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어려운데" 산업계, 한전 전기료 인상에 '비상'....경쟁력 저하 및 원가 부담 우려
산자부·한국전력, 오는 24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 1kWh당 16.1원 인상 결정 평균 9.7% 전기료 올라...대기업은 16.9원(10.2%), 중소기업은 8.5원(5.2%) 늘어 전기 활용 많은 반도체, 철강, 통신, 건설업계선 인상에 따른 원가 부담 우려
【뉴스퀘스트=권일구 기자, 김민우 기자】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산업계가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 활용이 많은 반도체, 철강, 통신 등의 업종에선 최대 10% 가량의 전력 요금 인상으로 제품 원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산업계의 전력량이 주택·일반용 전기요금 대비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평균 9.7%의 전기료 인상으로 큰 부담이 작용하는 만큼 정부가 전기 관련 세제감면 혜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3일 산업통산자원부와 한국전력(한전)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오는 24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16.1원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 방안에 따르면, 대용량 고객 대상인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1kWh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16.9원) 인상되고,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164.8원에서 173.3원으로 5.2%(8.5원) 오른다.
이들 고객은 약 44만호로 전체 한전 고객(약 2500만여호)의 1.7% 수준이며, 전력 사용량은 53.2%에 달한다.
특히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제철 등 반도체, 철강 등 제품 생산 과정에서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에 적용된다.
이번 정부의 전기료 인상 발표와 관련해 재계와 산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별도 자료를 내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한전의 부채 부담 완화 필요성, 가계와 소상공인 등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대기업에 대한 차등 인상으로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국내 산업계의 경영활동 위축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철강업계에서는 1kWh당 1원씩만 올라도 연간 비용 부담이 200억원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번 인상분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최대 3200억원 가까이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료)인상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기요금을 연간 9000억원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사의 경우 워낙 전기사용량 많아 요금이 올라가면 제품 생산 등 비용적인 측면이 발생해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라며 "이는 곧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철강업계가 전기 고로쇠를 적극 도입하는 등 탄소중립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산업용 전기료 인상에 따른 단가 상승으로 업계 경쟁력 저하가 예상된다"고 깊은 우려를 표했다.
여기에 최근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으로 전력 소비량이 많은 반도체 제조 업체와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통신 업체들에도 전기료 인상에 따른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기업 반도체 제조업체 관계자 A씨는 "HBM(고대역폭메모리반도체)나 파운드리 등 핵심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전력 활용은 필수인 만큼, 전기료 인상이 향후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반도체 제조업체 관계자 B씨도 "인공지능(AI) 수요가 늘어나게 되면서 이에 탑재되는 반도체 제조를 위해 많은 전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산업용 전기료 인상이 국내 AI 생태계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예상했다.
대형 장비 사용과 용접 등의 작업이 잦은 건설업계에서도 이번 산업용 전기료 인상이 차후 건설 원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 건설업계 관계자 C씨는 "아무래도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업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라며 "건설 자잿값 상승 등으로 이익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왜 산업계에 부담을 전가하는지 모르겠다 전기료 인상까지 겹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여기에 내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가 도매전기에 적용되게 되면 전력 의존도가 높은 수도권 소재 제조업에까지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업계에서는 요금 인상이라는 방식과 함께 저전력에 힘쓰는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우리 사회 전반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고 소비자에 대한 가격 신호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원가주의에 기반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요금 인상'이라는 네거티브 방식이 아닌 전기를 아끼면 인센티브를 주는 포지티브 방식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반도체 제조업체 관계자 A씨도 "반도체 업계에선 고성능과 함께 얼마만큼 전력을 줄일 수 있느냐인 저전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국가간 AI 기술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간의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반도체 제조업체 관계자 B씨는 "TSMC의 경우 이번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전기 문제에 대해서 전력 문제를 정부와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우리 역시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전기 요금과 관련해 인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손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산업용 전기료 인상과 관련해 보다 세부적인 안이 나와야 겠지만 가장 타깃이 될 부분은 경부하 요금인 야간 심야 요금인데 이를 인상하게 되면 이에 맞춰 중부하 즉 오후대 요금을 인하해주는 방안으로 업계의 부담을 줄여주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반도체 강국으로 꼽히는 대만의 경우 대만전력공사(TPC)의 재무 위기 상황을 고려해 지난 4월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11% 인상하면서도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파운드리 기업 'TSMC'에 대한 인상폭은 최소화해오고 있다.
궈즈후이 대만 경제부장(장관)은 지난 8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민생용 전기 요금은 안정돼 있고, 산업용 전기 요금은 국가가 자본을 들여 이익을 봐야 하는 만큼 이를 적절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수도세와 전기요금이 인상되더라도 한국보다 낮을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전은 산업용에 국한된 이번 전기요금 인상만으로도 대략 전체 요금을 5%가량 올리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로 인한 추가 전기 판매 수익이 연간 단위로 약 4조7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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