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대한민국, 어르신 행복하십니까] ⑩ 1000만 노인의 목소리 “내 집에서 ‘돌봄’ 받았으면”
부모님을 요양원에 맡겨본 신노년들의 희망은 ‘재가 돌봄과 임종’ 내년 ‘돌봄 통합지원법’ 시행, 인력·예산·시스템 등 구축 서둘러야
<“네가 했던 말 중에서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도와줘’라는 말”이라고 말이 대답했습니다.> 지난 2022년 출간돼 인기를 끌면서 2023년도엔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소년과 두더쥐와 여우와 말’이라는 동화 속의 한 대사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 선뜻 ‘도와줘’라고 말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향후 10년후 인구 10명 가운데 3~4명은 노인인 미래 사회에서는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이른바 ‘돌봄 사회’로 진화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지난해 12월 23일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1000만 노인 시대’로 온전한 첫 해를 보내는 대한민국의 고민이 깊습니다. 지난 2017년 고령사회로 진입한 이후 불과 7년 만에 다시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속도에 정부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순서도 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죠.
많은 고민 가운데에서도 ‘노인 돌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발등의 불입니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18.6%는 일상생활 수행 능력에 기능적 제한이 있습니다. 평균 2.2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도 36%에 달합니다. 거기에 10.9%는 장기요양 상태에 있고, 11%는 장기요양 정도는 아니라도 지역 내 돌봄이 필요하다는 응답입니다. 열 명당 두 명은 크든 작든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이라는 얘기입니다.
◇ 요양원 없는 돌봄 가능할까? 민간에 기댄 돌봄의 현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은 가정이나 민간기관(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부담으로 조성한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재원만 부담할 뿐 거의 대부분이 각 가정마다 알아서 기관을 택해 돌봄을 하라는 식입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국회 보건복지위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장기요양기관 유형별 현황’ 자료를 보면 장기요양기관은 전국에 2만8868곳이었는데,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기관은 256개소로 전체의 0.9%에 불과했습니다. 153개 시군구에는 아예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이 없었습니다.
최근 본인의 집에서 돌봄을 받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재가 돌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베이비부머 등 ‘신노년’은 요양시설 등에 입원·입소보다는 살던 곳에서 돌봄 등의 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비중이 크다는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에 실린 논문 ‘노인의 생활환경과 노후생활 인식’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65세 이상 노인들의 87.2%는 희망 거주 형태로 ‘현재 집에서 계속 산다’를 선택했습니다. 48.9%는 ‘건강이 악화돼 독립적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원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자녀나 형제·자매 등의 집에서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은 2.5%에 불과합니다.
이중근 대한노인회 회장이 제안한 ‘재가 임종’도 ‘재가 돌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재가 임종제도는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자택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 회장은 “현재 노인 요양원에 지원되는 예산·제도를 재가 및 도우미 등에도 지원해 노인들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손을 잡고 임종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며 “외국 간호조무사들이 국내 취업할 수 있도록 주선하면 가족들은 본업에 종사하면서 노인을 모시고 노인은 편안하게 삶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건강보험연구원 조윤민 부연구위원은 “재가 노인의 돌봄 공백 발생과 주(主)돌봄자의 높은 부양부담은 재가 요양을 포기하고 시설 입소를 선택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라며 “돌봄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적 지원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 ‘돌봄 통합 지원법’ 시행이 대안 될까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돌봄 통합 지원법’은 노인과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며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와 요양 등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해 제공한다는 취지로 제정됐습니다. 노인들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년을 계획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게 법안의 목적입니다.
이에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의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을 제시할 중요한 법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법 시행을 위해 지난해 12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추진단’을 구성하고,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전담 조직을 운영 중입니다. 또 노인의 의료·요양 필요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으며, 서비스 제공기관 간 연계를 위한 전산시스템도 개발 중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행까지 남은 시간이 1년여에 불과한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합니다.
먼저 인프라 부족 문제인데, 전체 요양기관 가운데 공공기관이 0.9%에 불과한 상황에서 지역 단위의 서비스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냐는 의문입니다. 또 돌봄 통합 지원법 시행에 필요한 예산 규모와 지속 가능한 재정 마련 방안 또한 제시된 것이 없어 정책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짚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노인 돌봄을 전담할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등 전문 인력의 확충 문제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현안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일을 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65만7104명으로, 올해 수요 전망치 66만6513명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2028년엔 80만명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별다른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의료 시설이나 노인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간병·돌봄 인력 부족은 이보다 더 심각합니다. 건강보험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병원이나 개인이 개별적으로 고용한 간병 인력은 약 4만명 수준인데요. 대한요양병원협회는 전국 요양병원(지난해 1월 기준)의 필요 간병인 숫자는 약 11만명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여기에 지역마다 돌봄 인프라와 자원이 천차만별인 상황이어서, 전국적으로 균일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나옵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을 통해 전국적으로 지자체를 중심으로 제도적인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은 의의가 크다”라며 “그러나 향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서 세부사항을 제대로 만들어야 할 중요한 기로점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돌봄의 기본법으로서 이번 법률이 구조적인 난맥상으로 보이는 한국의 돌봄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도록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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