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1년 안에 태워라…소각 의무화 앞두고 '셈법' 복잡해진 재계
【뉴스퀘스트=이윤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시장은 특정 대주주의 입맛대로 자사주를 활용하는 폐단을 막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치워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11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지난 9일 상장법인의 자사주에 대해 원칙적으로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 자사주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대주주의 의결권은 발행주식 총수의 3%로 제한하는 조항(제542조의14)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자사주 의무 소각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이번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남근 의원은 민주당 민생부대표이자 코스피5000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이 코스피5000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관련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김 의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자사주 소각 관련 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상장사 1666개사(전체의 73.6%)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은 142개사(8.5%)에 그쳤다. 김 의원은 "실제로 자사주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상장사는 216개에 달하며, 40%를 넘는 기업도 4곳이나 존재하는 등 자사주가 과도하게 축적·남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사주 소각이 확대되면 발행 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배당과 유사한 주주환원 효과를 가져온다”고 법안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자사주는 일반적 취득이 인정되지 않았으나 이명박 정부 당시 2011년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취득이 허용됐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미국의 모범회사법이나 이를 따르는 캘리포니아 회사법은 자사주를 ‘발행되지 않은 주식’으로 간주해 사실상 소각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고, 독일도 자사주 보유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경우 3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간 기업들이 자사주를 전략적 목적으로 활용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을 샀다. 예를 들어 인적분할 후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우호적인 제3자에게 넘겨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를 낮은 가격에 매각하면서 기존 일반 주주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례도 발생하곤 했다.
시장에서는 주주가치 제고와 투자심리 개선 등이 기대된다며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배당은 소득세를 부과하지만 자사주 소각은 과세 없는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라며 “의무 소각이 현실화하면 국내 증시에 존재했던 기보유 자사주 물량 출회(오버행) 우려 또한 해소된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코스피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다고 가정했을 때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소각만으로 3.3% 상승했다”며 “자사주 매입은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인다”고 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자사주 소각까지 의무화되면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실상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국내엔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할 경우에도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만을 강제할 경우 국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우리 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투기 세력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가장 강력한 경영권 방어책은 경영 효율화와 기업 내재가치에 걸맞는 주가를 유지하는 것이지 않나.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경영권을 위협받는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데 이어 자사주 일괄 소각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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