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대한민국, 어르신 행복하십니까] ‘치매 머니’가 무려 154조...‘국가공인 재산집사’가 해결책 될까
정은경 복지장관 '공공신탁제도’ 도입 의지에 관련법안 추진 급물살 저출산고령사회위, 연말 ‘제5차 고령사회 기본계획’ 발표 포함 예정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자녀가 없는 78세 이 모 할머니는 최근 남편이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재산이라곤 소형아파트 한 채 뿐이어서 이를 팔아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험한 세상에 자칫 사기라고 당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치매 유병률이 높아지면서, 고령자들의 자산을 둘러싼 위험도 커지고 있다. 치매가 단지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재산의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29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치매 고령자들의 재산을 집사처럼 관리해주는 ‘공공신탁제도’ 도입이 본격 검토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치매 등으로 재산 관리가 어려운 노인을 위해 공공기관이 재산을 맡는 ‘공공신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언급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관련 정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것.
이 제도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중 하나다. ‘국가가 어르신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이 제도를 서두르는 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은 무려 154조원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 GDP의 6.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리고 이 수치는 2050년이면 488조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고령자의 자산 문제가 더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의 리스크로 떠오른 셈이다.
‘국가공인 재산집사’가 생긴다
공공신탁제도는 한마디로 ‘국가공인 재산집사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고령자가 건강할 때 미리 자산 계획을 세워 국민연금공단 같은 공공기관에 재산 관리를 맡기면, 해당 기관이 계약에 따라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고, 의료비나 간병비도 대신 처리해주는 구조다.
치매나 인지장애 등으로 판단력이 떨어져도, 사전에 설계된 계획에 따라 안정적으로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 동시에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도 줄어들 수 있다. ‘내 재산을 어떻게 쓸지’, ‘누구에게 얼마나 남길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끝까지 지켜주는 제도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민간신탁에서 소외돼온 서민과 중산층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보호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의 민간신탁은 대부분 고자산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대부분의 노인들에게는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시범사업에서 전국 확대까지 “사회적 논의가 중요”
복지부는 공공신탁제도 시범사업을 빠르게 시작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올해 연말까지 이 제도를 포함한 ‘제5차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며, 제도화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실행이다. 제도의 취지는 분명하지만 이를 둘러싼 법적,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누구에게 어떤 자산을 맡길 수 있는지, 수수료나 계약 조건은 어떻게 설정할지 등 세부 설계가 허술하면, 되레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치매라는 질병 자체에 대한 낙인과 편견, 가족 내 신뢰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제도가 성공하려면 제도적 투명성과 상담·교육 시스템까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시니어케어 스타트업 ‘요잇’의 차기호 대표는 “공공신탁제도가 하루 빨리 도입돼야 하지만, 시행 전이라도 우선 자신의 자산 현황을 정리해두고 노후 생활비와 의료비 계획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치매가 발생하면 형제 간의 유산 다툼은 물론 보호자간 책임 공방도 잦은데, 공공신탁제도가 가족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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