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8)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코로나19 대유행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그 끝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쾌재를 부르는 곳이 있다. 제약업체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백신 개발 업체다. 새로운 백신과 같은 신약은 그야말로 돈방석을 보장한다. 

외신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이 확대되면서 화이자, 모더나 등 백신 제조업체들이 추가로 수백 억달러에 이르는 이윤을 챙길 것으로 전망된다. 백신 추가접종 부스터샷으로만 모더나는 내년 130억 달러, 화이자는 70억 달러 추가 순익이 예상됐다.

백신과 신약은 천문학적인 고부가가치를 창출

그러나 이러한 신약과 백신 개발에 방사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까다로운 시험과정을 거쳐야만 승인되는 신약개발에 방사선의 역할은 아주 크다.

한번 개발되면 수백억 달러를 보장한 신약과 백신이 나오려면 임상과 같이 수많은 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시간을 절약하는데 방사선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술이다. 

최근 생명과학의 발전과 함께 바이오 의약품 개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보혁명에 이어 제4의 물결인 생명과학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세계 각국의 제약회사들의 신약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선진국들 간의 선점경쟁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이를 반영하듯 선진국의 의약산업 규모는 최근 들어 급격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주가 또한 여전히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 과학기술의 산실인 실리콘 밸리를 찾는 투자자들은 이제 실리콘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새로운 의약품을 찾고 있다.

신약개발은 평균적으로 10~15년 장기적 시간이 소요되며 글로벌 신약의 경우 약 1조원의 연구 개발비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연구개발에 착수해도 개발에 성공할 확률은 1만분의 1정도로 극히 낮아 도전 자체가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가 신약개발을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하려고 하는 것은 이 산업이 천문학적인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글로벌 신약 1개는 소형차 30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버금가는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약이 탄생하기까지 연구개발 비용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처방약이든, 아니면 백신을 포함해서 주사약이든 간에 정부기관의 승인을 받아 실제 의사들의 손에 들어가기까지는 대규모의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야만 한다.

시간과 비용 절약, 실험동물 수도 대폭 줄여

제약회사는 새로 개발된 약품이 어떻게 목표한 질병을 공격하는지를 알아내고 잠재적인 부작용을 조사하는 등 방대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소위 약효검증(drug efficacy assay)의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이는 신의약품 개발에 있어서 그 유용성 및 안전성을 알기 위해서 동물 및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법을 말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방사성동위원소다.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정확한 효능평가를 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 인해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실험동물의 수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의료사용을 위해 승인된 모든 신약의 80% 이상이 성공의 중요한 요소로서 신약개발 단계에서 방사선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방사선기술이 의료와 생리학 분야에서 수여한 15개 노벨상 가운데서 12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100~300개 정도의 방사성 의약품이 전 세계에 걸쳐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부분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품목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약품이 수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출시되는 신약 80%가 방사선 기술 도움을 받아

그러면 동위원소는 신약개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한 예를 살펴보자. 지난 2007년 국내 연구진은 말라리아 치료제 신약후보물질을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효능평가를 수행하는 데 성공해 국제적인 공신력을 얻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 박상현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박 박사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신약후보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피로나리딘 테트라포스페이트(Pyronaridine Tetraphosphate) 물질에 대한 효능평가를 1년 만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물질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빌게이츠 재단 등이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재단인 스위스의 말라리아퇴치 의약품벤처센터(MMV)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해 한창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핵심 물질 중의 하나다. 

박사가 수행한 실험은 신약후보물질의 효능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로 MMV가 개발 중인 말라리아 치료제인 피로나리딘 테트라포스페이트의 정확한 체내 거동을 평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는 방사성동위원소인 C-14를 신약 후보물질에 부착해 물질의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등 체내에서 어떠한 작용이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합성실험과 동물실험의 2단계로 나눠 실시했다.

