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 탈미국화 노선 ‘선언’, 그 속내는

[트루스토리] 이소연 기자 = 최근 일본 안에 탈(脫) 미국화 경향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에게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부 지도층 인사들의 호소는 예상 밖의 뜨거운 지지를 얻고 있다.

일본 참의원은 지난 15일 자위대의 해외 일본인 수송을 용이하게 하는 자위대개정법을 가결했다. 아베는 강한 자위대를 연일 역설하고 있다.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이지만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라고 명시된 평화헌법 때문에 자위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 일본의 자위대법은 방위·치안 출동이나 해상경비행동 등 대응이 가능한 사태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적시하고 있다. 자위대는 이 ‘허용 목록’에 해당되는 행위만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자위대의 영향력 행사 범위를 해외로까지 연장할 수 있게 만들어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합법적 길을 터놓았는가 하면, 애국심에 호소해 역사를 교란시키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 언급과 관련, 19일 “일본에서 안중근은 범죄자”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외부에서 군국주의의 부활을 염려하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시각으로 볼 때는 단지 국제사회에 지고 있는 책임에 따라 그에 걸맞은 권한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경제 거인, 정치 난쟁이’에서 ‘정치대국, 군사대국’으로 면모일신하는 데서 북한과의 과거청산은 필수 선결사안이다.

2차대전 주축국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은 다른 주축국인 독일, 이탈리아와는 달리 ‘과거청산’에 소극적 태도를 그간 보임으로써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의 염원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최근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의욕을 피력했다. 그는 “일본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밖으로는 유일하게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국가로 남아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안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독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에서 미국보다 앞서 선수를 친 적이 있다.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이 이뤄진 1972년, 그 해 9월에 일본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정작 굳게 닫힌 ‘죽의 장막’을 열어젖힌 주인공이었던 미국은 7년이나 지난 1979년에야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선수를 쳤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압력과 견제, 수모를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일본은 이제 다시 북한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품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나름대로 깊은 타산이 없고서는 보일 수 없는 행동이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서 또 하나의 변수인 한국도 이 부분에 대해선 ‘찬성’의 입장인 까닭에 이제 조일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양측의 정치 군사적 과거청산이다. 북한은 일본에 대해 ‘적대시 정책, 압살정책’을 포기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은 북한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체제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이 아무리 ‘독자노선’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뛰쳐나오기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일관계가 정상화되려면, ‘삼각군사동맹’이 해체되어야 하고, 군사동맹의 해체는 한반도 냉전구도의 해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일관계 정상화 역시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와 불가분리의 관계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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