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12)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코로나19 대유행이 세계 경제와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입 베어먹은 사과” 애플의 고공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8일 외신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증시의 대장주인 애플의 주가가 3.5% 이상 상승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날 애플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전 거래일 대비 3.54% 오른 171.18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애플의 시가총액도 2조8080억달러(약 3302조원)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애플이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약 3527조원)의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플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로 시가총액은 2조5150억달러(약 2957조원)였다. 21세기 정보화시대를 주도해온 IT 거인 MS도 애플의 고공행진을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애플은 썩은 부분 도려냈으니 이제는 깨끗해”

세계 최대 컴퓨터 업체로 세계 시장을 주물러온 오랜 역사의 IBM의 아성이 보잘것없는 신생 업체 애플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의 프린터 기업 제록스도 애플의 창의성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애플에 단단히 화가 난 IBM은 “한입 베어먹은 애플” 로고를 갖고 시비를 걸었다. “애플은 한쪽이 썩어서 도려낸 사과와 같다.” 이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답변은 정말 가관이었다. “애플은 썩은 부분을 완전히 도려냈기 때문에 이제는 아주 깨끗하다”

물론 일화에 불과한 내용이다. 어쨌든 IBM은 괜한 시비를 걸었다가 한방 맞은 셈이 되었다. 이는 잡스가 IBM을 향해 구태의연한 고전적인 경영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을 채택하라는 충고에 가까운 일갈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애플은 왜 회사명을 사과의 이름을 따서 지었을까? 게다가 그냥 사과가 아니라 한입 베어먹은 듯한 모양의 로고를 말이다. 여기에는 스티브 잡스가 늘 주장하는 단순하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녹아 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개의 사과”가 있다. 우선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악과가 첫번째 사과다. 그리고 빌헬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화살로 쏘아 맞춘 사과가 두번째 사과다.

아담과 하와의 사과는 결국 그들을 낙원으로 쫓겨나 인간으로 하여금 원죄의 굴레 속에 살게 했다. 빌헬름 텔의 사과는 약소국 스위스의 독립운동에 도화선이 돼 인류에 자유와 혁명의 정신을 심어주었다. 

세 번째 사과는 바로 뉴턴의 사과다.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그리고 수학자로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받는 아이작 뉴턴, 그 뉴턴이 고향 집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죽은 튜링을 기려 만들었다는 說

애플의 로고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우선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는 영국의 수학자로 최초의 컴퓨터를 직접 제작한 앨런 튜링(Alan Turing)을 들 수 있다. 튜링 테스트와 튜링 기계를 고안해 유명한 그는 암호 해석 분야에서도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2차 대전 당시 철벽을 자랑하던 독일군의 암호시스템인 에니그마(Enigma: 독일어로는 수수께끼를 뜻함)를 해독해 연합군의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튜링은 1952년 당시에는 범죄로 취급되던 동성애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빗발치는 사회적 비난으로 인해 상심이 컸던 그는 2년 뒤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을 택했다.

그에 대한 핍박은 죽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영국은 국가에 대단한 공훈을 세운 이 과학자에 대해 너무 인색했다. 세상을 떠난 지 59년 만인 2013년 12월이 되어서야 사면되었다.

비운의 천재 과학자인 튜링을 추모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튜링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흠모해서인지, 또 아니면 두 가지를 다 포함시킨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튜링의 창의성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해석이 탄력을 받는다. 또 어떤 면에서 튜링과 잡스가 살아온 독특한 인생역정도 비슷하다.

다음으로는 만유인력의 발견자인 아이작 뉴턴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을 상징하기 위해 사과를 로고로 택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일화는 사실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많다.

1976년 애플의 첫 로고에는 만유인력의 뉴턴이 등장한다. 뉴턴이 사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히 쉬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wikipedia] 

첫 로고에는 만유인력의 뉴턴이 등장

어쨌든 소위 ‘최초의 발견’이라는 창의성에 역점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1976년 애플이 설립되었을 당시의 첫 로고에는 뉴턴이 등장한다. 사과나무 밑에서 한가하게 독서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또 잡스가 기업 전선에 나오기 앞서 사과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잡스가 공동체를 이뤄 경작되고 있었던 유기농 사과 과수원을 방문한 뒤 애플이란 이름을 제시했다는 내용이 탄력을 받는 이유다. 

1977년 애플2를 전자박람회에 소개하면서 현재의 로고와 비슷한 모양을 만들었다. 한입 깨문 것은 ‘지식의 습득(acquisition of knowledge)’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지식의 보고인 애플을 베어먹어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뿐만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사과를 한입 베어먹어 창조주의 분노를 사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인류의 운명이 바뀐 것처럼 애플 컴퓨터가 인류의 문명을 바꿀 것이라는 잡스의 확신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다.

흥미로운 것은 잡스의 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뜻하지 않게 종교계로부터 엄청난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일부 급진적 성향을 가진 러시아 정교회(Orthodox Christians) 신자들이 애플의 로고가 성경에 묘사된 원죄를 의미한다며 항의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 로고가 기독교 교리에 반하고 그들의 믿음을 모욕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부는 로고를 원죄에 대한 구원을 의미하는 십자가로 바꾸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어쨌든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잡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휴대폰은 그야말로 인류의 문명을 바꿔 놓았다. 그 비밀은 바로 한입 베어먹은 애플의 로고에 있는지도 모른다. 왜 “한입 베어먹은 사과”일까? ‘설’만 무성할 뿐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불교와 명상이라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사고 속에서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신비로운 생각의 소유자, 채식주의자, 그리고 단추공포증의 잡스의 비밀 또한 그 로고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애플의 “한입 베어먹은 사과”는 이제 가히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개의 사과”에 추가될 만하다. 잡스는 갔지만 그가 남긴 창의성은 여전히 애플 속에 녹아 들어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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