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일의 IT직설] 문체부 공무원이 승진도 마다하고 사표를 던진 이유

2025-06-11     박형일 전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박형일 전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지난 5일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과거 정부 때 임명된 국무위원들과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여러 차례 분위기를 잡는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임명권자를 넘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책임감 있게 다해달라는 당부도 같이 했다고 한다.

정부 내 어느 자리에 있든지 간에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자는 실용주의 자세다.

형식과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질문과 토론 없이 형식적인 의결에 그쳤던 전 정부 국무회의와 달리 경제 부처 참석자와 3시간이상 집중 토론했다.

하지만 정부부처 장차관이 모든 업무내용을 숙지하고 토론을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한국의 관료사회는 잘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그야말로 토론과 합의가 없는 권위주의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장관의 뜻대로, 때론 용산의 뜻대로 잘 작성된 보고서는 대부분 서울에 상근하고 있는 장차관에게 눈도장만 잘 찍으면 넘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실국장급이상 고위공직자들은 예산을 쥐고 있는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이나 기재부 예산실 설득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실효성 있는 토론의 문화가 정착될 리 만무했다.

실무진과의 카카오톡 대화 몇 마디로 보고서가 완성되고 장차관의 바쁜 서울주재에 맞춰서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는 게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지난 정부 때 세종시 장관급 위원장들은 용산의 부름을 받기 위해 저녁마다 대기해야 한다는 이유로 재임 중 실국장 대면미팅도 없었다는 후문까지 들린다. 한국판 관료주의의 생생한 현실이다.

지난 9일 개최된 비상경제대책TF회의에서는 앞으로 회의할 때 차관이나 실무 국과장까지 참석해도 좋다고 한 것을 보면 제대로 된 토론이나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듯하다.

하기야 장관급 참석자들이 보통 라면하고 프리미엄 라면 값을 정확히 알고 경제대책회의에서 이야기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

기업에서도 질문을 잘하는 최고경영자(CEO)를 따라가기 어렵다.

누구나 통상 3단계 질문을 넘어서면 제대로 답변하기 힘들다. 이는 경영자든 실무자든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매번 질문할 때마다 생성형AI에게 답을 받아서 전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기성세대는 대학까지 포함해서 암기형 교육과정에 익숙해져 있다. 특히 질문은 보고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까지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올해 정보통신기술(ICT)업계 CEO로 임명된 모 최고경영자는 늘 3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첫째는 해당 사업의 정의에 대한 질문이다.

자기가 맡은 사업 또는 비즈니스가 어떤 내용인지를 묻는 내용이다.

기능적인 정의이든 전체 생태계를 아우르는 정의이든 간에 대부분 간과하기 쉬운 질문이고 대답하기도 어렵다.

또한 각자의 이해수준과 인식이 다른 탓에 통상적으로는 워크숍이나 연간·분기별 사업점검 때 주로 논의한다.

두 번째 질문은 그 사업을 통해서 우리는 어떠한 실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에 대한 것이다.

현재 맡은 사업 퍼포먼스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하고 있는 사업의 실적을 리뷰하고 위기와 기회 요인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질문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한다. 현재에 대한 예측도 불확실한데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욱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분석하듯 앞으로 과거가 될 현재 또한 미래예측을 위한 토양분이 된다. 더욱이 정답이 없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야말로 기업과 조직의 창의력을 키우는 자양분이다.

지금 당장 질문을 많이 하는 새로운 CEO를 모시기는 힘들지만 이를 통해서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상상을 통한 창의력은 앞으로 미래를 짊어질 사원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이조스는 회의 때마다 지금 고객이 이 자리에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늘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사업과 비즈니스의 본질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질문이자 끝없는 숙제이기도하다.

지난 연말 문체부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전직 공무원이 쓴 ‘나라를 위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이 화제다.

우선 책제목부터 파격적이다.

노한동 전직 문체부 서기관은 진급하자마자 무의미한 일을 그만두기 위해서 사표를 섰다고 한다.

노 전 서기관은 공직사회에서 승진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온 엘리트관리였다.

하지만 그는 공직사회가 적극행정은 뒷전이고 윗분들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쓰거나, 장차관의 현장방문을 위해서 각본을 짜고 연출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토로한다.

한마디로 가짜노동이 공직사회에서 판을 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기력에 대해서 노 전 서기관은 “중요하지 않은 일에 행정력을 쏟아 붓고, 헛된 일에 시달리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지난 5일 국무회의 종료 후 이재명 대통령의 정부부처 업무보고 평가 중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다.

이 대통령은 과기부의 AI업무보고에 대해 ‘행정편의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얘기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 관료사회는 실용주의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권위주의도 과감히 던져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노 전 서기관처럼 관료주의에 신물이 나 보장된 미래를 내던지고 사표를 던지는 공무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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