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 감자‧옥수수가 주식이 되어버린 북한...“쌀밥에 고깃국은 언제 먹을까”
감자가 흰 쌀처럼 맛있다는 ‘감자송’ 국제기구 “주민 40% 만성적 굶주림” 아일랜드 비극 한반도서 재연 안돼야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라도 유튜브나 SNS에서 대박을 낸 ‘감자송’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예쁘게 차려입은 꼬마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둥글둥글 왕감자 대홍단 감자 너무 커서 하나를 못다 먹겠죠’라며 부르는 노래는 코믹한 율동까지 더해져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런데 영상을 곱씹어볼수록 씁쓸함이 남는다. 우리는 그저 재미로 넘길 수 있지만 현실 속 북한 주민들에겐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보여주는 노래라는 점에서다. 언제 우리 민족의 절반이 감자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삶을 강요받게 됐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금할 수 없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흰쌀처럼 맛있는 대홍단 감자’라는 구절 같기만 하다면 왜 장마당에서 쌀과 감자가 같은 가격에 팔리지 않겠는가. 또 이 짤막한 동요에도 3절에 ‘장군님 사랑 속에 풍년 들었죠’라는 가사를 끼워 넣은 걸 보면 북한 체제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 씁쓸한 느낌을 갖게 한다.
감자(potato)는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남아메리카 페루와 칠레‧에콰도르 등 안데스산맥 일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적어도 7000년 전부터 재배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감자가 전래된 건 1824년께로 6.25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재배가 이뤄졌다고 한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옥수수와 함께 양대 신대륙 작물에 속하는데, 북한이 감자와 옥수수를 주식량으로 삼고 있는 현실을 보면 김정은이 중남미 선조들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듯하다.
사실 감자는 아일랜드와 독일 등에서 주식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고구마와 함께 구황작물로 간주된다. 가난하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란 얘기다.
북한에서 감자산지로 꼽히는 양강도 대홍단은 삼지연‧낭림‧운흥 다음으로 가장 추운 곳이다. 그만큼 살기 어려운 곳이라 제대군인 등에게 입당을 조건으로 의무적으로 살게 하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
북한에서는 감자를 쪄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감자녹말가루로 만든 농마국수나 감자묵, 감자범벅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북한에서야 대홍단 감자가 이름났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강원도 대관령감자에 비할 바 아니다. 대관령감자의 경우 과학적인 품종개량 등을 거쳐 풍미와 영양은 물론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것으로 사랑받고 있다.
감자전과 감자떡, 감자옹심이 등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고 그대로 쪄먹는 맛도 일품이다. 최근에는 강원도 춘천에 감자빵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업체가 생겨나 대박을 치면서 창업주 집안 내부에 분쟁이 생겼다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좀 더 세계로 시야를 넓혀보면 압도적인 감자를 찾을 수 있다. 햄버거 가게에 들려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를 함께 먹다보면 그 크기에 놀랄 때가 있는데, 여기에 쓰이는 감자는 대부분 미국 북서부의 아이다호주에서 나는 러셋 버뱅크(Russet Burbank) 품종이다. 아이다호주는 미국 제1의 감자 생산지로 유명한데 대부분 전분이 많은 분질감자로 감자튀김에 안성맞춤이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는 북한의 식량 부족이 심각해 2500만 주민 가운데 40%가 넘는 1200만명 가량이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식량난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원조를 받거나 차관형태로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남조선 것 받지 말라’거나 ‘원조는 제국주의의 수법’이라며 차단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스피커 철거, 북한 개별 관광 허용 등의 전향적 조치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런저런 문제 제기와 비판이 있고, 북한의 호응이 따라야 하는 문제라 성사에 어려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강 강변에는 청동조각상이 늘어서 있다. 깡마른 체구에 퀭한 눈을 한 이들은 1840년대 대기근(Great Famine)으로 인해 굶어죽은 이들을 형상화한 동상이다. 당시 600만명의 아일랜드인 중에 100만명이 죽고 다른 100만명 미국 등 신대륙으로 이주를 떠날 정도의 참상이 벌어졌다.
하지만 영국은 이를 제대로 돕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아일랜드인들의 감정은 악화됐다.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존 미첼이 “감자를 망친 것은 신이었지 이를 대기근으로 만든 것은 영국인들”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 김정은이 교류협력과 개방의 길로 나서 남북의 동포들이 함께 감자송을 부르며 힘겨웠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웃음 지을 통일의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또 그 이전에라도 굶주리는 주민들이 쌀밥과 제대로 된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방도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먼 훗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향해 “당신들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라고 따져 물을 때 아무런 할 말이 없으면 안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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