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대한민국, 어르신 행복하십니까] ⑧ 재고용 vs 정년연장 사이에 ‘묘수’는 없을까
더 일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60세 퇴직후 일 없이 노는 사람이 어디있나" 1700만 베이비부머세대 대책 없이 은퇴 시장으로 내몰려 국가적 대책 시급 일본은 정년 연장·계약직 재고용 등 혼합해 '70세까지 의무고용' 검토해볼만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 지난해 말 한 중견기업 공장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이상민(61)씨는 다음 달부터 다시 계약직으로 현장에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체력이 있는데다 일하고 싶기 때문이란 게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본 실제 이유는 소득이 뚝 끊기면서 경제적으로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처지여서입니다. 실제 그는 1964년생으로 국민연금을 타는 63세까지 약 2년여 동안을 소득 없이 버텨야 합니다. 게다가 조금 모아둔 돈은 자녀 결혼을 위해 남겨둬야 하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돌봐야 합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로부터는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인 ‘마처 세대’의 자화상입니다. 이들은 본인의 노후를 걱정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푸념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세밑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특히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가 모두 법정 정년을 마쳤고,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가 올해부터 정년퇴직 행렬에 가세했습니다. 그러나 시니어들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일자리 연장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운만 떼 놓은 채 본격적인 논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 베이비부머의 ‘은퇴 쓰나미’가 온다
세계에서 고령화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는 어디일까요? 일본이나 유럽의 어느 나라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쉽게도 정답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2050년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40%를 넘어 홍콩에 이어 전 세계 2위가 된다는 충격적인 추계도 나옵니다. 국가 단위로는 세계 1위인 셈이죠.
우리의 고령화 속도가 이처럼 빠른 이유는 올해 51~70살로 전체 인구의 31.7%(1635만8307명,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기준)에 이르는 베이비부머의 급속한 노령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2028년이면 1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모두 65세 이상 노인이 되고, 2차 베이비부머도 올해부터 법적 정년을 끝내고 은퇴 행렬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상민 씨와 같은 갑진년(甲辰年) 용띠 해에 태어난 올해 61살은 2차 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입니다. 이들의 정년퇴임으로 인한 노동시장 이탈은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단일 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큰 2차 베이비부머가 11년에 걸쳐 법정 은퇴 연령(60살)에 진입한다”라며 “이로 인해 2024~34년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베이비부머들은 법적, 사회적인 고용 안전장치가 없었는데도 노동시장에서 버티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 연령별 취업자 현황을 보면 60대 이상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는데, 지난해 11월 기준 60살 이상 취업자 수는 677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3.5%에 달했습니다. 두 달 전 9월부터 50대 취업자를 제치고 가장 큰 비중으로 올라섰죠. 취업자 수는 60살 이상>50대>40대>30대>20대의 차례로, 전체 인구 구조의 변화 그대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1980년엔 20대 취업자가 26%로 가장 많고, 60대 이상은 5%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베이비부머가 고령화 되면서 뒤집힌 것입니다.
◇ 노사, 고용 연장 공감 하지만 정년 연장은 글쌔
급격한 생산연령 감소로 인해 우리 경제의 성장이 멈추거나 후퇴할 것으로 추산되면서, 노동계는 물론 재계조차 고용 연장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데에선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각자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차이가 큰데요. 노동계는 현재의 법정 정년(60세)을 65세로 연장하자는 입장인 반면, 재계는 60세 정년 이후 1~2년 단위로 재고용하면 정년을 연장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재고용 방식은 고령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노총 등 노동단체가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정년 연장의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집중될 수 있고, 고용의 경직성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91.1%는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100인 미만 사업장은 20.6%만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60세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는 사업장에서도 조기에 퇴직하는 사례가 많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2023년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임금노동자의 ‘주된 직장’ 퇴직 연령은 평균 50.5세로 법정 정년보다 10년 가까이 낮았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정년후 재고용 방안도 논의해 보자는 주장에 대해 노동계는 되레 중소기업·불안정 노동자에게 고용안정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노·사·정·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가 나서 합의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 등 정치 일정과 양쪽의 의견 차이가 매우 큰 점을 감안하면 조만간 합의안 마련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 고령화 선진국 일본 기업 99%는 65세까지 고용
정년 연장 문제는 고령화 선진국 일본의 사례도 참고해 볼만 한데요. 일본은 정년연장 보다는 고령자들의 고용 안정에 더 방점을 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보다 18년 빠른 1998년부터 법정 정년 60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2000년엔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기업이 65세까지 고용하도록 유도한데 이어 2006년엔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를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60세 법정 정년은 그대로 뒀지만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기업이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하도록 한 것입니다. 노동자가 원하면 현재 재직하는 기업에서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에겐 정년을 맞은 노동자를 계속고용할지에 대한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업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퇴직 후 계약직 재고용이라는 세 가지 가운데 여건에 맞게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한차례 더 개정해 ‘70세까지 고용 노력을 하도록 의무화’ 했습니다. 대신 기업에게는 ▲프리랜서 계약과 ▲자원봉사 두 가지 선택지를 추가해 줬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고령 노동자의 임금이 감소했는데요. 일본은 다수 기업이 재고용을 택하면서 60세 이상 고령자 임금은 ‘60세 시점’보다 33% 가량 하락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삭감된 임금을 고용보험이 노동자 개인에게 보조하는 보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다만 일본의 계약직 형식 재고용 허용은 고령자의 불안정 노동을 양산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펴낸 2023년 ‘일본 정년제도의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일본의 계약직 재고용 형태는 고령자의 근로조건 악화와 함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킨다는 문제가 있다”며 “고령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안정적인 생활환경 조성에는 미흡한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전진호 연구원은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문제는 고령화에 따라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노년 인구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안이다”라며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빠른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 속도, 현행 60세 정년제와 연금 수급 연령과의 괴리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관련 논의가 서둘러 진행되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일본의 사례를 무조건 벤치마킹하기 보다 정년 연장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고 효과는 극대화 하는 방향의 묘안이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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