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 김정은 지켜보는데 뒤집힌 군함...평양에 숙청 피바람 부나
신형 구축함 진수식 도중 바다에 풍덩 김정은 “자존심 추락했다” 처벌 지시 간부에 책임 떠넘긴다 볼멘소리 나올 듯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이 야심차게 선보인 신형 구축함이 진수식 행사 도중에 바다에 잘못 미끄러져 들어누워 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초유의 사태에 북한은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보이며 체제 내부가 술렁이는 분위기다.
북한 관영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2일 보도에서 문제의 구축함 진수식이 하루 전 청진조선소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통신은 “진수 과정에 엄중한 사고가 발생했다”며 관련 사항을 비교적 상세히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사고는 진수과정에서의 미숙한 지휘와 조작상 부주의 때문에 벌어졌다. 선박의 아랫부분에 밀대를 놓고 바다 쪽으로 굴려 밀어 넣는 과정에서 균형이 맞지 않아 구축함의 뒤쪽인 함미가 먼저 빠져나가고 함수는 제대로 이탈되지 않아 옆으로 쓰러져 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현장에서 김정은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25일 서해 남포항 쪽에서 5000t급 구축함 최현호의 진수식을 딸 주애와 함께 참관했던 김정은이 이번에는 동해안으로 자리를 옮겨 같은 행사를 갖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순수 부주의와 무책임성, 비과학적인 경험주의에 인해 산생된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도저히 용납할 수도 없는 심각한 중대사고이며 범죄적 행위”라며 격노한 것으로 북한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격노했는지는 “국가의 존위와 자존심을 한순간에 추락시켰다”고 언급한데서도 알 수 있다. 또 “해당 일꾼(간부)들의 무책임한 과오는 오는 달에 소집되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취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6월 이에 대한 책벌이 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김정은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자 북한에는 비상이 걸렸다. 관련자들을 구속 수사하는 등 수습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 북한 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중앙통신은 23일 보도에서 “사고 조사 그루빠(그룹)가 청진조선소에서 발생한 중대사고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며 “검찰기관과 해당 전문가들이 망라됐다”고 밝혔다.
북한은 해당 사고가 경미한 피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통신도 “함에 대한 구체적인 수중 및 내부검사를 진행한 결과 초기발표와 달리 선저파공은 없으며 선체 우현이 긁히고 선미부분의 구조 통로로 일정한 량의 해수가 침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 “전문가들은 침수격실의 해수를 양수하고 함수부분을 이탈시켜 함의 균형성을 회복하는데 2~3일, 현측복구에 10여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북한의 주장과 달리 사태 수습과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대북 정보관계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형 구축함이 완전히 옆으로 쓰러져 버린 상황이라 이를 세우거나 해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북한이 대형 선박의 인양 등에 관련 기술이나 장비가 부족하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북한이 이번 사고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공개하고 나선 배경에도 눈길이 쏠린다. 사고 이튿날 오전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정황까지 드러낸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주민과 군 관계자들이 지켜본 상황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고라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 해석이 나온다. 특히 한미 대북정보망이 현장을 주시하고 있던 국면이라 은폐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위성사진 등이 공개돼 외부의 관심이 쏠리기 전에 정면 돌파하는 쪽을 택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북한의 발표 직후 서방 기관과 외신에 의해 관련 영상이 드러나 사고 상황이 생생하게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사고가 난 신형 구축함은 지난 4월 25일 북한이 첫 선을 보인 5000t급으로 당시 북한은 김정은 참관 아래 진수식을 하면서 '최현호'로 명명했다. 이번에 동급의 구축함 2번함을 진수하려다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김정은의 무리한 공기단축 지시나 일정 재촉이 꼽힌다. 최근 들어 김정은은 육해공군 재래식 무기의 개발에 집착하면서 노동당 군수공업부와 국방과학 분야, 군부에 대해 무기 생산량을 늘리고 신형 장비를 선보이는데 관심을 집중할 것을 요구해왔다.
김정은은 지난달 28일 북한군 전투병의 우크라이나전 파견을 첫 시인했는데, 이후 재래식 전력의 강화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 들어 그는 ▲탱크공장 현지 시찰(4일) ▲제2경제위 산하 중요 군수기업소 방문(7일) ▲동부전선 장거리포 및 미사일 체계 합동 타격 훈련(9일) ▲병종 별 전술 종합훈련(14일) ▲1공군사단 관하 비행연대 훈련(17일) 등 도발적 행보를 이어왔다.
이 같은 김정은의 지시에 북한 해당 분야나 간부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나자 김정은이 책임을 현장 간부와 조선소 관계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 살벌한 숙청바람이 불어 닥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사고조사 그루빠의 조사자료에 근거하여 법 기관에서는 사고에 대한 책임이 명백한 대상들을 먼저 구속하고 조사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며 “홍길호 청진조선소 지배인이 22일 법 기관에 소환됐다”고 전하고 있다.
이번 사고가 김정은의 무리수에 대한 비난이나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북한 정권에 대한 반발여론으로 번지기 전에 희생양을 만들어 수습하려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고 상황은 축소하면서도 관련자 책임은 엄격하게 묻는 양상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