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년이' 보다 더 핫한 '정년 연장' 논의, 법제화 vs 기업자율 팽팽
여야 모두 '단계적 65세까지 정년 연장' 법안 추진, 내년엔 가시화 될 듯 재계, "65세 정년 연장땐 연 30.2조원 비용" 보고서 내놓고 저지 총력전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 내년 65세 인구가 20%를 넘는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정년 연장에 필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법안을 이미 발의했거나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재계는 현재의 임금체계에서 정년 연장은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며 “기업의 고용은 기업에 맡겨 달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년 연장’이 아닌 ‘고용 연장’ 시선에서 초고령화사회를 바라봐야 한다”며 기업 자율에 맡기자는 주장과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법적 정년이 일치하지 않는다. 정년 연장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 65세로 정년 연장시 연간 추가 고용비용 30조2000억원
한국경제인협회는 2일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추정 및 시사점’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표하고,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늘리면 60~64세 근로자의 추가 고용에 따른 비용이 연간 30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비용(30.2조원)은 25~29세의 월평균 임금 기준으로 약 90만2000명의 청년층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현행 임금체계에서 정년 연장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재검토해야 하며, 우선은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도 보도자료에서 “정년 연장 도입에 앞서 직무 가치·생산성을 반영한 임금체계로의 개편 등 기업들이 고령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보고서는 한경협이 김현석 부산대학교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것으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65세 정년 연장으로 늘어나는 60~64세 정규직 근로자 수에서 정년 연장이 도입되지 않더라도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60~64세 근로자 수를 차감해 정년 연장의 적용 규모를 추정했다.
그 결과 65세 정년 연장 도입 1년 차에 60세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이 연장되면 추가 고용되는 규모는 5만8000명에 이르며, 순차적으로 늘어 도입 5년 차에는 60~64세 모든 연령대의 정규직 근로자가 정년연장 적용 대상이 되면서 추가 고용 규모가 59만명이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보고서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65세 정년 연장으로 근로자의 고용을 64세까지 유지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산출했으며, 비용에는 예상 임금과 같은 직접비용과 4대 보험료 사업부 부담분 등 간접비용이 포함됐다.
이런 데이터를 토대로 산출한 결과 65세 정년 연장 도입 1년 차 60세 정규직 근로자의 추가 비용은 3조1000억원으로 집계됐으며, 60~64세 모든 연령대의 정규직 근로자가 정년 연장의 적용 대상이 되는 도입 5년 차에는 비용이 30조2000억원에 이른다.
◇ 여야 정치권, 정년 연장 기정사실화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격차해소위원회 주도로 정년을 단계적으로 늘려 2034년엔 65세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마련해 내년 초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한동훈 대표는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년 연장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에서 “과거 62세였던 건강수명 지표가 70세가 넘었다. 그 나이까지 노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라며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게 정년 연장 등 제도개혁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22대 총선 공약으로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후 22대 국회에서 강훈식·김주영·박정·박홍배·박해철·서영교·한정애 의원 등이 ‘고용상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일명 고령자고용법)을 각각 대표발의 했다. 법안 대부분은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하고,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 ‘법 없어도’…기업들 자율적으로 노령인구 고용
고령화시대가 대세인 만큼 선제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고, 필요한 근로자 수요에 따라 퇴직후 재고용을 시행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동국제강은 2022년 정년을 만 60세에서 61세로 연장한데 이어 지난 3월 62세로 한 살 더 높였다. 크라운제과와 인천공항공사도 정년을 각각 만 62세, 61세로 연장했다.
중견기업으로는 소신여객자동차가 2016~2019년 두 차례 걸쳐 만 60세였던 정년을 만 65세로 늘렸고, 대진여객도 지난해부터 정년을 만 63세로 늘린 상태다.
정년 연장은 아니지만 퇴직후 재고용을 통해 정년연장의 효과를 내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으로 현대차는 2019년부터 기술직(생산직) 정년 퇴직자를 대상으로 ‘숙련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기아는 정년 퇴직 후 재고용한 ‘베테랑’ 제도를 2020년부터 운용 중이다. 이 제도의 재고용 기간은 원래 1년이었으나 현재 2년으로 늘어났고, 대상도 영업직으로 확대됐다.
포스코는 작년 정년 퇴직자의 70%를 재고용하기로 노사 합의하고, 현재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용 기간은 1년 단위로 2년까지 가능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퇴직 후 재고용은 사측 입장에서 숙련된 노동자를 신입사원 연봉으로 고용할 수 있고, 근로자는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어 정년 연장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