1단계 합성실험에서는 C-14를 부착한 피로나리딘 테트라포스페이트를 합성하고 합성된 약물의 표지효율, 방사화학적 순도, 안정성 평가를 수행했다. 이어 2단계 평가에서는 약물을 실험용 쥐에 주사해 약물의 체내동태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이를 통해 박 박사는 신약후보 물질의 성분과 효능을 변화시키지 않고 C-14를 표지해(꼬리표를 붙이는 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물질이 말라리아 균으로 침투하게 될 혈액 내 적혈구로 거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신약과 함께 방사성 추적자를 실험동물에게 투여하면 이들의 분포를 영상으로 나타나 세포나 유전자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사진=wikipedia] 
신약과 함께 방사성 추적자를 실험동물에게 투여하면 이들의 분포를 영상으로 나타나 세포나 유전자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사진=wikipedia] 

국내연구진, 동위원소 이용해 말라리아 퇴치 후보물질 효능평가 성공

참고로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하는 것은 그 물질에 꼬리표를 다는 것과 같다. 물질에 꼬리표를 달아두면 꼬리표가 달린 물질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꼬리표만 추적하면 쉽게 그 경로와 행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자동차의 움직임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특정 자동차에 경광등을 달아두면 공중에서 경광등이 달린 자동차의 움직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원리를 이용 것이 방사성 동위원소의 표지 원리이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물질은 존재하는 현재 그 위치에서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그 위치와 이동경로와 양을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신약개발에 이용하고 있는 동위원소는 주로 C-11, F-18, I-123, Tc-99m 등 PET(양전자 단층촬영) 및 SPECT(단일광자 단층촬영)에 사용되는 동위원소들을 이용하고 있다.

PET와 SPECT는 핵의학 영상법(분자의학영상법)으로 다양한 생화학적, 기능적 상태를 볼 수 있도록 방사성추적자(raditracer, 동위원소)를 환자에게 투여한 후 이들의 분포를 영상화하여 생체의 생화학적 변화나 기능상의 문제를 평가하는 영상진단법이다.

X선, CT, MRI 등 해부학적 형태를 보여주는 기존 영상장비의 개념을 뛰어넘는 차세대 진단방법이다. 세포나 유전자 단위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양세포 등의 성질을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질병의 성질에 맞는 맞춤형 치료도 가능하다.

항암치료의 경우 그 치료효과를 수 시간 내에 모니터링 할 수 있어 그에 맞는 치료계획도 수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포도당과 같은 물질에 동위원소를 붙여 그 물질을 환자에게 주사한 후 PET를 이용하면 종양에 얼마나 흡수되는지, 암세포가 얼마나 활동적으로 대사와 증식하는지 알아 낼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신약개발과정에서 전임상연구에 도입하면 연구기간을 단축시키고 비용을 많이 줄일 수가 있다. 화이자와 머크(Merck)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특히 중추신경계 진단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난한 하숙생의 방사성추적기술

1911년 헝가리 출신의 가난한 한 대학생은 하숙집 여주인이 주는 음식이 전에 주었던 것을 다시 주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음식에 소량의 방사성물질을 넣었다. 수일 후, 똑 같은 음식이 나오자 그는 간단한 방사능탐지도구(금박 검전기)를 사용하여 음식을 점검했다. 유감스럽게도 금박이 약간 기울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그것이 그가 전에 남겼던 음식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회의와 의심 속에서 탄생한다고 했던가? 영국 맨처스터에서 돈에 허덕이며 살아가던 조르주 드 헤베시(George de Hevesy 1885~1966)가 음식의 신선도를 알아보기 위해 방사선을 이용한 이 방사성추적기술은 방사선 사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헤베시는 동위원소 추적자 기술개발에 매달렸다. 그리고 가난에서 탈출했다. 그는 결국 동위원소 추적자 기술을 개발해 생명작용의 화학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높인 공로로 1943년 노벨 화학상 받는 영예를 안았다.

그 해 그는 나치 치하에서 탈출해 스웨덴에 교수로 정착했다. 이후 방사성동위원소의 대가(大家)가 되어 방사선을 이용한 인체의 동적인 상태 연구에 일생을 보냈다. 가난이 그에게 물려준 위대한 선물이었다. (가난한 하숙생 일화는 와전됐다는 이야기도 많다. 헤베시는 헝가리의 부유한 귀족의 자제였다고 한다)

이 기술은 오늘날까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의학을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산업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고고학, 지질학, 예술, 환경, 기상, 위생, 심지어 지구온난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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