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이재명 정부 남북관계 복원 로드맵...“윤활제 역할 이산상봉에 빨간불 켜졌다”
정상회담 개최 등 기대치 높아 김정은 움직일 결정적 카드 없어 ‘남북 다른 민족’ 주장이 걸림돌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남북 정상회담은 공교롭게도 모두 진보성향의 정부에서 열렸다.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첫 단추를 꿴 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 시기에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만났다.
이런 흐름 때문인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핵 문제나 미사일 위협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임기 중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담판 테이블이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201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관계’로 규정한 뒤 ‘대한민국은 제1의 주적’ 운운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대북이슈에 대해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듯한 양상을 보인 것도 북한 문제를 거론해 진보이건 보수이건 득을 볼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대남 차닥벽 치기는 북한군의 훈련 모습에서 가장 역력하게 드러난다. 최근 잇달아 특수부대를 찾는 김정은의 모습을 담은 영상에는 적대감으로 가득찬 구호와 선전 포스터가 나타난다.
한 부대 훈련장에는 '대한민국 족속들은 동족이 아니다'는 대형 선전판이 등장했다. 또 무자비한 초토화나 영토완정 운운하는 구호도 내걸렸다. 북한 주민들, 특히 젊은 군인들에게 대남 적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 대남정책 노선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첫 남북 정상회담 때 ‘우리 민족끼리’라는 문구 하나를 6.15공동선언에 넣으려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이를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할아버지 김일성의 통일 관련 정책노선 등을 담은 3대헌장기념탑을 하루아침에 폭파 형식으로 철거하기까기 했으니 저승의 김일성・김정일이 이를 지켜본다면 기가막혀 혀를 찰 일이다.
사정이 이러니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 역할을 해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인도적인 사안인 혈육 간의 만남을 통해 남북이 같은 민족임을 확인하고,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의 대화 호응을 이끌어 내는 남북 간 묵언의 주고받기가 앞으로는 불가능해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해 8월 첫 행사를 치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그동안 모두 21차례 진행됐다. 하지만 2018년 금강산 상봉을 끝으로 7년 동안 중단된 상태다.
대남 적대노선의 불똥은 이산상봉에도 튀었다. 김정은은 올 초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금강산 현지에 우리 측이 건립한 지상 12층 규모의 면회소까지 철거하는 조치를 취했다. 아예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이산가족 상봉에 적극 호응해 나온다면 그건 자가당착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남북은 다른 민족' 이라고 주장해왔다는 점에서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접근 로드맵이 순항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산상봉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그와 짝을 맞춰온 대북지원도 불발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온 이산상봉과 대북지원이 맥을 못춘다면 그만큼 돌파구를 여는데 에너지를 많이 허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김정은의 어설픈 대남 적대의식이 남북관계를 전면 차단한 것 물론이고 그 복원까지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유화제스처를 보인 김정은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3차례의 정상회담 했다.
또 1기 집권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자 문재인 정부에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고 거친 비난을 퍼부으면서 대남 차단벽을 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는 더욱 굳어졌다.
김정은이 지난 한국 대선에서 전혀 개입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대남 거리두기나 노골적 무시정책의 하나로 봐야 한다. 대선 하루 만에 나온 북한 관영매체의 반응도 “이재명 당선”을 포함한 딱 두 문장 이었다.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본관(本貫)이 전주 김 씨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손자 김정은이 이를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듯한 노선을 취하면서 ‘남북은 같은 민족이 아니다’는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3대 세습 권력의 유지를 위해 2500만명 주민을 '대남 적대'라는 허상으로 가스라이팅하는 건 반민족적인 죄악이다. 김정은의 통일‧민족 지우기는 이제 그만 중단되는 게 마땅하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접근법도 이런 차단벽을 깨지 못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