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늙음 보다 두려운 기억없는 삶”...‘100만 치매 시대’ 문턱에 서다
오는 21일은 ‘치매극복의 날’...치매에 맞서는 방법은 약보다 중요한 ‘생활 처방’, 30분 걷기·채소 한 접시가 뇌 건강 지켜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요즘은 방에 들어가면 왜 왔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이름이 혀끝에만 맴도니 속이 타죠. 병원 가보자는 아이들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혹시 ‘그 병’이면 어쩌나 겁이 납니다.”
70대 중반 김 모씨의 고백이다. 치매는 많은 시니어에게 ‘병’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찾아온다. 최근 설문에서도 국민 10명 중 9명이 치매에 대한 공포와 부담에 공감했다. 대한치매학회와 리얼미터가 국내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치매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한 결과, 두려움·부담감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무려 90.4%에 달했다.
65세 이상 10명중 1명은 치매, ‘100만 명 시대’ 눈앞
매년 9월 21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가 정한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이자, 우리나라의 ‘치매극복의 날’이다. 나이 든 이들의 일상적인 두려움이 이 날만큼은 사회적 화두로 올라온다.
치매는 이미 우리 사회의 거대한 과제다. 최근 중앙치매센터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91만 명(치매 유병률 9.15%)으로, 노인 10명 중 1명꼴이다. 전문가들은 내년이면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고령화 속도는 이를 더욱 가속한다. 2050년에는 노인 6명 중 1명이 치매를 앓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치매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 조사결과, 2023년 기준 환자 한 명당 연간 관리비용은 약 2699만 원에 달하고, 전체 사회적 치매관리 비용은 연간 24조5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치매는 환자 개인을 넘어 가족, 국가 재정에까지 영향을 주는 거대한 파급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알츠하이머, 가장 흔한 치매...‘건망증’과는 달라
치매는 뇌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상태를 가리킨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은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는 단순한 건망증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장보러 갔다가 몇 가지를 깜빡하거나 친구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는 가까운 가족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늘 해오던 집안일도 잊어버린다. 힌트를 줘도 기억을 되살리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매는 조기에 발견할수록 대응이 수월하다. 진단 과정은 간단한 인지검사에서 출발해, 정밀 인지검사와 뇌 영상검사, 혈액검사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발견하면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효과적이다.
전문가들은 “조기 검진을 통해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기검진을 강조한다.
완치는 어려워도, 진행은 늦출 수 있다
현재까지 치매의 완치 방법은 없다. 그러나 진행 속도를 늦추고 독립적인 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법은 다양하다. 약물치료와 함께 고혈압·당뇨 조절, 금연, 규칙적인 운동, 두뇌 훈련 등이 권장된다.
최근 국내에 도입된 신약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줄여 병의 악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이미 사라진 기억을 되돌려주지는 못해, 예방과 조기 발견이 여전히 핵심이다.
치매 예방은 청년기부터 시작된다. 충분한 교육 경험이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가 있고, 중년기에는 외상·고혈압·비만·과음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년기에는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이 치매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하루 30분 걷기, 주 5회 이상의 규칙적 운동, 채소·견과·생선 중심의 식단, 그리고 꾸준한 대화와 사회활동을 권장한다. 이런 생활 습관은 뇌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꼽힌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장혜민 교수는 “치매는 단순히 노인의 병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다”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과 ‘생활 관리’로 작은 습관 하나가 뇌 건강을 지키고, 두려움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 '뉴스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