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제 변호사의 로(Law) 인사이트⑫] CEO의 안일한 자금집행, '형사리스크'로 돌아온다
【뉴스퀘스트=법무법인 서울 조기제 변호사】 대기업 회장님이 수사를 받기 위해 수사기관에 출석한다는 뉴스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몇 가지 궁금한 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대기업 회장님과 관련한 사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비자금’이다. 비자금이 왜 형사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또 비자금에는 ‘정치자금, 뇌물, 업무상횡령’이라는 말이 꼬리를 물고 따라 온다.
우리 회사를 잘 봐달라고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건넨 것이다. 정치자금법위반죄나 뇌물죄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회사를 위한 일인데 업무상횡령죄가 언급되는 것일까?
그리고 회장님의 변호사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회사에서 부담할까?
대기업 회장님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마찬가지이다.
특히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회사를 개인 사업체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어 느닷없이 형사 책임의 굴레를 쓰게 될 수도 있다.
가지급금도 흔한 골칫거리이다.
가지급금, 회사를 위해 사용한 때도 있고, 대표이사가 잠시 빌려 사용한 것도 있다.
왜 문제일까?
이러한 의문점들은 CEO가 회사 자금을 집행할 때 마주할 수 있는 형사법적 위험에 대한 것들이다.
◆ 비자금, 그 자체로 횡령죄가 될 수 있다
회사의 모든 자금은 회계장부를 통해서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어려운 경우 자금을 장부 밖으로 빼돌려 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장부 외에서 관리되는 자금을 비자금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자금’보다는 부외자금(簿外資金)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법원은 ‘비자금’과 ‘부외자금’이라는 용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조세범처벌법위반, 외국환거래법위반, 대외무역법위반, 외부감사법위반(분식회계) 등의 범죄가 수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범죄들과는 별개로 비자금 조성 행위 즉, 회사의 자금을 장부 외로 빼돌리는 행위 그 자체를 업무상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보통은 비자금 중 CEO가 개인적으로 사용한 부분만 처벌하지만, 비자금 조성 행위 그 자체를 횡령행위로 보아 조성한 비자금 전체를 업무상횡령죄로 처벌하는 경우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모 그룹의 대표이사 A는 계열 건설사에 공사를 발주한 뒤, 공사대금을 부풀려 지급하고 이를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4년간 100억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
A는 이 중 일부를 직원 회식비 등 회사 업무에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검찰은 개인적으로 사용한 금액뿐만 아니라 비자금으로 조성한 100억 원 전체에 대해서 A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불법영득의사, 즉 불법적으로 타인의 재물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처분하려는 의사가 비자금을 조성하는 시점에 이미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비자금의 조성 동기, 방법, 보관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대표이사가 회계장부에서 자금을 분리하여 별도로 관리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결국 A는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금액까지 포함한 비자금 전액(100억 원)에 대해 횡령죄의 책임을 져야 했다.
◆ ‘회사를 위한 지출'이라는 위험한 착각
CEO는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금을 집행하지만, 법의 시각은 다를 수 있다.
특히 그 지출이 불법적인 성격을 띨 경우, '회사를 위한 행위'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내거나, 사업 편의를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또는 거래처 담당자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CEO 본인은 회사를 위한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의 잣대는 그렇지 않다.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대표이사가 회사 자금으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것이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거액을 기부한 점, 대표이사 개인의 인맥 관리를 위한 성격이 짙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순수하게 회사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범위 내의 지출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뇌물이나 리베이트의 경우는 더욱 명확하다.
대법원은 회사의 대표이사가 업무와 관련하여 회사 자금으로 뇌물을 공여하거나 배임증재(리베이트 제공)를 한 경우, 이를 오로지 회사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기업 활동은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범죄 행위를 수단으로 하는 자금 지출은 그 목적이 회사를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는 곧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대표이사의 변호사 비용을 회사가 부담해도 될까
CEO가 회사 업무와 관련하여 민·형사 소송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그 변호사 비용을 회사가 부담해도 되는지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원칙적으로 사건의 당사자가 회사가 아닌 대표이사 개인이라면 그 변호사 비용은 회사 자금으로 지출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그 법적 분쟁이 실질적으로 회사와 깊은 관련이 있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소송을 수행해야 할 특별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이다.
