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90)

방사선을 이용한 방사성연대측정법은 고고학과 인류학 등 인류의 문명사에 커다란 혁명을 일으켰다. 이 기술을 통해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를 45억4300만년으로 정확히 측정했다. [사진= Tulsa World]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태양중심이론의 핵심인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하늘의 혁명을 일으킨 과학자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후 다윈은 진화론으로 땅의 혁명을 일으켰다.

다시 100년이 지나 방사상동위원소에 의한 과학적인 연대측정법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사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다. 과거를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의 창이 열렸다.  

"타임머신의 창" 열어... 고고학과 인류학을 과학기술의 학문으로 끌어올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개발된 방사성 연대측정법은 고고학과 인류학이라는 인문학 분야를 과학기술의 학문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문화사 연구는 더 이상 인문학 분야가 아니다. 여러 학문의 융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방사성 연대측정법은 인류의 자연사와 문화적 과거를 연구하고 파악하는데 새롭고도 획기적인 기술을 선사했다. 인간이 걸어온 인류의 고고학과 문명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식물 경작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물로 뉴멕시코 선사동굴에서 발견된 옥수수 속대에서부터 고대 유대인 세계, 그리고 구약성서 연구에 새로운 관점과 재해석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 사해문서(死海文書)에 이르기까지 수천 가지 유물들을 거의 정확하게 측정하게 되었다.

뉴멕시코 동굴은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이미 청동기시대에 옥수수와 호박을 재배했다는 경작문화의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료(史料)다.

1947년 사해 서안(西岸)의 쿰란 동굴에서 염소치기 소년이 발견한 성경 사본 사해문서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나 신도들이 로마의 압정을 피해 숨겨둔 고문서로 구약성서와 유대교 관련 가장 오래된 문서다.

이 문서의 연대가 측정되자 성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구약은 물론 신약성서 연구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1947년 사해 서안에서 발견된 이 '사해문서'는 연대를 측정한 결과 구약성서와 유대교 관련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성경을 다시 써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wikipedia]

“성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死海文書의 연대 측정

20세기에 발달한 핵물리학과 신기술의 산물인 방사성연대 측정법은 고고학과 인류학, 그리고 지질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까지 진화를 거듭해 왔다. 어떻게 보면 이 기술은 단순한 발견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지 한가지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기술의 발견은 우주의 화학적 조성에 관한 기본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가장 먼 은하에 대해 전망할 수가 있는가 하면, 인류의 아주 오랜 과거에까지 다가갈 수 있는 창이 열렸다. 아마 이러한 모든 공()은 미국의 물리학자 윌러드 리비(Willard F. Libby 1908~1980)에게 돌려야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공로로 그는 196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리비는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화학이 전공이었던 그는 수학과 물리학에도 심취했다. 처음에는 광산기사가 될 생각이었다. 1931년 버클리를 졸업한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저에너지 방사능 원자핵 분야에 종사하게 되었다. 방사능을 검출하기 위한 가이거 계수관(Geiger counter tube)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이 기기는 방사선을 내는 물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간단히 탐지하는 계기다. 1929년 독일의 가이거(Geiger)라는 물리학자가 처음 발명했다.

리비가 방사성 연구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한 원자에너지 개발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여기에서 그가 공헌한 것은 원자폭탄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방법을 고안 것이다.

이러한 필수적인 공정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원리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방사성이 흘러간 과거의 시간을 측정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힌트를 얻게 되었다.

반감기 개념을 통해 지구 나이 측정

방사성이 지구의 나이와 관계가 있다는 인식을 한 과학자는 리비가 처음이 아니다. 20세기 초 일부 과학자들은 핵의 자연적인 붕괴는 일정한 주기를 거치면서 불안정한 방사능물질을 안정된 정상적인 물질로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 시간을 계산한다면 지구의 나이도 측정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방사성동위원소의 특징인 반감기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인식이다.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원자핵을 발견한 영국의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1904년 이미 이러한 사실을 통해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듬해에 미국 화학자 버트램 보든볼트우드(Betran Borden Boltwood)가 이 과정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구의 연대가 적어도 22억년, 그리고 태양계의 나이는 약 50억년이라는 이론에 도달했다.

현재 과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하는 지구의 나이는 45억4300만년이다.

방사선을 이용한 방사성연대측정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과학자는 미국의 물리학자 윌러드 리비다. 인류의 아주 오랜 과거에까지 다가갈 수 있는 타임머신의 창이 열렸다. 이 공로로 그는 196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사진=wikipedia]
방사선을 이용한 방사성연대측정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과학자는 미국의 물리학자 윌러드 리비다. 인류의 아주 오랜 과거에까지 다가갈 수 있는 타임머신의 창이 열렸다. 이 공로로 그는 196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사진=wikipedia]

리비는 1939년에 발견된 우주선(cosmic ray) 충격에서 힌트를 얻었다. 우주선은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미립자와 그 방사선, 그리고 이들이 대기의 분자와 충돌하여 2차적으로 생긴 또 다른 높은 에너지의 미립자와 그 방사선의 총칭이다. 대기 분자와 충돌 전의 미립자와 방사선을 1차 우주선, 충돌 후 발생한 높은 에너지의 미립자와 방사선을 2차 우주선이라고 한다.

