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삼성전자 'HBM' 칩워 재점화..."관건은 기술 경쟁력‧엔비디아 수주 확보"

'HBM' 칩워 1차전에선 SK하이닉스 승리...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 차지 5세대 HBM 수주 경쟁 돌입...엔비디아, 올해 발주 물량만 10조원 달해 SK하이닉스, HBM3E 세계 첫 양산...삼성전자, 이례적 원포인트 인사 단행

2024-05-22     김민우 기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HBM 시장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기술 경쟁에 나섰다. 주도권 향방은 기술 경쟁력과 주요 빅테크 기업들로부터의 수주 확보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뉴스퀘스트=김민우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으로 불리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을 두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칩워(반도체 전쟁)' 2차전에 돌입했다.

사실상 1차전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물량에 대한 수주 독점을 이어가며 주도권 유지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원포인트 인사라는 승부수까지 띄우며 경쟁력 회복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시장 점유율 10%대의 후발주자 마이크론은 또 다른 복병으로 떠올랐다. 현재 판매 중인 HBM3 제품 개발을 과감히 포기하고 차세대 HBM 제품 양산에 올인하며 시장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HBM 수요 성장률은 200%에 육박하고 내년에는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사진=픽사베이]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을 반도체(DS) 부문장으로 임명했다.

삼성전자가 원포인트 인사로 주요 사업부의 수장을 교체한 것은 이례적이라 것이 업계의 시선이다. HBM을 비롯한 AI 반도체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리더십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부터 파운드리, 메모리 생산 등을 포괄하는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회사(IDM)로 자리매김했으나 최근 경쟁사에 각 사업 주도권을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AI 반도체에서 핵심으로 평가받는 HBM 사업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뺏긴 것은 뼈아프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HBM3 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9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HBM 수요 성장률은 다른 어떤 D램들보다 폭발적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HBM 수요 성장률이 200%에 육박하며 내년에는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가 전체 D램 시장에서 45%(지난해 4분기 기준)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HBM 사업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HBM(고대역폭메모리)란?

HBM은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고 읽는데 특화된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의 데이터 송수신 기능을 대폭 강화한 부품을 말한다. 자동차 도로에 비유하면 차(데이터)들이 기존 D램이라는 1차선 도로에서 움직여왔다면, HBM은 이를 16차선 도로로 확대해 차들이 더욱 빠르고 원할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혁신 덕분에 HBM은 최근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계산하는 AI 칩에서 핵심 부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칩워 1차전 승부가른 삼성전자의 '오판'... SK하이닉스, 대규모 투자로 주도권 확보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줄곧 SK하이닉스에 자리를 내줬던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월 2세대 HBM 제품인 HBM2 양산을 세계 최초로 성공한 데 이어, 3세대 제품 HBM2E까지 먼저 양산하며 SK하이닉스와의 주도권 경쟁에서 앞서왔다.

하지만, 2019년 HBM 연구개발 전담팀을 해체하면서 4세대 제품 양산 속도가 늦춰졌고, 결국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이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HBM 시장 규모가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치하는 비율은 고작 한자릿수밖에 안되는데다가 성장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6월 4세대 HBM인 HBM3 양산을 처음으로 성공하며 HBM 시장 주도권을 확보해나갔다. 특히 엔비디아에 HBM3를 독점 공급하기 시작하며 강자로 우뚝섰다. [연합뉴스 제공=뉴스퀘스트]

반면,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바탕으로 지난 2022년 6월 4세대 HBM인 HBM3 양산을 처음으로 성공했다.

특히 HBM 최대 구매 기업인 '엔비디아'에 HBM3를 독점 공급하기 시작하며 HBM 강자로 우뚝섰다.

