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에 빠진 위기의 석유화학업계, 비핵심사업 정리등 체질개선 안간힘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주요 기업 실적 악화 뚜렷 단순 업황 사이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위기 심화 대(對)중국 수출액 감소, 원가 글로벌 경쟁력 약화 지적 한경협, 산자부에 '석화산업 위기극복 긴급과제' 제출 원가 부담 완화, 경영환경 개선, 고부가 제품 지원 언급

2025-03-24     김민우 기자
석유화학계열 대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사진=여수시청]

【뉴스퀘스트=김민우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중국발(發) 공급과잉 및 중동 산유국의 사업 진출 영향으로 장기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비핵심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체질 개선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자칫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침체에 따라 수입 의존도가 커질 경우 국내 제조업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부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는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석유화학산업 위기극복 긴급과제'를 제출했다.

한경협이 건의한 지원책은 '원가 부담·과세 완화', '경영환경 개선', '고부가·저탄소 전환 지원' 등 3개 분야 13건으로 구성됐다.

한경협은 "석유화학 산업은 주요 생산비 중 전력비용이 약 3.2%에 달해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글로벌 가격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며 "정부 재원·기금을 활용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감면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시장점유율 한계가 해당 분야 1위가 되는 등의 경우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이 금지된다"며 "국내 석유화학업체가 동종 사업장 간 통폐합을 진행할 경우 기업결합이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예외 조항 신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LG화학 대산사업장 전경. [LG화학 제공=뉴스퀘스트]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위기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23년부터 중국의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이 이어지며 국내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한화솔루션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감소하거나 적자로 돌아섰다.

LG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9168억원)은 전년(2조5292억원) 대비 63.75% 감소했다. 금호석유화학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728억원으로 전년 3589억원 대비 24% 줄었다.

롯데케미칼은 영업손실이 3477억원(2023년)에서 8948억원(2024년)으로 증가했으며, 한화솔루션은 같은 기간 영업흑자(6045억원)에서 영업적자(3002억원)로 돌아섰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사진=롯데케미칼]

업계에선 이들 기업의 실적 부진이 단순한 업황 사이클 문제가 아닌 구조적 차원의 대(大)위기라는 데 입을 모은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요인으로 중국 시장에서의 수출 감소, 원가 경쟁력 약화, 중동 산유국의 COTC(정유·석유화학 통합시설) 설비 확대 등이 꼽힌다.

그간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수출물량의 40% 가량을 중국 시장에 의존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2022년 세계 1위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추고 되려 순수출국 전환이 가능해짐에 따라 대중국 수출액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은 457억달러(약 62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9% 줄었다. 이 가운데 대중국 수출액은 170억달러(약 23조3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7.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자급률이 높아짐에 따라 대체 시장을 찾아야 하나 자원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제품이 신흥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S-OIL 샤힌 프로젝트 현장에서 석유화학 시설물의 건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사진=S-OIL]

여기에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도 석유화학산업 진출에 나서며 국내 업체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COTC 설비 증설에 열을 올리며 가격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COTC 설비가 완료될 경우 생산비용과 운송비가 함께 절감되는 효과가 있어 이들의 에틸렌 생산 손익 분기점이 한국의 1/3 수준인 100달러 이하일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삼일PwC 연구원은 보고서 '위기의 K-석유화학, '팀 코리아'로 돌파하라'를 통해 "국내에서도 첫 COTC '샤힌 프로젝트'가 2026년 완공될 예정"이라면서도 "중국과 중동국가가 이들 지역 내 대규모 COTC 증설에 나서면서 국내 업계가 넘어야 할 산은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LG화학 미래기술연구센터 연구원들이 신규 개발한 생분해성 신소재를 시험하고 있다.  [사진=LG화학]

복합 위기를 맞이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체질 개선에 주력하며 위기 대처에 나서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들어갔다. 

지난 2월 19일에는 파키스탄 법인의 지분 전체를 979억원에 매각하기로 했고, 이달 초에는 인도네시아 자회사인 LCI(PT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 지분을 활용해 6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또한 롯데케미칼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소재 산업 생태계의 변화에 면밀히 대응해 기존 범용 석유화학산업의 비중 축소와 함께 투자 사업의 경쟁 입지 강화를 적극 추진해 나가고 있다.

LG화학도 장기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소규모 비핵심 제품, PVC 등 일부 노후화 라인 등을 중심으로 손실폭 축소에 나서며 체질 개선을 진행 중이다.

LG화학은 대신 자동차용 합성수지(ABS), 전기차용 SSBR(친환경 고기능성 합성고무) 등 고부가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가며 중국 외 지역 수출 다변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금호석유화학 역시 업계 트렌드를 분석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수립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 성장에 맞물린 SSBR 고객 접점 확대를 비롯해 탄소나노튜브(CNT) 개발을 통해 2차전지 소재에서의 시장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선 '산업의 쌀'로 불리는 석유화학 산업이 약화돼 수입 의존도가 커질 경우 플라스틱, 합성수지, 고무 등을 활용하는 제조업 전반의 체질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일PwC 연구원은 "석유화학산업은 전자, 자동차, 건설, 섬유 등 전방산업에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이라며 "석유화학산업이 흔들리게 되면 다른 산업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어 대한민국 산업 전체 밸류체인이 붕괴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자동차 이용자가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이같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에 지난해 12월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올 상반기 내 구체적인 실행안을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에는 설비 폐쇄,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신사업 M&A 등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법제 정비, 금융·세제 지원책 등이 담겼다.

업계는 기업들의 생존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원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범용품 중심의 수출 의존형 성장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석유화학산업의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재편이 시급하므로, 관련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에 큰 차질을 초래할 수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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