리비는 이러한 원자구성 수준의 핵 입자인 우주선은 대기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질소와 충돌하여 결합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일부 질소 원자는 방사성 탄소나, 탄소동위원소인 C-14로 바뀔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 동위원소는 탄소 이산화물에 의해 신속하게 흡수되며, 탄소 이산화물은 식물에 의해 소비된다. 이 원리를 이용해 리비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 우주선이 대기권에 돌입하면 우주선에 의해 생성되는 중성자가 질소와 작용해서 C-14라는 아주 적은 양의 방사성 동위원소 만들어 낸다. 이 동위원소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안정된 원소로 되기 위해 핵분열을 하면서 방사선을 방출하고 질소로 환원하게 된다.

이 대기권에서 반응해서 생긴 중성자가 질소 원자와 만나면 방사성 동위원소인 C-14가 생성된다. C-14는 안정된 원소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 베타선을 방출하고 질소 원자로 되돌아간다.

대기 가운데 C-14 비율은 일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배출하는 광합성 작용을 한다.

동물은 호흡을 하면서 대기 중에 있는 C-14를 포함해서 탄소를 주고받는다.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과 식물이 갖고 있는 C-14의 비율은 공기 중의 비율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체가 죽고 나면 외부와 격리된 상태가 된다. 체내에 있는 동위원소 C-14는 시간에 따라 감소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반감기를 계산 추적하면 이러한 유기물질의 나이를 알 수가 있다. C-14의 반감기는 약 5730년이다.

이 원리가 바로 인류문화사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켜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의 지평을 넓힌 리비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이다.

이를 이용하면 대략 6만년 정도까지 연대를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식물과 동물 등 유기물질에 적용된다.

탄소연대측정은 6만년 이내에만 가능해

그러면 왜 6만년까지만인가? 이 기간은 C-14의 반감기 5,730년의 약 10배의 기간이다. 탄소연대측정은 유기물체 안에 있는 C-14를 분석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탄소의 양이 5,730년 마다 반으로 준다고 하면, 6만년이 지나면 대략 본래 있던 양의 1000분의1로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C-14는 원래 아주 적은 양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다시 천분의 1로 줄어들면 매우 측정하기 어려운 적은 값으로 되어 오차 범위 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결국 6만년 이상으로까지 추적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에 처음으로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이 소개되었다. 탄소연대측정이 적용된 것은 1951∼1952년 가평 마장리 유적(加平馬場里遺蹟)에서 얻은 목탄을 채집, 미국 미시간 대학에 의뢰해 그 연도를 발표한 것이 첫 케이스다.

이 유적은 6·25사변 당시 참전한 미국의 매코드(H. A. MacCord) 소령이 참호를 파던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발견된 움집터들 가운데 하나를 신속하게 발굴 정리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유적지는 북한강 지류인 가평천변 강반대지 일대 약 300∼400㎡에 펼쳐 있는 대규모 취락지로서, 가평 시내에서 약 8㎞ 떨어져 있다. 여기에서 채집된 유물들은 현재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에 보내 보관 중이다.

우리나라는 가평의 마장리 유적에서 처음 사용

국내 학자로는 김정학 교수가 웅천패총(熊川貝塚)에서 목탄을 채집해 역시 미시간 대학에 보내 측정하였다. 김해와 고대 가양의 문화연구에 소중한 자료다. 그 뒤 1968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기재인 액체섬광측정기(液體閃光測定器)가 설치된 후,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보통 편년(編年), 또는 연대학(年代學)으로 번역되는 영어의 크로놀로지(chronology)라는 말은 프랑스어 크로노스(chromos), 즉 ‘시간의 학문을 뜻한다. 과거의 사건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하나하나의 일을 아무리 상세히 안다 하더라도 그 시간적 위치나 사건 상호간의 시간적 관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지식을 체계화할 수 없다.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에 있어서 연대학은 연구의 기초로서 빼놓을 수 없다. 그러한 작업에서 가장 커다란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방사선기술이다. 그러면 지구, 태양계, 그리고 무한하다는 우주의 나이는 어떻게 측정한 것일까? 그것도 방사선 기술이다.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은 탄소연대측정법이 처음은 아니다. 1920년대 이미 암석의 나이를 측정하는 우라늄-토륨 연대측정법이 사용되었다.

이후 탄소연대측정법이 개발되었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K-Ar, Rb-Sr법, 피션트랙(fission track), 불소연대측정법 등 다양한 연대 측정법들이 등장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살아 있는 전설 메시처럼 유명한 축구의 골잡이가 되려면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혼자로는 불가능하다. 옆에서 도움을 주는 어시스트가 좋아야 한다. 이처럼 방사선 기술은 아주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어시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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