그에 반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에서야 HBM3 양산에 돌입했고, 아직까지 엔비디아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HBM 개발이 5세대인 HBM3E까지 이뤄진 가운데 세계 첫 양산 타이틀은 SK하이닉스가 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에 초기 양산에 성공한 뒤 3월부터 제품 공급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부터 양산을 시작하며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에 달려 있는 주도권 향방...수주 여부에 따라 판세 뒤집힐 수 있어

업계에선 향후 주도권 향방은 어떤 기업이 더 빨리 HBM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더 많이 제품을 수주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판단한다. 

이와 함께 HBM 최대 구매 기업인 '엔비디아'가 어떤 기업의 HBM을 자사의 AI 칩에 탑재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엔비디아는 올 하반기에 선보일 B100, GB200에 HBM3E를 장착할 예정으로 공급업체는 아직 미정이다. 

HBM 기술 경쟁력의 핵심은?

HBM은 '베이스 다이'라고 불리는 틀에 여러 개의 D램을 겹겹이 쌓아 올린 형태다. 레고 블록 쌓기로도 비유할 수 있다. 핵심 기술은 ▲레고(HBM)를 얼마만큼 튼튼하게 쌓을 수 있는지(TSV 기술) ▲레고를 더 작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지(미세 공정 기술) ▲쌓은 레고들을 안전하게 하나로 포장할 수 있는지(첨단 패키징 기술)에 달려있다. 실리콘관통전극이라고도 불리는 TSV 기술은 D램 칩을 일반 종이 두께의 절반보다 얇게 깎아 미세한 구멍을 내 칩 상하단의 구멍을 전극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말한다.

엔비디아의 올해 발주 물량이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만큼 수주량을 얼마만큼 확보하느냐에 따라 HBM 주도권 판세가 한번에 바뀔 수도 있다.

HBM 2~3세대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던 삼성전자도, 4세대부터 확실한 우위를 점유 중인 SK하이닉스로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엔비디아의 창업자 젠슨 황 CEO. [엔비디아 뉴스룸 제공=뉴스퀘스트]

이와 관련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2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HBM3E 12단 제품의 샘플을 5월에 제공하고 3분기 양산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라며 "HBM 생산 측면에선 저희 제품은 올해도 이미 완판이며 내년에도 대부분 솔드아웃이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또한 지난 3월 30일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HBM3E 사업화는 고객사 타임라인에 맞춰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업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제품은 2분기 중 양산 예정"이라며 "올해 당사의 HBM 공급규모는 비트 기준 전년 대비 3배 이상으로 지속 늘려가고 있고 해당 물량은 이미 고객사와 공급 합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美 마이크론, 지난 2월 HBM3E 양산...공급량 확대 위해 자본지출 5억달러 상향 조정

HBM 후발주자 마이크론은 4세대 제품인 HBM3 개발을 건너뛰고 5세대 제품 양산을 시작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연합뉴스 제공=뉴스퀘스트]

HBM 시장 내에서 10% 점유율을 유지하던 후발주자 마이크론도 과감히 4세대 제품인 HBM3 개발을 건너뛰고 5세대 제품 양산을 시작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론은 앞서 지난 2월 HBM3E 양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시기며 삼성전자보다는 2개월여 빠르다. 마이크론의 제품은 엔비디아가 2분기에 출시하는 GPU H200에 탑재될 예정이다. 

일각에선 HBM3E 시장에선 삼성전자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모건스탠리는 마이크론이 HBM3 규격 메모리에서 기회를 잡지 못 했지만 신형 HBM3E 메모리에서 안정적인 2위 자리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도권 확보를 위해 마이크론은 생산능력 확장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이크론 매튜 머피 CFO(최고재무관리자)는 "HBM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올해 자본지출(CAPEX)을 75억 달러(약 10조2000억원)에서 80억달러(약 10조9000억원)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마이크론은 지난 3월 "AI 반도체 개발에 사용되는 HBM칩이 올해 매진됐고, 내년 공급량의 대부분도 할당됐다"고 밝힌 바 있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 '뉴스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