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김형준 본지 편집위원

거의 모든 한국인이 아이들의 교육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한 시간에 수백만원 씩 지불하며 고액 과외를 시키는 가정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근본적으로 우리 국민의 교유에 대한 열정을 긍정적으로 본다. 오늘날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열정이 가져다 준 소산인지도 모른다. 밥은 굶어도 자식 교육은 시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기본적인 가치관이었다. 그것이 도를 지나쳐 돈으로 대학을 보내려는 파렴치한 모습까지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주 일부에 불과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기형적인 교육 형태, 즉 고외 과외나 부정 입학 등은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사회가 제대로 받아 주지 못해서 생긴 결과다. 물론 거기엔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의 가치관과 도덕성 문제가 있겠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사회 구조에 있다. 대학은 철저하게 서열화 돼 있고, 그 서열이 출세의 잣대가 되는 현실. 이것이 도덕성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은 완전히 뒷전이고, 어쨌든 기를 쓰고 명패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출세의 갈림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학벌주의에 빠져 있는 기업들이 유발한 것이다. 개인의 실력은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학벌만 보고 채용하는 잘못된 채용 방식이 그 원인이다. 말하자면 기업이 대학을 병들게 하고 국민을 파렴치한으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기업은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이런 사실을 재빨리 감지한 기업은 이미 입사 원서에 학력을 기재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모든 기업이 실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현상은 시대의 대세임은 분명하다. 오래지 않아 취업 문제와 대학 간판은 별개의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기업 입사 원서에 학력 기재란을 없애는 것을 법으로 정해서라도 반드시 이뤄야 되는 일이다. 그래야만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그 엄청난 열정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한국인의 학력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수준은 형편없다. 학벌만 좋을 뿐 그 내용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한국인의 지나친 교육열을 비판하고 있다. 교육 과열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지적은 방향이 틀렸다. 문제는 지나칠 만큼 높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교육 구조다. 만약 교육 구조만 제대로 이뤄져 있다면 한국인의 교육 열정은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조원혁 한국행정연구소 박사후특별연구원 등 5명이 지난 8월 말 발표한 논문 ‘정부경쟁력의 국제비교 : 구성지표와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육 분야는 충격적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열만큼은 한국이 세계에서 알아준다고 하지만 정부경쟁력으로 넘어오면 다른 나라 얘기가 된다. 전체 순위에 비해 4계단 뒤인 20위를 기록한 이유로 논문에서는 “의외로 사교육이 득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점이 흥미롭다. 한국 내 경쟁적인 교육열과 사회적 분위기에 비해 실질적인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부의 대응이나 노력이 낮다는 것이다.

한때 한국인의 교육열이 자랑스러웠고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사례들이 소개될 때마다 흐뭇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량 생산식 집단 교육의 현 행태를 버리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수천명의 학생을 한 학교에 몰아넣고 천편일률적으로 학생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이 같은 교육 제도 속에서는 개인의 개성이나 능력이 발휘될 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 이런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오직 교과서를 기계처럼 반복하는 일 뿐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육의 부재, 그리고 역사 왜곡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에 ‘원칙’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교육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산업화와 대량 생산 구조에 적합한 인력 양성을 위해 만든 것인 까닭이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조상의 유산이다. 그 속에는 양반이 되지 못한 조선 민중들의 한이 숨어 있고, 세계에 눈을 뜨지 못해 일본에 짓밟혀야 했던 눈물어린 자각이 도사리고 있으며, 폐허 위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외치던 처절한 울음이 있다. 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남다른 열정은 이런 자각의 결과다. 이 위대한 자산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육 구조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는 지금보다 더욱 작아져야 하고,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탈바꿈 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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