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 '불닭볶음면'에 빠진 평양, 참다못해 짝퉁제품 선보여
드라마‧화장 이어 K-푸드 인기끌어 한국산 포장까지 그대로 베껴 판매 김정은 엄포에도 한류 빠진 신세대 “딸 주애 아이돌‧볶음면 즐길 수도”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평양에서 가장 잘나가는 간판급 숙박시설인 고려호텔 엘리베이터에는 늘 안내원이 타고 있다.
언뜻 보면 과거 한국의 백화점 등에서 가고자 하는 층수를 눌러주고 안전운행을 책임지던 여성 안내원을 떠올릴 수 있지만 성격이나 목적이 전혀 다르다.
간부나 주민 뿐 아니라 해외 투숙객이나 관광객 등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감시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보고하거나 후속조치를 취하는 게 주임무다.
과거 남북회담이나 행사 취재를 위해 방북했을 당시 통일부 사전 교육 등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각별히 언동에 주의하라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무심코 우리 측 회담 전략이나 일정 등 주요사안을 입에 올렸다가는 안내원을 가장한 이들의 귀에 들어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엘리베이터 감시원 문제는 호텔만의 일이 아니다.
한 고위 탈북 인사는 필자에게 자신이 살던 평양의 고급 아파트에도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고위층이 사는 주거단지다 보니 정전 등으로 인해 운행이 중단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늘 안내원이 배치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년 여성인 이 안내원은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과자 등 소소한 물품을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는 게 이 고위층 출신 인사의 귀띔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한국 과자인 꼬깔콘이었다고 한다.
옥수수맛이 고소한 이 제품을 맛본 아이들이 사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사주곤 했고, 어른들도 심심찮게 사가는 일이 있어 나름 인기가 좋았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엘리베이터에서 한국 과자를 파는 데 무사할 수 있었느냐는 말에 이 고위층 출신 인사는 “워낙 힘세고 배경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오히려 보위부 등도 손을 못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평양 핵심부까지 파고든 ‘남조선 과자’ 고깔콘의 선전은 한류 문화가 북한 곳곳에 침투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기류를 반영한 듯 평양의 쇼핑센터나 상점 매대에는 한국의 조리퐁이나 양파링을 그대로 본뜬 게 확연히 드러나는 과자제품이 등장했고 점차 늘어가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K-푸드의 열풍도 거세게 불고 있다는 게 탈북민과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특히 불닭볶음면의 기세가 대단하다고 한다. 중국뿐 아니라 유럽국가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매운맛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북한 주민들이 푹 빠져 있다는 얘기다.
한국 라면의 맛에 끌린 주민들이 중국 등지에서 밀반입된 제품을 장마당 등에서 구입해 먹고 즐기던 데서 불닭볶음면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란 말도 들린다.
그런 인기에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북한이 한국산 불닭볶음면을 그대로 본뜬 제품을 선보였다.
북한의 식품브랜드인 ‘경흥’에서 생산한 불닭볶음면은 레시피 뿐 아니라 포장 디자인까지 그대로 베낀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한국산 제품을 한번이라도 접해 본 경우라면 북한 주민들도 짝퉁이란 걸 눈치 챌 수밖에 없겠지만 북한의 노골적인 짝퉁만들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북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류 드라마와 영화에 빠지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그들의 ‘남조선화’는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우선 말투가 바뀌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양상을 나타냈다.
북한 당국이 나서 젊은 여성들이 사귀는 남성을 ‘오빠’라고 부르는 걸 남조선풍이라고 비판하면서 “혈연관계도 아닌 것이 ‘오빠’라느니 뭐니 하며 부르고...”라고 단속과 처벌까지 가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청년세대의 한류 문화 탐닉과 동경은 K-드라마와 K-뷰티 등을 거쳐 이제 K-푸드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세대가 이렇게 무너지면 체제에 위기가 올 것이라며 경고하던 김정은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한국 영화‧드라마를 단순 시청해도 노동교화형(징역) 5~15년을 선고하는 가혹한 처벌에 나섰지만 한번 한류에 빠진 청춘들을 막아 세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남몰래 한류를 즐기는 북한 청소년과 청년층들은 김정은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한국의 가수와 걸그룹 등을 평양에 불러 공연을 보고 이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환대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때 아닌 한류 단속에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김정은의 12살 난 따라 주애도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장면이나 드라마‧영화를 보며 불닭볶음면을 즐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김정은 체제의 위기는 한미 합동 군사연습이나 군부 구테타, 건강 문제 등이 아니라 젊은층을 파고드는 오징어게임이나 불닭볶음면에서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