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15)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아마 신문사를 견학하여 신문이 어떻게 인쇄되어 나오는지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꼭 같은 느낌일 것으로 생각한다. 거대한 두루마리 종이가 윤전기 속으로 들어가 감기면서 수초 만에 엄청난 양의 신문이 되어 질서정연하게 차곡차곡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즘은 윤전기를 대신하여 인터넷과 연결된 인쇄기를 사용하여 신문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옛날처럼 대형 윤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대학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사 전문’ 가게들도 마찬 가지다.

종이, 직물원단에서 중요한 두께를 측정 조절

그 보다 더한 것이 있다. 옷감을 만들어 내는 직물공장에서 원단이 춤을 추듯이 너울너울 물결을 이루면서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신기하고 놀랍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 종이든 옷감이든 간에 어떻게 일사분란 하게 꼭 같은 두께를 유지할까 하는 의문이다.

비단 종이나 옷감만이 아니다. 산업용으로 이용되는 철판도 마찬 가지다. 여기에 숨은 일꾼이 바로 방사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방사선을 이용한 기술은 두께를 정확히 측정하기 때문에 종이와 옷감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용 용도에 사용된다. [사진=wikipedia]

만약 이러한 물품들의 두께가 일정치 않다면 커다란 혼란이 올 것이다. 이처럼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곳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면 방사선이 두께를 측정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까? 방사선은 기본적으로 어떤 물체에 닿으면 흡수되거나 산란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물질을 통과한 후 빠져나오는 방사선의 세기는 약해지게 된다. 그래서 물질을 빠져나오는 방사선의 세기변화를 측정하면 물체의 두께를 정확히 잴 수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철판의 경우, 방사선을 조사(照射)하게 되면 얇은 철판을 통과한 방사선은 그 세기가 별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이보다 두꺼운 철판을 통과한 방사선은 세기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차이를 계산하면 물체의 두께를 정확히 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께의 정도에 따라 통과한 방사선 세기 달라

특히 방직공장에서 섬유를 짜는 과정에서 원단의 두께를 정확히 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질이 떨어지고 싼 섬유의 경우라면 생산공정에서 원단 두께가 일정하지 않거나 다소 얇더라도 판매에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원단을 제작해 고가로 판매하는 공장들은 두께를 일정한 기준치에 맞추어 불량이 아닌 정상 제품으로 출고하도록 품질검사 과정을 거친다. 만약 불량품이 생길 경우 옷을 만드는 중소기업체에 원단을 팔 수가 없다.

하지만 정작 섬유의 두께를 측정하는 기술은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다. 상당수 섬유업체들은 원단의 두께를 알기 위해 원단을 가공한 뒤, 또는 공정을 중단하고 원단의 일부를 절취해서 중량을 측정하는 원시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 불량 발생시 원단을 재가공해야 하는데다, 품질 요건을 맞추기 위해 필요 이상의 섬유 원사를 투입해 포목함으로써 원료 손실로 생산성과 경제성이 떨어지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시험적으로 원단을 생산한 뒤 일정한 크기만큼 잘라 무게를 재서 간접적으로 평균 두께를 재는 식이다. 기준치보다 두께가 얇다고 판단되면 원사를 더 많이 투입하도록 조절해서 재생산에 들어간다. 그래서 처음부터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원사를 10% 정도 넉넉하게 넣는 일이 흔하다.

불량품을 사전에 차단해 비용절감 효과

문제는 비용이다. 이렇게 어림짐작으로 원사를 많이 넣을수록 원사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부가가치 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두께 0.1㎜ 차이로 한 달에 수 천 만원의 원사비용이 오락가락한다.

섬유를 짜면서 원단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품질 수준을 유지하면서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 방사선을 이용하면 불과 ±1% 이내의 오차, 즉 1㎜ 두께의 원단이라면 0.01㎜ 안팎의 오차범위 내에서 섬유의 두께를 측정할 수 있다.

방사선은 원래 원자가 붕괴돼 다른 원자 종류로 바뀌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입자 또는 빛을 말한다. 그 투과의 세기에 따라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이라는 3가지 종류로 나뉜다. 이 방사선들의 특별한 성질을 잘 이용하면 물질의 두께를 정확히 측정할 수가 있다.

알파선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가 결합된 입자가 튀어나오는 것으로 헬륨 원자에서 전자를 뺀 핵만을 가리킨다. 베타선은 전자들이 방출되는 것이며, 감마선은 입자가 아니라 에너지가 아주 강한 빛을 내는 것으로 투과력이 가장 세다.

전문가에 따르면 두께 측정에 이용되는 방사성동위원소로는 탄소-14, 크립톤-85, 세슘-137, 아메리슘-241 등 7종이 있다. 이 때 잴 수 있는 두께는 피코(pico, 1조 분의 1) 단위까지 얇은 두께의 측정이 가능하다.

종이나 철판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제품의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방사선을 이용한 두께 측정기를 사용하고 있다. 두께 측정기의 방사선원으로서는 세슘-137에서 나오는 감마선이나 스트론튬-90에서 나오는 베타선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섬유산업에서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방사선 기술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사진=wikipedia]

한국원자력연구원 두께 측정기기 개발에 성공

한편, 이러한 정밀한 측정을 요하는 기술은 국내에서는 그 동안 개발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 옷감이나 종이 등 두께 유지가 관건인 제품의 두께를 방사선의 일종인 베타선을 이용,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국산화 하는 길이 열렸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주요산업인 섬유제품의 품질 향상 및 고부가가치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제지, 필름, 플라스틱 분야에도 접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선기기 연구부의 하장호 박사다.

지난 2007년 12월 하 박사는 섬유 생산 공정에서 제품과 접촉하거나 제품을 손상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제품의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베타선 두께 측정 장치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장치는 자체 개발한 ‘베타선 미세 방사선 측정 이온 센서’에 방사성동위원소 크립톤-85가 내장된 동위원소부와 제어장치를 결합함으로써 완성됐다.

하 박사는 “베타선 두께 측정 장치는 불활성기체인 크립톤-85가 내놓는 베타선이 섬유를 통과하면서 미세하게 선량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함으로써 섬유 원단의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해내는 장치”라고 말했다.

“섬유를 통과한 베타선이 이온 센서 안에 들어있는 아르곤 가스 등과 반응해 생성되는 미세 전류의 흐름을 측정, 통과한 물체의 두께를 계산해내는 것”이라고 하 박사는 설명했다.

제지, 필름, 플라스틱 산업에도 이용가능

하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베타선 두께 측정 장치는 센서를 포함한 모든 장치를 자체 설계 제작함으로써 기존 수입 제품의 절반 이하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돼 국내 섬유업체의 생산성 향상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기여할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 중인 포목기는 약 500여대로 국내 시장 규모는 100억 원대로 추산된다.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있어 섬유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로 수출도 기대되고 있다.

하 박사는 “베타선 두께 측정 장치는 범용 장비로 섬유뿐만 아니라 두께를 측정해야 하는 산업분야에 두루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제지, 필름, 플라스틱 산업 등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방사선 기술하면 X선 촬영이나 CT 촬영, 그리고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암 치료 등 제한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건강에 극히 해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방사선 기술의 적용 범위는 의외로 넓다. 인공 방사성동위원소 기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 그 목적이 산업용이든 의학적 용도이든 간에 필요한 용도에 따라 필요한 방사선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 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일부의 지적처럼 잘못 사용하면 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방사선에 마구(馬具)만을 잘 씌워 사용한다면 방사선은 과학과 기술이 우리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코뚜레를 이용해 소를 잘 부리는 농부와 같은 지혜를 짜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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