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정부 때 만들어진 ‘국민연금’…개혁안 국회 통과 여부에 시선집중
민생과 밀접한 관계로 쉽사리 손 못대…文정부도 개혁안 발표 후 철회 26년째 보험료율 동결, 17년째 개혁 무산 등으로 관련 논의 본격화 ‘재정 안정’, ‘보장성 강화’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아야
【뉴스퀘스트=김민수 기자】 정부가 지난 4일 무려 21년 만에 정부 차원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회 통과라는 문턱이 남아있고, 벌써부터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사회, 전문가 사이에서 찬반 여론이 쏟아지고 있는 만큼은 최종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국민연금 개혁은 1998년 국민의 정부와 2007년 참여정부에서 각각 1차례씩, 총 2차례가 성사됐지만, 이후부터 개혁을 위한 제대로 된 시도조차 나오지 않았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국민연금 개혁의 ‘명분’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민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정치적 역풍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 ‘저부담·고혜택’ 지속가능하지 못한 구조로 출발한 국민연금
5일 정부·연금 전문가 등에 따르면 한국에서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88년이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과 일본(1961년 도입)과 비교했을 때 한참 늦은 시점으로 전두환 정부가 만들고, 노태우 정부가 본격 도입했다.
도입 첫해 보험료율은 3%, 소득대체율은 70%였다. 지금보다 훨씬 낮은 보험료율과 높은 소득대체율은 가입자를 끌어 모아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당시 정부의 입장에서 비롯됐다.
‘저부담·고혜택’이라는 지속가능하지 못한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향후 국민연금 개혁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개혁은 199년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시행됐다. 보험료율은 현재 수준인 9%로 인상됐고, 소득대체율은 60%로 하향 조정됐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 기금이 2030년에 고갈된다는 암울한 전망과 외환위기라는 위기 상황이 개혁 추진에 힘을 실어줬으며, 여야 합의도 이뤄졌다.
초창기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가 가입 대상이었던 부분은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농어촌 주민 등으로 확대됐고, 1999년에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와 도시 자영업자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1차 개혁의 성과는 가입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된 점이다.
2차 개혁의 경우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졌다. 2047년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또 다시 암울한 전망이 나오면서 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정부는 2003년 소득대체율 50% 인하와 보험료율 15.9%(2030년까지) 상향을 안으로 제시했는데 이번에 발표된 안은 이때 이후 21년 만에 나온 정부 단일안이다.
다만, 2003년 정부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주도 아래 동일한 안을 가지고 다시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정부안은 부결됐고, 보험료율 인상 없이 소득대체율만 40%까지 하향(2028년까지)하는 내용을 담은 여야 합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그 결과, 유 장관은 정부안 부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 개혁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부담에 개혁 시도조차 ‘주저’
2차 개혁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변변한 시도조차 나오지 못했다.
보험료가 증가하거나, 연금 수령액(소득대체율)을 줄이는 방식의 개혁에 대해 국민의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큰 부담을 가져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민연금 개혁 관련 논의가 줄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기초연금 개편이 주로 다뤄졌다.
박근혜 정부는 여야와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가입자와 노동자 대표 등으로 대타협기구를 구성해 2015년 ‘연금지급율 단계적 인하, 지급개시연령 연장, 연금액 한시 동결’ 등을 담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성공했다.
이와 반면에 기초연금 대상 확대 추진을 둘러싼 각종 논란 끝에 국민연금 개혁은 결국 건드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앞선 두 정부와 달리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시도는 있었지만, 최종 결과물은 없었다.
지난 2018년 ▲현행 유지(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 ▲현행 유지하되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소득대체율 45%로 상향,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50%로 상향, 보험료율 13%로 인상 등 4가지 복수안을 정부 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가 철회했다.
4가지 안들 모두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현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지속가능성과 공정성 제고,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으며 국민연금 개혁에 신경을 쓰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교육·노동과 함께 연금을 3대 개혁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는 개혁 방안을 담지 못했다가 이번에 뒤늦게 모수와 구조 개혁 모두를 담은 개혁안을 발표했다.
◇ 26년째 ‘동결’ 보험료율, 이번엔 조정될 수 있을지 관심↑
이처럼 정부가 바뀌어도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6년째 ‘동결’로 머물렀다.
만약 이번 국회에서 보험료율 인상이 결정돼 내년부터 보험료율이 오른다면 27년 만에 9%보다 오르는 셈이다.
특히 2007년 소득대체율 하향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올해까지 17년째 실질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개혁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안을 토대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선거의 영향을 받기 전인 올해 말과 내년 초가 이번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국민연금 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책임감 있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정부가 준 안을 논의해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 결정에 대해서는 만약에 행정부가 낸 안과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금 관련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논평을 통해 “이제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발표됐으니 이를 토대로 사회적 논의, 국회 심의가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금개혁은 ‘재정 안정’과 ‘보장성 강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시급한 상황이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제5차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제도가 현행을 벗어나지 않으면 2041년 수지 적자가 발생한다.
심지어 2055년에는 적립기금이 아예 없어지는 최악의 결과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적립기금이 없는 상태에서 매년 보험료 수입만으로 국민연금을 운영했을 때 필요한 보험료율을 보여주는 ‘부과방식 비용률’은 2078년에는 35%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될 경우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소득대체율이 계속 하향 조정되면서 보장성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국가 간 비교 시 기준으로 삼는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AW값)을 적용하면 한국 평균소득 가입자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2.9% 수준으로 OECD 평균(42.3%)에 크게 못 미친다.
여기에 추가로 국내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2022년 기준 38.1%로 OECD 평균 14.2%(2020년 기준)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국회가 ‘재정 안정’과 ‘보장성 강화’의 적절한 균형을 맞춘 타협안을 만들어 반드시 골든타임 내에 연금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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