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8)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여러가지 이유에서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소재 가운데 플라스틱을 따라갈 소재는 없다. 변신과 변신, 그리고 진화와 진화를 거듭하면서 최고의 소재로 거듭나고 있다. 그야말로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플라스틱의 고마움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힉스(Robert Higgs) “많은 석유 에너지 반대 단체들은 현대 경제를 지탱하는데 화석연료와 석유화학 생산품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 ‘신사들의 스포츠’라는 당구가 새삼 유행이다.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당구장은 손님들로 넘친다. 그리고 새로운 당구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이 실내 스포츠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요즘은 젊은이들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더 즐긴다. 그리고 여성들도 많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스포츠 채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스포츠다. 무료에서 유료 채널로 변한 경우도 많다. 또 당구는 제품이나 기업 홍보를 위한 광고에도 등장한다.

오늘날 당구가 누구나 칠 수 있는 대중 스포츠가 된 것은 플라스틱 당구공 개발 덕분이다. 이러한 값싼 당구공 개발 노력은 최고의 소재 플라스틱 탄생으로 이어졌다. [사진= 위키피디아]
오늘날 당구가 누구나 칠 수 있는 대중 스포츠가 된 것은 플라스틱 당구공 개발 덕분이다. 이러한 값싼 당구공 개발 노력은 최고의 소재 플라스틱 탄생으로 이어졌다. [사진= 위키피디아]

이러한 당구의 대중화 이면에는 한 과학자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말하자면 값이 엄청 비싼 상아로 만든 당구공이 저렴한 플라스틱 공으로 대체되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가 된 것이다.

성형수술을 의미하는 ‘플라스틱 수술’

사람들은 다 예쁘게 보이길 바란다. 남녀노소 할 것 없다. 이제 성형수술은 결코 흠이 아닌 시대다. 코와 쌍꺼풀에 이어 범위와 부위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뱃살을 빼는가 하면 섹시한 엉덩이를 만들기도 한다.

성형수술을 영어로 ‘플라스틱 서저리(plastic surgery)’라고 한다. 정확히 해석하자면 ‘플라스틱 외과수술’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성형수술에 플라스틱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걸까?

우리의 사고 조금 넓혀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얼굴이든 몸이든 여기저기 쉽게 고친다는 이야기다. 산업용 소재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면 녹기 때문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형시킬 수 있는 것처럼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60년 동안 어떤 종류의 소재도 플라스틱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지는 못했다. 플라스틱이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플라스틱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류의 역사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의 시대다. 사실 플라스틱 없이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제품들을 제조할 수 없었다. 새로운 금속합금과 소재들이 나오고 있지만 플라스틱을 대신하기에는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이라는 말은 원래 “신이 무엇을 창조한다" 개념에서 출발

플라스틱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cos)’, 그리고 ‘플라스토스(plastos)’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모양을 바꾸거나(shaped) 녹여서 본뜰 수 있는(molded)”이라는 말이다. 신이 점토를 빚어 인간을 지금 모습대로 만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플라스틱이라는 말은 새로운 단어가 아니고 원래부터 존재했던 단어다.

플라스틱은 그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진화를 거듭한 소재다. 그 의미도 아주 광범위하다. 어떤 제품이라는 것보다 하나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탄력성이 강한 탄성소재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일반명사라고 하기보다 추상적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필요는 분명 발명의 어머니다. 오늘날의 플라스틱과 유사한 최초의 플라스틱의 탄생은 당구공이 계기가 됐다. 신사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당구에 사용되는 공은 원래 재료로써 비싸고 귀했던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었다.

그러나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아프리카 코끼리 수가 줄어들어 상아 수급이 어려워진다. 당구공 제조업자들은 1만 달러의 상금까지 걸고 상아를 대체할 당구공 소재를 찾았다.

미국의 발명가 존 하이어트는 값싼 당구공 개발에 매달린 끝에 최고의 소재 플라스틱을 발명하게 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의 발명가 존 하이어트는 값싼 당구공 개발에 매달린 끝에 최고의 소재 플라스틱을 발명하게 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상아로 만든 당구공은 너무 비싸 귀족들만 이용

이러한 노력 가운데 탄생한 것이 바로 플라스틱이다. 인쇄출판업자이자 발명가인 미국의 존 하이어트(John. W. Hyatt 1837~1920년)도 여기에 뛰어들었다. 그는 질산섬유소를 잘 용해시킬 수 있는 물질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부질환 치료제로 쓰이는 캠퍼 팅크(camphor tincture)를 질산섬유소에 넣었더니 질산섬유소가 녹기 시작했다. 캠퍼 팅크란 장뇌를 알코올에 녹인 의약품이다. 장뇌가 질산섬유소를 녹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1869년 최초의 천연수지 플라스틱 셀룰로이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물질은 열을 가하면 어떠한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었고, 열이 식으면 상아처럼 단단하고 탄력 있는 물질이 됐다.

그러나 이 셀룰로이드는 깨지기 쉬워 공끼리 부딪혀야만 하는 당구공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대신 틀니, 단추, 만년필 등의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구는 원래 큐스포츠(cue sports)로 불렸다. 부드러운 천을 깐 테이블 위에 예전에는 상아로 된 공을 올려놓고 막대기(큐)로 쳐서 승부를 가리는 구기 경기 종목의 하나이다. 원래는 귀족 스포츠였다. 그러나 대중적인 스포츠이면서 레크리에이션으로 잡았다.

당구는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현대식 당구는 영국에서 14세기경에 성행하던 크리켓 경기를 실내에서 할 수 있도록 개량한 것과 프랑스에서 16세기경 왕실 예술가 드비니(A. de Vigny)가 고안한 것을 시초로 본다. 

당구는 인기가 높았지만 서민들은 즐길 수가 없었다. 공이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아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아프리카 코끼리 사냥에서 얻어지는 상아가 비싼 이유에는 당구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값싼 당구공을 개발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산물이 바로 플라스틱이다.

폴리에틸렌의 등장으로 완전히 자리 잡아

이를 계기로 플라스틱은 계속 빠른 속도로 진화해 나갔다. 이후 1907년에는 벨기에 과학자에 의해 합성수지를 원료로 한 베이클라이트가 만들어졌고, 1933년에는 가장 많이 소비되는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이 등장했다.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어떤 모양으로든 가공하기 쉬운 플라스틱은 우리 삶의 형태를 바꾸었다. 현재 당장 주변을 둘러보면 태반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귀족의 스포츠로 신사와 숙녀만이 치는 당구가 대중화된 것은 바로 플라스틱 덕분이다. 비싸서 당구장을 못 찾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도 중요한 국제 게임에서 선수들은 대부분 깔끔한 정장을 한다. 귀족 스포츠의 전통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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