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55세이상 여성 단독세대'는 무조건 깎아준다?...'1.1조원' 건보료 경감제도 허점 투성이
제도 90년대 만들어, 2025년 초고령사회의 현실에 안맞아 건강보험연구원 "대부분 혜택 최소화하거나 폐지해야" 제안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 건강보험 제도도 100세 시대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을 시점이 됐다는 여론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당국이 먼저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에 메스를 들었다.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산하기관인 건강보험연구원이 최근 ‘건강보험료 경감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통해 연간 1조1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경감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제안했다.
현행 제도가 더 이상 고령화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일부 계층에 과도한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안의 핵심 취지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제도는 제자리...형평성 손질에 초점
이번 개편안의 중심에는 ‘55세 이상 여성 단독세대’에 대한 경감 항목이 있다. 해당 제도는 1998년, 당시 상대적으로 경제적 자립이 어려웠던 중·장년층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25년이 흐른 지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크게 증가했고, 일부 여성 단독세대의 소득과 재산 수준은 유사한 남성 단독세대보다 오히려 높은 경우도 발견됐다.
예컨대, 서울에 거주하는 60대 여성 A씨는 과거 남편과 사별한 이후 단독세대가 되었지만, 현재는 상가 임대수입과 금융자산에서 고정 소득을 얻고 있다. A씨는 건강보험료 경감 혜택을 받아 매월 수만 원만 납부하는 반면, 동일 연령대의 남성 단독세대는 오히려 더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사례는 제도 도입 당시의 정책 목적과 현재의 현실 사이에 괴리가 커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원은 이에 따라 해당 경감 항목의 신규 적용을 중단하고, 10년 내로 자연스럽게 65세 이상 노인 경감 제도에 통합하는 방식의 단계적 폐지를 제안했다.
농어촌 경감, ‘거주지’ 기준에서 ‘소득’ 기준으로 바뀌어야
농어촌 지역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일률적 경감 제도도 개편 대상으로 지목됐다. 현재는 농어촌 지역에 거주하기만 하면 소득이나 재산과 무관하게 건강보험료의 22%를 감면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부 고소득자들까지 동일한 혜택을 받는 형평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실례로, 전남의 한 지역에 거주 중인 50대 농지 소유자 B씨는 도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농어촌 거주자라는 이유만으로 경감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는 동일한 소득 구조를 가진 도시 지역 가입자와 비교할 때 제도의 공정성을 크게 해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구원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농어업인 지원’ 제도처럼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경감률을 차등 적용하거나, 일정 기준 이상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진짜 취약계층은 국가가 직접 지원하면 된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정책적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경감’ 방식이 아닌, 국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감 제도는 결국 다른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으로 재원이 충당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회적 연대와 형평성이라는 건강보험의 기본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의료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섬이나 벽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감 항목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도 함께 제시됐다.
이번 제안은 건강보험연구원의 정책적 제언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나, 정부와 국회, 보건복지 당국이 이를 정책에 반영할 경우 건강보험 제도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초고령화와 100세 시대에 걸맞은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체계를 구축하려면, 낡은 제도를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건강보험연구원 관계자는 “건강보험료 경감 제도는 태생적으로 ‘보호’의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앞으로는 누가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재합의가 필요해진 시점이다”라며 “100세 시대의 건강보험은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사회 안전망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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