이사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법원은, 이사의 명예훼손 행위가 개인적인 위법행위에 불과하므로, 회사가 변호사 비용을 지원한 것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고 비록 주주총회 결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법한 지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법원은, 이사의 자격이 없이 이사의 업무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로 기소한 사건에서, 비록 이사 개인에 대한 사건이지만 그 내용이 이사 선임 절차의 적법성에 관한 것이다.
만약 그 이사에 대해서 유죄가 확정되면 다른 이사들의 자격과 이사회 결의의 효력까지 연쇄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형사 소송에 대한 대응이 실질적으로 회사의 업무 수행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비용 지원이 횡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회사가 형식적인 소송 당사자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대표이사 개인의 이익을 위한 소송이라면 회사 자금으로 비용을 지출할 수 없다.
법원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대표이사가 자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신주를 발행했다.
이에 대해 다른 주주가 신주발행무효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비록 회사가 소송의 당사자이기는 하지만 이는 대표이사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회사가 그 소송비용을 부담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소송의 형식적 당사자는 회사이지만, 그 실질은 대표이사 개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가지급금'의 편리함, 그 뒤에 숨은 형사처벌의 위험
'가지급금'이란 지출이 발생했으나 당장은 계정과목이나 금액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 임시로 처리하는 계정이다.
대표이사가 개인적인 용도로 급하게 돈을 사용하거나, 사전에 구체적인 용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비를 미리 집행하는 경우 가지급금 계정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관행이다.
대표이사가 회사 자금을 인출하여 사용한 후 그 용처에 대한 증빙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면 법원은 그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추단하여 업무상 횡령죄를 인정한다.
"나중에 정산하려고 했다"거나 "회사를 위해 쓴 돈인데 증빙이 없을 뿐이다"라는 항변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따라서 가지급금이나 전도금과 같은 임시 계정의 사용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며, 부득이하게 사용했더라도 지출 목적과 사용처를 명확히 밝힐 수 있는 객관적인 증빙(영수증, 계약서, 급여지급확인서 등)을 철저히 구비해야 한다.
가지급금의 실질이 대표이사가 사용한 대여금이라면, 연말에 대표이사 대여금으로 회계 처리하고 반드시 이자, 변제기 등을 정한 차용증을 작성해야 한다.
물론 정상적으로 이자를 지급하고 변제를 해야 한다.
비록 연말에 가지급금을 대표이사 가지급금으로 회계 처리를 했더라도, 이자, 변제기 등을 정한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았거나 차용증을 작성했더라도 이자를 지급하지 않거나 변제를 하지 않았다면 업무상횡령죄로 처벌될 수 있다.
이때 형식적인 요건뿐만 아니라 회사의 재무상태, 대여금 규모도 고려된다.
◆ 회삿돈은 남의 돈이다, 회계원칙대로 처리하자
CEO는 회사의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다. 회사 자금은 단 1원이라도 적법하게 지출되어야 한다.
비자금 조성, 불법적 로비 자금 집행, 불분명한 가지급금 처리, 개인적 소송비용의 전가 등은 CEO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위험한 유혹이다.
관행적인 자금 집행에 대해서 앞서 언급한 내용을 기준으로 점검해 보는 것도 유익할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금 집행의 적법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문이 든다면 반드시 사전에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수십 년간 쌓아온 기업의 명성과 대표이사 개인의 삶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제 변호사 프로필>
- 서울 상문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사법고시 44회 합격
- 사법연수원 34기 수료
-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검사
-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 (현) 법무법인 서울 변호사
- 세무사, 형사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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