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9월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 현장을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논에 들어가 벼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 】 남북한 사이의 경제력 격차는 해가 갈수록 벌어진다. 2019년 말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북한이 35조 3000억 원인데 비해 한국은 1919조 원에 이른다. 몇 해 전만 해도 남북 격차가 40배라고 통칭됐는데 이젠 54배를 넘어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북 간 체제경쟁은 끝났다”거나 북한 체제가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란 관측이 일부 전문가 그룹 뿐 아니라 일반 국민사이에서도 나온다. 흡수통일을 할 경우 북한의 경제를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우리 국민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 실험을 포함해 모두 6차례의 실험을 거쳐 사실상의 핵 보유국에 진입했다거나, 미 본토를 타격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식량난을 비롯한 북한의 ‘만성적 경제난’이란 표현은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대북지원과 관련한 국민 여론이나 정부 정책도 형성되고 추진되는 모양새다. 남북 관계의 돌파구 마련이나 대화ㆍ교류가 필요한 국면마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의해 오거나 심지어 도발에 나설 때도 “식량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란 해석이 붙는다.

하지만 그동안의 남북대화나 대북지원의 패턴을 꼼꼼히 되짚어보면 이런 가설이나 분석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서 북한이 대북지원과 관련해 보인 행태는 오히려 “외부지원에 목을 걸지 않겠다”는 뜻이 읽혀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조선 것 받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는 북측 인사의 전언도 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그해 4월과 5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9월 평양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남북관계의 좋은 시절은 이듬해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이 파국을 맞으면서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노딜 4개월 후인 6월 19일 “북한의 식량 상황을 고려해 우선 국내산 쌀 5만 톤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등 비방 공세를 펼쳤다. 북ㆍ미 간 중재역할에 대한 불만이었다. 결국 대북지원은 불발됐고, 예산 8억 원을 들여 40kg짜리 쌀 포대 130만장을 제작했던 통일부는 “김칫국만 마셨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북한의 식량 증산 포스터.[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은 대북지원 확보를 ‘사회주의 건설과 반(反)제국주의 투쟁의 보급품’ 조달투쟁 정도로 여기는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다. 미ㆍ일 등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남조선’을 지켜내고 있으니 쌀과 여타 물품을 부담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고위 탈북인사는 “마치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시절 주민들의 집에서 식량과 김치 등 물품을 털어갔던 것을 독립투쟁 자금 확보로 여기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부터 8년간 모두 240만 톤의 쌀(7억 2005만 달러 상당)을 한국으로부터 차관 공여 형태로 지원받고도, 우리 정부의 상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생각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대북지원을 받는 경우에도 체면이나 모양새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쌀 지원에 맞물려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호응함으로써 합의문에 일방적 지원이 아닌 ‘인도주의 협력’이란 표현으로 담으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 불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백신의 제공에도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북한은 냉랭하다. 대북제재와 코로나, 경제난 등 3중고에 시달리는 북한이 대북지원 제안에 냉큼 호응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각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당장 굶어 죽거나 병마에 시달려야 하는 주민을 챙기는 것 보다는 체제의 면모나 비상방역을 더 중시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중도 드러난다.

마침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와 캠프에서 대북지원과 관련한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
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

무조건적인 지원 주장과 핵ㆍ미사일 도발을 거론한 신중론 등이 엇갈리지만 북한 동포를 위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우리가 주고말고를 결정한다고 해서 대북지원이 성사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상대하는데 있어 대화와 협상 전략도 중요하지만 대북지원을 위한 ‘주는 기술’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필자 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현)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미 우드로윌슨국제센터(WWICS) 초빙연구원 
고려대 북한학 박사
저서 :'후계자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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