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돌이켜보면 한국경제에서 노동자들이 충분한 임금인상을 한 적은 거의 없다. 3저 호황 와중에 벌어진 노동자대투쟁 이후 3-4년간 임금인상이 그런대로 있었을 뿐, 그 이외의 시기엔 무단적 탄압,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 경제위기 효과 발휘 등 지속적으로 임금인상 억제 기제가 발동되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권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 임금인상률은 특히 낮아졌다. 이번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극복책으로서 효과가 없는 긴축정책으로 인해 위기가 장기불황의 양상을 띠고 있으면서, 임금억제 양상이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일반적인 임금억제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리스 등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당연히도 노동자들은 고용불안, 임금억제, 주택거품 붕괴 등으로 인해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 전형적인 나라이다. 노동자들이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상당 폭의 임금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최근 ILO, UNCTAD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임금주도 성장론’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임금인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즉 임금인상은 노동자 자신에게 유리할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에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가 매우 크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자체분류 기준에 따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3년 3월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49.5%로 나타났다. 정규직의 평균임금은 283만 원이며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140만 원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으로 2012년 4580원에서 2013년에는 4860원으로 280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파트타임을 제외한 임금노동자들 중 월평균 임금수준이 최저임금(2013년 최저임금 4860원을 월 단위 환산)에 못 미치는 노동자들이 14.0%에 이른다. 생산성에도 현저히 못 미치는 임금인상은 가계부채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고,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곤란은 극심하다.

이처럼 노동자 임금을 이렇게 억제한 결과 국민경제나 자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노동자들의 임금이 억제됨으로 인해 자본의 수익성 지표의 하나인 제조업에서의 유형고정자산영업이익률은 2000년 이후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한창이었던 2008년과 2009년에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국내총고정투자율은 대체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불황의 양상을 띠는 최근년에 국내총고정투자율의 하락세가 더욱 심각하다. 노동자 임금이 낮게 유지되고, 자본의 수익성이 증가한다고 해서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률도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김영삼 정권 집권시절 평균 7% 내외에서 이명박 정권 시기 3% 내외의 성장률로.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로의 편입정책 및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에도 불구하고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권과 ‘747공약’을 내건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성장률이 더욱 하락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수출입 의존도, 즉 대외의존도는 역사상 최고치다. 3저 호황 이후 대외의존도가 줄어든 시기가 있었으나 97-98년 위기 이후 대외의존도는 다시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대외의존도의 심화는 해외 경제위기에 취약하다.

경상수지는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몇 차례만 빼고 계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순국제투자자산도 국내총생산 대비 마이너스 정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순국제투자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커지면 한국경제는 예외 없이 경제불안정이 야기되었다. 경상수지 흑자, 자본수지 흑자(외국자본 유입이 국내자본의 해외유출보다 더 큰 상황), 주가상승의 상태가 환율하락(원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다가, 환율 하락이 지속되면 경상수지 축소 내지 적자로의 전환, 자본수지 적자로의 전환, 자본이탈로 인한 주가폭락, 금융위기의 싸이클(이 위기 직전에 순국제투자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폭증한다)이 한국경제에 존재하는데 현재로서는 전에 없이 안정적이다.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를 경과하면서 임금인상이 둔화하거나 정체하는 사이 자본의 수익성은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런 수익성의 개선은 고정투자율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고 오히려 투자율은 하락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결국 경제성장률 둔화를 낳았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임금주도 성장론에 따르면 단적으로 임금주도 체제는 친노동 정책을 시행하면 경제가 성장하는 체제이다. 만일 친노동 정책을 시행했는데 경제가 축소되면 그것은 이윤주도 체제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윤주도 체제는 친자본정책을 시행했는데 경제가 성장하면 그 체제는 이윤주도 체제이다. 같은 방식으로 친자본 정책을 시행했는데 경제가 위축되면 그 체제는 임금주도 체제이다. 여기에서 친노동정책은 ‘복지국가’, 최저임금 인상, 단체교섭 강화 등이 있고, 친자본정책에는 ‘노동시장유연성’, 최저임금 폐지, 단체교섭 약화, 임금자제 강요 등이 있다. 그리고 친자본정책의 결과는 미약한 임금 증가, ‘국민소득에서’ 임금비중 감소, 임금격차 증대 등을 낳고, 친노동정책의 결과는 실질임금 상승, ‘국민소득에서’ 안정적인 임금비중 또는 임금비중의 상승, 임금격차 축소 등을 낳는다. 한편 임금비중의 상승은 총수요(소비, 투자, 순수출)와 공급(자본축적 및 생산성 증가)에 영향을 주면서 경제의 성장여부를 가름하는데 임금주도 체제는 임금비중 상승이 총수요와 공급 측면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장 과정은 친 노동 분배정책 및 친노동 구조적 정책을 가진 임금 주도 전략의 채택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 각국이 친노동정책을 시행하면 세계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일국적인 수준에서는 이윤주도 경제체제가 있을 수 있는데(중국은 그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이 경우도 다른 임금주도 체제 국가들에서 친노동정책을 시행하면 이윤주도적 국가들마저도 자국의 경제활동이 외국의 빠른 성장세의 영향으로 활성화되면서 총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모든 국가가 수출주도전략을 추구하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수출주도전략하에서는 모든 국가가 동시에 순수출국이 될 수는 없으므로 절반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수만 따졌을 경우 거의 모든 국가들이 임금주도 체제일 것이라고 한다. 경제란 공급측면(임금비중 증대와 노동생산성 증가사이의 관계)에서나, 수요측면에서나 임금주도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출까지 감안하면 얘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 임금비중의 증대는 순수출을 감소시킬 것이어서 그 크기를 따져서 총수요 측면에서 임금주도 혹은 이윤주도 체제 여부를 가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들의 이론틀에서는 수요증대를 통한 경제성장률 증가(수요부족 불황시기에 적합한 이야기일 것이다)가 공급 또는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 점이다. 이들에 따르면 성장을 공급제약으로 여기는 것, 즉 성장을 공급능력에만 달려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현실의 신자유주의를 임금주도 체제에서 친자본정책을 시행해서 성장률이 낮아지고, 여러 위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주도 체제에서 친노동정책을 제대로 시행해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벗어나자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임금비중을 높이고 임금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자 상태는 꼭 임금주도 경제성장론에 기대지 않아도 임금인상을 해야 하고 임금격차를 줄여야 할 절체절명의 상태에 있다. 노동자들은 그간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정부와 자본의 무단적인 탄압과 연이은 투쟁의 패배는 노동자의 생활상의 고통을 가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노조조직 또한 지리멸렬해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은 심기일전해 생산성 증가에도 못 미친 임금인상에 대한 만회를 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편 2008년 위기 이후 장기불황 상황에서, 성장률 이외 거시경제변수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임금인상 투쟁을 위한 호조건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어디선가 “노동조합은 임금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임금투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문다면 실패한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로선 이후가 가능하기 위해서도 임금투쟁을 잘 해서 조직을 추스르고 미조직 노동자대중으로부터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임금인상투쟁이 노동자상태를 개선하고 노동조합 강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의 임금투쟁 활성화를 통한 임금비중의 증대는 ‘임금 주도 성장론’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극복의 길이기도 하다.

박하순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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