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칼럼] “대통령님, ‘노년 담당관’도 만들어 주세요”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 노년 정책 컨트롤타워 시급 청년은 내일, 노년은 오늘… 둘 다 챙겨야 나라가 선다
【뉴스퀘스트=최석영 100세 행복 연구소장】‘고목불화(枯木不花)’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른 나무엔 꽃이 피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세상 이치가 늘 그러한 것만은 아닙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마츠시게 유타카)는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긴 사내지만 홀로 선술집과 작은 식당을 찾아다니며 낯선 음식을 탐험합니다. 나이를 먹어도 새로움을 향한 호기심과 삶의 의욕은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지요.
더욱 인상적인 장면은 약 10년 전 방영됐던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당시 70~80대의 원로 배우들이 배낭을 메고 낯선 유럽의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은 많은 국민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불편한 무릎을 부여잡고도 직접 지도를 펼쳐 숙소를 찾고, 작은 카페에 들러 와인을 나누던 그들의 눈빛에는 ‘나이’보다 더 큰 설렘과 활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세월은 분명 머리칼을 희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발걸음만은 청춘 못지않았습니다.
이렇듯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고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돌보느냐, 어떤 무대와 기회를 주느냐에 따라 고목에도 꽃은 다시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는 법입니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국가 구성원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불과 5년 뒤인 2030년에는 이 비율이 2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무게는 갈수록 커집니다. 현재 노년 부양비(15~64세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인구)는 25명 수준이지만, 2035년에는 4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연금과 의료·돌봄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고령자 빈곤율은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입니다. 일자리에서 밀려난 노년층이 다시 불안정 노동이나 극빈 상황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사회적 안전망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대통령실 내 여러 직위와 부서를 새롭게 정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러나 정작 노년층의 삶을 전담해 살피는 조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노년 정책은 보건·복지, 노동, 지역정책 등 부처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결과 정책의 일관성과 실행력은 떨어지고, 당사자의 목소리도 온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님께 건의 드립니다. 얼마 전 청년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전담 창구로 ‘청년 담당관’을 신설한 것처럼, 이제 노년 세대를 위한 ‘노년 담당관’ 을 만들어 주십시오. 단순히 자리를 늘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고령사회의 변화를 총괄·조율하며 연금 개혁·노년 일자리·건강 관리·세대 통합 등 복합 과제를 장기적으로 설계할 국가적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곧 닥쳐올 거대한 파도를 준비해 달라는 제언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청년이 씨앗이라면 노년은 뿌리입니다. 씨앗만 돌보고 뿌리를 외면한다면 나무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청년이 내일의 꿈을 이야기하듯, 노년 또한 오늘의 삶과 내일의 존엄을 이야기할 권리가 있습니다.
노년 담당관 신설은 곧 대한민국이 ‘미래만 바라보는 나라’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존중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균형 잡힌 나라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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