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 새 원훈석 제작을 마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 새 원훈석 제작을 마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뉴스퀘스트=이민준 전문위원】10일 윤석열 정권의 1차 내각인선이 발표됐다. 그간 인수위는 분야별 관료, 학계에서 전문가 중심으로 인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1차 내각인선은 그 기조를 따랐다. 이러한 인선 기조에 따라 최근 국정원장 후보도 안보전문가인 전직 국정원 관료들이 언급되고 있다.

물론 국정원의 외교안보 기능만을 봤을 때, 전직 관료들은 적절한 인사로 사료된다. 또한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윤 당선인의 의지에도 부합한 인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간 국정원이 연루된 여러 문제를 비롯하여 한국 공무원 사회의 관료주의, 기수제도 등을 고려할 때, 단순히 외교안보만을 목적으로 전직 관료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을 표하고 싶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정부가 외교안보 전문가를 표방하며 국정원 출신 관료들을 국정원장에 앉혔을 때, 우리가 경험한 것은 북풍의혹, 대북 평화쇼 등 정치개입 문제에 얽힌 국정원이었다. 외교안보 전문 관료들이 외교안보를 고도화하는 것이 아닌 외교안보를 핑계로 내부정치를 하는 듯한 행태를 보여왔다. 오히려 관료들이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으로 행동했다.

놀랍게도 대통령 선거로 정치진영이 바뀔때 마다 신임 국정원장의 구호는 모두 “내부개혁”으로 같았고 2017년 7월 신임원장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통해 “개혁”을 외쳤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결국 대다수 관료형 리더들이 외쳤던 개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정치적인  이슈들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몇몇 언론에서는 보수정권 당시 관료들을 원장후보로 다시 거론하며, 또다시 국정원의 변화와 개혁을 주문하고 있지만, 이제는 신뢰할 수가 없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조직은 철저히 관료주의와 기수문화로 움직인다. 내 상사, 동료 등이 모두 나와 같은 배를 탄 선후배이며, 최소 20~30년을 함께 근무한다. 이러한 조직은 정권입맛에 맞춰 적절히 인사를 배치하며 칼날을 피해낼뿐, 그 내면을 보면 모두가 함께 조직을 사수하는 동료일 뿐이다.

과연 전직 관료가 원장으로 임명되면 이러한 기수문화를 차단하면서까지 조직을 개혁할 수 있을까? 애초에 국정원장으로 언급되는 관료들 역시 보수, 진보 정권에 따라 옷을 바꿔입어가며 고위직까지 왔기에, 갑자기 전문성만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문제는 그간 수많은 리더들이 국정원이라는 권력기관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해석해왔다. 국정원을 오로지 미, 중, 일, 러 4대 열강과 북한에 초점을 맞춰 대외조직으로만 이해해왔다. 그러나 국정원은 매년 공채로 선발되는 공무원으로 구성되며, 비록 국내파트를 폐지하였지만 여전히  방첩, 테러, 사이버 등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즉, 한국사회에 팽배한 정치분열, 학연지연, 기수문화 등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조직이다. 더군다나 다른 권력기관과 달리 국정원은 안보라는 이유로 내부사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내부정치 중심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런 조직에 외교안보 전문가라며 전직 관료를 앉히는 것이 어떠한 개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지난 30~40년간 국정원 요직을 거쳐왔다”라는 멘트가 과연 안보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혹은 보수, 진보 등 옷을 잘 바꿔 입어가며 자리를 지켜온 것인가? 전자라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윤 당선인은 이미 댓글수사를 통해 이러한 국정원 구조를 속속들이 파악했기에,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그 해법으로 전문관료를 앉히고 대신 독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민정수석실 폐지로 권력기관을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그 취지에는 100% 공감을 한다.

다만 아무도 관심갖지 않은 우물이 더욱 깨끗해질 것인가는 의문이다. 물론 감사원 등 외부 통제기관이 존재하지만,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감사원이 얼마나 통제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더군다나 국정원 감사정보는 공개조차 불가능한데, 어떻게 정화의 목소리가 나올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보수 정권에서는 미사일, 진보 정권에서는 발사체로 정권 입맛에 맞춰 변모해온 그 관성을 전문 관료가 끊어내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에 윤 당선인에게 필요한 국정원장은 부패한 관성을 끊어내고 현 정권에 구축된 특정라인을 정리함으로써, 오로지 업무 성과로 조직을 운영할 정무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원장의 출신에 따라 특정 분야에서 인사를 선발하는 것이 아닌 해외, 대북, 방첩, 테러, 사이버 등 여러 분야에서 인재를 골고루 등용할 수 있는, 현 국정원이 비판받는 여러 병폐를 과감히 쳐내고 올바른 로드맵을 그려낼 수 있는, 외교안보만을 위해 애쓴 이들을 높게 평가하고 내부정치인들을 짤라낼 수 있는 그럴 인물이 필요하다. 외교안보 전문성 보다도 정무적 판단력으로 조직을 이끌어갈 인선이 시급한 이유이다.

윤석열 정부의 전문가 기조에 맞춰 외교안보전문가를 1차장, 2차장, 3차장 등에 배치하면 조직운영은 충분하기에, 국정원장은 전문성보다도 청와대, 국회 그리고 국민을 상대로 한치의 부정부패도 없이 조직을 투명하게 운영할 인물이어야 한다. 여기에 외교안보 전문성이 가미되면 플러스 요소인 것이지, 외교안보 전문성이 주가 되면 안된다.

부디 윤석열 정부만큼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없애기 위해 정치를 모르는 관료를 배치하기 보다, 뛰어난 정무적 감각으로 조직을 정비할 인물을 임명하길 기대한다. 국정원 조직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인물이라면, 정의와 공정성을 부여할 인물이라면, 국민이 다시금 국정원에 환호하지 않을까?

5년마다 반복되는 국정원의 습관성 “개혁”을 멈추려면, 참신한 인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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