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정치 이야기보다 '지구 살리는 100가지 방법'에 대해

【뉴스퀘스트=이윤진 ESG 연구자 겸 운동가】 지난 추석 당일, 기상청은 100년 만에 가장 둥근 달이 뜬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지구와 달이 일직선이 되면서 가장 크고 둥근 달을 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추석은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이 더운 여름을 겪은 후 잘 익은 곡식과 과일을 수확할 계절에 들어서며 풍족함 가운데 즐기는 날이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추석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절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추석 당일 아침 일찍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차례가 끝나고 난 후에는 차례상에 올렸던 음식을 나누어 음복한다. 현대에 들어서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많이 줄었지만 멀리 흩어져 살던 가족, 친지가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풍속은 여전하다.

요즘 추석에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화기애애하게 웃음꽃을 피울 거라는 즐거운 상상에 앞서 ‘추석 때 하지 말아야 하는 말’과 같은 암묵적 불문율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추석에 묻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주제는 입시, 취업, 결혼이다. 올해에는 추석 금기어 3가지로 다 너 잘 되라는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말이야가 제안되었다.

남의 감정에 무관심한 채 그런 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라는 게 젊은 세대가 설명하는 금기어의 이유다.

명절에 언급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주제가 하나 더 있다. ‘정치’다. 가족 내에서도 정치에 관한 의견이 달라 가족 간 싸움으로 번져 감정이 상하기 쉽다.

추석에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미국에서도 나온다. 작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미국 퀴니피악 대학에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에 정치 이야기를 피하겠다는 미국인의 응답은 66%로 높은 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추석은 어땠을까? 올해 추석 기간에 쏟아진 국내 정치 관련 기사(빅카인즈 기사 검색, 주요 일간지와 경제 일간지 기준, 2022.9.9.~12, 검색어: 윤석열, 이재명 등)는 총 1,873건으로 같은 기간 전체 기사 8,315건의 22.5%를 차지한다. 추석 전 4일간 총 기사 30,889건에서 정치 관련 기사 5,313건이 차지한 비율인 10.4%보다 기사 건수가 대폭 늘고 비중이 높아졌다.

필자가 관여하는 ESG 기사 건수를 검색했더니 같은 기간에 72건으로 추석 전 556건의 13%로 줄어들었다. 또한 정치 기사 대비 추석 전 10.4% 추석 때 3.8%로 줄었고, 총 기사 대비 추석 전 1.7%에서 추석 때 0.8%로 감소했다.

기사 건수뿐 아니라 검색어 빈도수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다. 국내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단어 검색 빈도수의 상대적인 변화를 살펴봤을 때 기간 중(2022.9.5.~2022.9.12.) 최대 검색 빈도수를 기록한 정치 관련 단어를 100이라 할 때 때 추석 전 ESG 관련 단어는 13.25, 추석 때 5.25로 기사 건수 비율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올해 추석 밥상에 정치 이야기가 많이 올랐을 것이고 가족 간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어땠는지 로르지만, 추석밥상의 민심을 노리는 정치권이나 이런 의도에 편승한 언론의 의도는 그랬다고 보인다.

이윤진 ESG 연구자 겸 운동가

몇 년 전 회자된 어느 칼럼은 ‘피하려 했지만 피하지 못한 질문’에 대해선 근본적인 질문으로 반문하라 제안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되물어라.”라는 김영민의 칼럼은 “정체성에 관련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석을 맞이하여 정겹게 모인 가족과 ‘지구를 구할 수 있는 100가지 방법’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생뚱맞을까? 어차피 금기어가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주제가 많으니 우리 공통의 이야기를 여러 세대가 나누는 게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추석이 지났다고? 뭔 걱정인가. 설도 있고 명절은 곧 돌아오고 달은 매일 다시 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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