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칼럼] ‘고령운전’ 문제, 면허반납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최근 부천 제일시장 한복판을 고령자가 운전하는 1톤 트럭이 그대로 밀고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일어난 사고로 장날마다 그 길을 두 분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스무 명이 가까운 시민들은 순식간에 ‘사상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트럭 운전자는 67세. 차량 안에 스스로 달아둔 ‘페달 블랙박스’에는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꾹 밟고 있는 그의 발이 담겨 있었다. 사고 후 그는 ‘왜 브레이크 대신 엑셀에 발이 갔는지’ 조차 선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노인이 20%를 넘어 공식적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비례해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2030년 725만 명, 2040년에는 1000만 명을 훌쩍 넘길 것이란 추산도 나온다.
운전대를 잡은 어르신이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도로 위의 한 축이 되는 시대가 코앞까지 온 것이다.
흥미로운 건,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줄어왔는데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사고 발생 비중은 17.6%로, 전년 대비 1.9%p 증가하는 등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나이 먹으면 위험하니 운전을 그만 두라”는 사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고령운전자는 약 2% 남짓 불과하다는 통계다. 여기에는 “운전 못하면 병원도, 시장도 못 간다”는 노인들의 절실한 사정이 담겨있다.
노인운전 문제는 결국 ‘안전의 문제’이자 동시에 ‘이동권의 문제’인 셈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지 않으면, 어떤 해법도 오래 가지 못한다.
‘All or Nothing’은 너무 거친 방식
현재 우리 제도는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유지하느냐, 반납하느냐 두 가지만 놓고 고민한다. 말 그대로 ‘All or Nothing’이다.
현행 제도는 ▲65세 이상은 5년, 75세 이상은 3년마다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하고 ▲인지능력 자가진단을 포함한 교육 ▲기준 미달이면 면허 취소, 아니면 그대로 유지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실제 운전능력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야간 시야가 급격히 떨어진 분도 있고, 고속도로 합류나 차선 변경이 특히 두려운 분도 있다. 반대로 좁고 복잡한 도심보다, 집 근처 왕복 2차선 도로만 평생 다닌 분도 있다.
운전면허의 보편적 원칙은 이미 우리 제도 안에 적용되고 있다. 1종·2종, 대형·소형처럼 ‘운전능력에 따른 차등 허용’이다. 다만 이 원칙이 고령자에게만 유독 적용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검토 중인 ‘조건부 면허제’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운전 능력이 일정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야간 운전 금지 ▲고속도로·자동차 전용도로 운전 금지 ▲시·군 단위 등 일정 구역 내 운전 허용 같은 조건을 붙여 면허를 유지하게 하자는 발상이다.
이 제도를 고령자에 대한 ‘제재’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완전한 박탈 대신, 안전을 고려한 제한적 허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노인 친화적 제도로 보인다.
“아버님은 야간·고속도로만 피하시면 충분히 안전하게 운전하실 수 있습니다”, “이 구역(지도 표시) 안에서 낮 시간대에만 운전 가능하십니다”처럼 구체적인 제한을 받더라도, 스스로 위험을 줄여가며 운전할 수 있다면 고령자들도 충분히 이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면허 반납’만 외치는 사회는 불친절
“고령 운전자 면허를 다 반납시키자”는 주장은 일견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말 뒤에 반드시 따라야 할 질문이 있다.
“그럼 이분들은 어떻게 병원에 가고, 어떻게 마트에 가며, 어떻게 친구를 만나러 갈까요?”
대중교통이 촘촘한 도심에 사는 노인과, 버스가 하루 몇 번밖에 오지 않는 농어촌 노인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버스가 끊기는 오후 8시 이후, 택시조차 잘 잡히지 않는 새벽의 응급실, 비 오는 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 마을 어르신들. 이분들에게 운전면허는 단지 ‘편리함’을 넘어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따라서 사회가 “면허를 내려놔라”고 말하려면, 동시에 대안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농어촌·도시 외곽의 수요응답형 교통(DRT) 확대나 고령자 대상 저렴한 콜택시·바우처 제도 강화, 일정 나이 이상 고령층을 위한 ‘이동 도우미’ 서비스(동행 지원, 병원·관공서 동행 등) 등이 있냐는 것이다.
노년의 운전자는 언젠가의 ‘나’이다. 오늘 시장 길에서 차에 치일 뻔한 40대 보행자는, 30년 뒤 운전대를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70대 운전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노인 문제’가 아니라 ‘세대 전체의 미래 문제’다.
칼럼을 쓰며 자료를 찾다 유튜브에서 본 한 어르신의 자조 섞인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면허증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이, 내 인생에서 제일 슬펐어요. 앞으로는 누구한테 부탁하지 않으면 어디도 못 가는구나 싶어서요.”
우리가 만들어야할 사회는, 이 분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제는 핸들을 놓으셔도 괜찮습니다. 대신 우리가 다른 길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여전히 혼자 병원도 가시고, 장도 보시고, 친구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 '뉴스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