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노인시대/끝·⑤‘액티브 시니어’의 하루] ‘65+인터넷세대’, 소비혁명의 주체가 되다
실버 티켓파워, 공연장·여행지 점령하고 백화점엔 ‘웰에이징 코너’ 지갑으로 말하는 1000만 시니어, 레저·소비업계 황금손으로 부상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노인인구 1000만 시대’에 진입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65세 이상 인구는 1012만명으로, 전체 인구 5180만명의 약 5분의 1을 차지했다.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노년 부양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는 금융·의료·주거·유통·노동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제 시니어는 더 이상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경제의 핵심 소비자이자 투자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노인 1000만 시대’ 시리즈를 통해 각 산업별 대응 전략과 새로운 성장 기회를 조망하고자 한다. 금융권의 시니어 자산 관리 경쟁, 의료·헬스케어 산업의 구조 변화, 실버타운과 도심형 요양시설 확산, 실버 소비층을 겨냥한 유통 혁신, 액티브 시니어의 재취업과 평생교육 확대까지 다각도로 분석한다. <편집자주>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평일 아침, 스마트폰 앱으로 주말에 부인과 함께 가기로 한 여행지의 SRT 좌석을 고르고, 점심 무렵엔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할 클래식 공연을 예매했다. 저녁엔 메신저를 통해 걷기 여행 동호회 멤버들과 만나 다음 주 코스를 상의하고 일정을 맞췄다. 65세가 넘으니 시간이 재산이고, 발 편한 신발과 가벼운 배낭이 자유를 보장한다. 계산대 앞에서 주저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내 페이스’로, ‘내 취향’에 맞춰 산다.”
노령인구 1000만 시대, 대기업 계열사 임원으로 은퇴한 한 중산층 시니어의 일상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퇴직자’가 아닌, 여유와 소비로 삶을 새롭게 그려가는 ‘액티브 시니어’다. 그리고 그의 하루는 지금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거대한 변화, 실버 이코노미의 소비혁명을 잘 보여준다.
‘액티브 시니어’의 활약 시작되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이다. 그는 과거의 노령층과는 달리 소비력이 있고, 디지털에도 익숙하며, 삶을 적극적으로 즐긴다. 이런 액티브 시니어들의 움직임이 산업 지도를 바꾸고 있다.
그의 하루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작된다. SRT 예매 앱은 이미 손에 익었다. 주중 할인을 선택해 65세 이상 30%를 절약한다. 코레일 역시 ‘노인석’을 예매하면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혜택은 개인의 지갑을 열게 만들고, 나아가 철도·관광 인프라 전체의 수요를 바꾼다. 느린 일정, 연박 여행, 완만한 동선이 시니어 여행의 핵심 키워드다. 교통편이 여의치 않을땐 여행사를 통한 일정을 짤 때도 있는데, 최근엔 여행상품에 계단 수·경사도·의료시설 위치까지 명시돼 상품도 나왔다.
공연장을 채우는 새로운 주인공
점심 무렵, 그는 클래식 공연을 예매했다. 예전 같으면 공연장은 ‘젊은 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낮 공연의 절반은 시니어 관객이다.
2024년 상반기 공연예술 매출은 6288억원, 예매 건수는 977만매로 전년보다 25% 가까이 늘었는데 시니어들의 공헌도가 큰 것으로 추산된다. 낮 시간대 공연, 브런치·티타임과 결합된 패키지는 연일 매진될 정도로 인기다. 그는 공연 좌석도 직접 고르는데 통로석·앞쪽 완만 구간을 선호한다. 무릎에 부담이 덜하고, 이동도 편하기 때문이다.
문화 소비는 단순한 여가를 넘어 ‘자기 정체성 확인’이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공연장에서 여전히 사회적 활력을 느낀다.
저녁 시간 그는 동호회 메신저에 접속한다. 다음 주 ‘걷기여행 코스’를 두고 대화가 이어진다. 온라인 메신저 이용률이 65세 이상에서 93.9%에 이른다는 통계가 여기서 실감난다.
그가 선택한 코스는 하루 8~12km 정도를 걷는 트레킹 패키지로 경사가 완만하고 중간마다 카페와 화장실이 표시돼 있다.
옷장 속 변화, 멋과 기능이 만난 패션
그의 옷장도 변했다. 출근할 때 입던 딱딱한 양복 대신, 경량 아우터와 기능성 팬츠가 주력이다. 주말 골프 모임에는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스트레치 골프웨어를 입는다. 신발은 발볼이 넓고 쿠션이 강한 ‘컴포트 슈즈’.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어 장시간 걸어도 피로가 덜하다.
업계는 이를 ‘웰에이징 패션’이라 부른다. 2023년 고령친화 용품 제조업 시장 규모는 4조2083억원에 달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60세 이상 매출이 팬데믹 이전보다 60% 넘게 늘었다. 시니어는 이제 패션 시장의 ‘주력 고객’이다.
그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니 ‘시니어의 일상’이 곧 산업의 새로운 기준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교통은 경로할인과 맞춤 인프라로, 공연장은 낮 회차와 편의 시설로, 패션은 기능성과 멋의 균형으로 재편되고 있다.
노인 1000만명 시대가 결코 짐이 아닌 오히려 새로운 소비와 경험의 무대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가 경제를 움직이는 주체로 그리고 우리 주인공처럼, 수많은 시니어들의 일상이 곧 한국 사회의 내일을 예고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노인 1000만시대’를 단순히 복지 지출의 증가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읽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소비문화연구소 이정민 소장은 “이제 65세 이상 인구는 단순한 ‘수요자’가 아니라, 문화와 산업을 바꾸는 주체가 됐다”며 “레저·여행·패션·문화 소비가 전 연령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층이 바로 시니어로 이들의 소비가 한국 경제에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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