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9)

【뉴스퀘스트=김형근 기자】 코로나19 대유행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시선은 새로운 과학적 연구결과에 머무른다. 코로나19는 얼마나 강력하고 위험한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다.

이런 시기에 그 빛을 더욱 발휘하는 것은 과학계의 최고 학술지이자 영원한 라이벌인 사이언스(Science)와 네이처(Nature)다. 과학의 맞수만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의 자존심의 대결이기도 하다.

영국과 미국의 첨단 과학의 대결과 자존심

국내 언론은 물론 정부, 과학계, 일반 국민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학술지들이 한 번씩 입을 열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워야만 했다. 유가 판매 6천여 부에 불과한 두 학술지가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는 없다.

중요한 과학 사안에 대한 정보획득과 취재경쟁에서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도 뉴욕 타임스도 두 과학 저널을 상대하기에는 무력하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특히 의약분야를 포함해 분자생물학에 무게를 두고 있는 두 주간 학술지는 이제 과학 학술지가 아니라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매체로 등장했다. 물론 인터넷 매체로 되면서 주간지 개념이 사라진 것은 오래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과학과 기술은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생명과학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다. 호기심이든 윤리 논쟁이든,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생각하는 기업이든 정부이든 간에, 그리고 돈벌이에 관심을 두고 있는 주식투자가이든 간에 말이다.

끝없이 질주하는 현대과학의 현주소가 과연 어디일까? 하는 물음을 누가 던진다면 가장 좋은 대답은 아마도 미국의 ‘사이언스’와 영국의 ‘네이처’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일이다. 이 두 과학저널은 매주 수십 편의 첨단 과학논문을 쏟아내며 현대과학이 가는 길을 보여주는 좌표 구실을 하고 있다.

스타를 만들고 스타를 끌어내리는 경쟁도 치열해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로 자주 인용되는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미국과 영국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영원한 맞수이기도 하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심은 영웅을 만들어내는 과학스타 제조기의 역할을 하며 때로는 스타 과학자를 궁지로 내몰기도 한다.

18년 전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만든 당시 황우석 교수를 세계적 과학자로 만든 것은 사이언스다. 황 교수 연구팀의 실험에 쓰인 난자 일부가 소속 연구원이 제공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윤리적 의혹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킨 것이 발단이 돼 논문의 진위여부 논란으로 이어지게 만든 것은 네이처다.

사이언스는 황 교수를 스타로 만들었으나 네이처는 그 스타를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황 교수의 거짓이 상당 부분 드러나고 있는 그 뒤에는 사이언스와 네이처라는 막강한 저널 간의 치열한 경쟁이 작용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자기 논문이 한번만이라도 게재되길 평생 소원으로 바라는 이 과학저널 쌍두마차의 영향력은 특히 최근 들어 더욱 높아져 사실상 세계 최고의 대중과학 잡지로 등장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지금에 그 가치는 최고조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과학학술계에는 이 양대 매체 만큼 선망 받는 전문 학술지들이 많다. 화학분야의 ‘젝스’를 비롯해 물리학 분야의 ‘피지컬 리뷰’, 생물학 분야의 ‘셀’, 의학분야의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생화학분야의 ‘저널 오브 케미컬 피직스’, 고전 물리학 분야의 ‘피지컬 리뷰 레터스’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신경과학에서는 ‘뉴론’도 대단하다. 여기에 실린 논문들이 사이언스나 네이처보다 더 많은 노벨상을 배출했다. 그러나 전문성은 높을지 모르나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는 사이언스나 네이처를 따라갈 수 없다.

이제 두 저널은 단순한 학술지를 넘어 대중의 여론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언론매체의 성격을 지닌 막강한 저널지로 성장했다. 그래서 두 저널 간의 자존심은 물론 특종경쟁, 다시 말해서 저명하고 특별한 논문 유치경쟁 또한 치열하다. 판매부수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신문사와 방송사의 불꽃 튀는 경쟁만큼이나 맹렬하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한 교수의 “물론 지나간 이야기지만 황 교수의 연구논문이 사이언스가 아니라 네이처에 실렸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두 저널 간의 물고 뜯는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네이처가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도덕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고 그러면 황 교수의 거짓은 묻혔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두 저널의 영향력은 최근 발표된 영향력지수(Impact Factor)에서 나타난다.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영향력 지수는 6천여 종의 국제 학술지 가운데 5위와 6위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영향력 지수란 2년 동안 학술저널에 실린 논문이 이듬해에 평균 몇 번이나 다른 논문에 인용됐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두 학술지의 경쟁이 바로 이 영향력 지수다. 이 지수를 높이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넘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영국의 네이처는 지난 85년에 미국 뉴욕에 사무실을 냈다. 이에 질세라 미국의 사이언스는 93년 영국 학문의 본거지인 케임브리지에 사무실을 냈다. 이러한 경쟁은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총장도 지적한 바가 있다.

당시 과학기술부가 발간한 국제학술지 홍보자료에 따르면 네이처의 영향력 지수가 32.18로 사이언스의 31.8보다 다소 앞서고 있으나 우열을 가리기는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국내 과학자들은 네이처에 무게를 더 주고 있는 분위기다.

네이처에 진화론의 다윈이 있다면 사이언스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네이처에 진화론의 다윈이 있다면 사이언스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있다. 두 학술지의 영향력은 한 세기 넘게 두 잡지가 다져온 과학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네이처는 1869년 영국 맥밀런 출판사가 창간했다. 사이언스는 10년 뒤인 1880년 미국 언론인 존 미첼스가 떼돈을 번 발명왕 에디슨이 투자한 1만 달러의 후원금으로 창간됐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의 논문을 게재해 세계를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네이처는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건재해 왔으나 사이언스는 후원자가 없어 발행중단을 거듭하다가 1900년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 인수돼 협회의 공식 저널로 탈바꿈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20세기 들어 분자생물학, 핵물리학, 우주과학 등의 굵직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네이처는 근대 과학혁명을 이룩한 영국의 자존심을, 사이언스는 세계를 지배하는 빅사이언스(거대과학 Big sciece))를 이끈 미국과학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과학저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속보경쟁 등으로 터무니없는 논문이 실리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9월 미국의 유명한 벨(Bell) 연구소의 핸드릭 쇤 박사의 날조사건이 있었다.

쇤 박사는 분자크기 만큼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연구만이 아니라 20여 편의 허위 논문을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어 두 과학저널을 농락하기도 했다. 세계 과학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다.

두 저널에 대해 많은 비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과학자들의 꿈은 자신의 논문이 두 매체에 실리는 것이고 가장 큰 꿈은 표지에 장식되는 일이다.

6년 동안 극비리에 진행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재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프리 토벤버거(Jeffery Taubenberger) 박사의 연구논문을 공개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미국 보안기관은 두 매체의 편집장과 상의한 끝에 결국 공개를 선택했다. 이 정도면 사이언스와 네이처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가 세계 정치를 지배한다면 판매부수 6천여부에 불과한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세계의 과학을 지배하고 있다. 과학은 이미 정치보다 더 중요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역병인 코로나19로 대혼란기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를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한 ‘마법의 탄환’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마 최고의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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