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13)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TK지역 공략을 위해 경북 성주군을 방문했다가 ‘계란 봉변’을 당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직접 맞지 않고 대신 수행원 두 명이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성주군 참외 농장을 찾아 참외 모종 심기를 체험하는 중에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철수를 주장하는 활동가에게 계란을 맞을 뻔한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약간의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고 한다.

손안에 들어와 던지기에 안성맞춤, 상대방 피해도 거의 없어

계란 투척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싹트면서 지금까지도 민주의주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금에도 여전히 항의의 표시로 이용되고 있고 근대 민주주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전통적인 형태의 항의 시위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그런데 의문이 갈 것이다. 왜 하필이면 계란일까? 그 이유를 파악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선 손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가벼워 던지기에 무리가 없다. 그리고 외부의 가격에 위험한 신체 부위인 얼굴에 맞아도 목숨을 앗을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

계란 세례로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 또 일단 맞은 사람은 흘러내리는 노른자와 흰자를 빨리 수습할 수 없다. 오랫동안 옷에 남기 때문에 공격자는 본때를 충분히 보일 정도의 따끔한 맛을 선사한 셈이 되어 만족스럽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투척의 역사는 아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성격상 상대를 창피하게 만들면서 던진 사람은 커다란 쾌감을 느끼게 하는 이 계란 투척은 기원 전에도 충분히 행해졌을 거로 생각된다. 그러나 기록상으로 최초의 투척 사건은 AD 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투척의 첫 기록은 AD63년 로마 황제에게 던진 “무 투척”

폭군 네로 황제에 이어 등극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가 어느 날 가혹한 세금에 시달린 항의하는 군중들에게 순무 투척 세례를 받았다. 기록으로 볼 때 정치적인 투척 사건 제1호다.

짐작하건 데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 시민들에 귀를 기울인 꽤나 민주적인 황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로마 황실의 건축물인 콜로세움은 서기 72년 플라비우스 왕조의 첫번째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착공된 원형 경기장이다.

평민 집안 출신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전임자였던 네로 황제의 폭군적인 성향과 대비되는 자신의 서민적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는 네로 재위 당시 로마 시민의 혈세로 지어졌으며 원성을 사왔던 거대한 별장인 황금 궁전의 인공호수가 있던 자리에 원형 경기장을 지음으로써 개인 소유였던 사치스러운 공간을 공공을 위한 장소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황제는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했으며 이어서 그의 아들인 티투스(Titus) 황제가 콜로세움을 완성시켰다. 어쨌든 황제가 시민들로부터 무 투척 세례를 받은 것을 보면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황제임에 틀림이 없다. 최고의 권력자를 향한 일반 시민의 투척이란 상상할 수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계란 투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중세시대다. 당시 일부 죄수들은 정기적으로 칼을 씌우게 한 다음 눈을 못 뜰 정도로 계란을 마구 던져 모욕을 주는 형벌을 받았다. 이후 이 관습은 극장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연극에 불만을 느낀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던지기도

민주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엘리자베스 시대에 연극을 찾은 관객들은 연기가 형편없다고 생각되면 항의하기 위해 썩은 계란을 던지곤 했다. 지금도 정치를 소재로 연극 공연 극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계란 투척이 정치적인 항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조지 엘리엇이 쓴 1800년대의 작품 <미들마치(Middlemarch)>가 출판된 이후의 일이다.

당시 인기를 끈 이 작품에서 주인공 부룩(Brooke)이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선거 유세를 하던 도중 형편없는 공약을 제시했다가 군중으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고 결국 유럽으로 피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날과 꼭 같은 전형적인 계란 투척이다.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정치적 역사에서 투척은 계란에서 토마토, 크림 파이, 그린 커스터드, 슬러리, 밀가루 폭탄, 그리고 초콜릿으로 진화하면서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신발 투척을 당해

계란 대신 신발 투척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난해 7월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에 대한 재판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신발 투척 관련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아무개(58)씨는 정씨는 지난해 7월 국회의사당 본관 2층에서 국회 개원연설을 마치고 나온 문 대통령을 향해 자신의 신발을 벗어 던진 혐의를 받는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정씨가 던진 신발에 맞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씨 작년 1월 경기도 안산시 4·16기억전시관 앞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모욕했으며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15 집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과거가 있는 죄질이 불량한 과거를 갖고 있었다.

마가렛 대처 수상을 비롯해 계란 투척을 받은 영국의 정치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존엄의 상징 영국 왕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즘은 국수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재명 후보 측은 계란을 투척한 사람에게 최대한 처벌되지 않도록 경찰과 합의하고 선처를 요청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영어로 “에깅(egging)”이라고 하는 계란 투척이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지만 옛날과 달리 항의 표출 도구가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이 고전적인 항의 방법도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분명 삼가야 할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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