 암컷은 더 이상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알을 낳지 못하는데 착안한 것이다.

결국 불임 파리 수가 계속 증가하면 알을 낳는 암컷 파리 수는 계속 감소하게 되며 결국에는 이 파리를 절멸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한 기술개발로 인해 니플링 박사는 1992년 식량 및 농업부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을 받았다.

초파리, 또는 과일파리는 과일에 알을 낳아 농사를 망치게 하는 주범이다. 심지어 소와 같은 가축의 상처에도 침입해 죽게 만들기도 한다. [사진=wikipedia]
초파리, 또는 과일파리는 과일에 알을 낳아 농사를 망치게 하는 주범이다. 심지어 소와 같은 가축의 상처에도 침입해 죽게 만들기도 한다. [사진=wikipedia]

방사선에 의한 곤충 불임 기술의 원리, GM곤충 기술과는 달라

방제의 대상이 되는 해충을 인공적으로 대량 증식해서 방사선을 이용해 교미는 할 수 있지만 자손은 남길 수 없는 불임 곤충을 만들어낸다. X-선을 비롯해 코발트-60이나 세슘-137을 이용해 감마선을 조사하면 방사선을 조사하면 수컷 정자의 염색체를 파괴하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나서는 이 파리들을 대량으로 자연에 풀어준다.

야생에 풀어 놓은 불임 곤충 수컷은 야생 곤충과 교미하여도 암컷은 부화되지 않는 알을 낳는다. 또, 불임 곤충 암컷은 야생 곤충 수컷과 교미를 해도 산란을 하지 않거나, 산란을 해도 알이 부화되지 않는다. 불임 곤충을 대량 생산해서 풀어주면 야생 곤충에 대한 불임충의 비율이 더 많아져 결국에는 곤충의 자손을 감소시켜 근절하게 된다.

이 방법은 ▲ 불임처리를 받은 곤충 자신이 야외의 개체를 찾아내어 영향을 확산시킨다. ▲ 내성의 걱정이 없다. ▲ 목표로 하는 곤충 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 농약처럼 잔류독성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 근절을 달성하면 그 후의 방제가 필요 없는 등의 많은 이점을 안고 있다.

또한 이 방법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곤충에 대한 많은 생태학적 연구를 미리 해야 하고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 우선 인공적으로 대량 사육할 수 있어야 한다 ▲ 수컷의 행동범위가 넓어야 한다 ▲ 불임처리가 생존율이나 이동분산, 생식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 암컷의 교미횟수가 적을수록 좋다 ▲ 목표지역은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지역과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곤충의 또 다른 침입을 막을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

한편 소를 잡아먹는 나사벌레파리는 1991년 미국에서 근절되었다. 육류와 유제품 생산에서 거대한 방해물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인근 멕시코를 비롯해 중남미 국가에서도 이 파리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전선을 펴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다시 미국으로 상륙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SIT 방법이 효자 노릇을 한 사례는 많다.

지중해 과일파리(Mediterranean fruit fly)= 아프리카가 원산지다. 1842년까지만 해도 스페인과 중근동지역에 퍼져 있었으나 그 후 호주, 남미, 하와이로 퍼져 나가 정착했다. 미국 본토에는 1929년 침입한 것이 확인되었다. 감귤류, 바나나, 망고 등 250종 이상의 과일에 기생한다.

1929년 미국 플로리다에 침입하자 독이 든 먹이를 살포해서 1년 동안은 근절시켰다. 그러나 그 후 플로리다뿐만 아니라 텍사스, 캘리포니아에 수 차례 침입했으나 같은 방법으로 근절시켰다. 그러나 1975년에는 캘리포니아 시가지에 침입하자 독이든 먹이를 살포할 수 없어 SIT 방법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근절시켰다.

오이과일파리(cucumber fly)= 동남아시아가 원산지로 서식지역은 인도, 동남아시아 전역, 마리아나 제도, 그리고 하와이와 아프리카 일부에서도 발견된다. 오이를 비롯해 멜론, 수박 등이며 파파야, 망고, 콩에도 기생한다. 기생과일의 수가 100종을 넘는다.

일본에서는 1919년 오키나와 현에 침입이 확인되었다. 1974년에는 가고시마 현까지 분포확대 되었다. 결국 SIT 방법으로 근절시켰다. 미국에서도 1962년 마리아나 제도의 85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로라섬에 3억 마리에 달하는 불임충을 방사해 오이과일파리를 근절시켰다.

감귤파리(orange fly)= 동남아시아가 원산지로 서식지역은 오이과일파리와 거의 같다. 기생하는 과일은 감귤류, 망고, 자두, 감, 파파야, 바나나 등 약 270종에 이른다. SIT방법이 적용된 경우는 1985년 일본 오카사하라 제도에서다.

체체파리(tsetse fly)= ‘체체(tsetse)’라는 말은 남아프리카의 보츠와나 원주민의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소를 죽이는 파리’라는 뜻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분포하며 23종이 알려져 있다. 동작이 민첩하며 암수가 모두 사람과 가축의 피를 빨고 원충성 질환인 수면병(sleeping disease) 등을 일으킨다.

1994년 아프리카 동해안의 탄자니아 앞바다 30km의 잔지바에서 SIT의 시범사업이 미국, 영국, 벨기에, 캐나다 등의 원조로 시작되었다. 곤충 불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주당 2만 마리, 탄자니아 증식시설에서 2만 마리를 생산해 방사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한편, IAEA에 따르면 SIT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곤충은 파리, 나비, 나방, 갑충류 등을 포함해 100여종에 이른다. 그러나 일부 해충의 경우 실험실 내의 증식이나 불임화의 어려움으로 연구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있다. 

방사선 기술이 계속 진화하면 농약을 대신할 결코 손색이 없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기술이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유전자변형(GM) 곤충에 의한 해충 퇴치 기술과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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