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정상국가를 넘어 강한국가로의 진화(進化)에 나선 일본

정상국가(보통국가로 불리기도 한다). 참으로 좋은 표현이다. 이 말 자체를 갖고 시비걸기는 대단히 힘들다. 그러나 일본이 추구하는 정상국가는 대단히 위험한 함의를 갖고 있다. 일본인들이 설정하는 ‘정상국가’의 기준은, 안타깝게도 그리고 분노스럽게도, 대동아공영권의 명분으로 침략의 길을 걸었던 과거 일본 군국주의이다. 평화헌법으로 대표되는, 군대도 보유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국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정상국가론의 본질이다.

정상국가를 위해 일본인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이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교전권을 배제해왔는데,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교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은 교전권 행사의 구체적 표상이다. 전쟁을 할 수 없는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면서 최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설치에 성공했다. NSC의 설치는 전쟁과 관련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상설기구가 마련된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정상국가의 완성이다. 이제 일본은 정상국가를 넘어 강한 국가로의 건설로 매진할 것이다. 1월 1일 아베는 신년사를 통해 강한 국가의 기치를 걸었다. “강한 일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이제 막 시작했다.” 신년을 며칠 앞둔 시기에 아베가 주변국의 반발을 충분히 예상하면서까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강한 일본’의 기치를 내 걸기 위한 정치적 수순이었다. 일본 내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것이 ‘강한 일본’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공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에는 미국이 배후에 존재한다. 군사외교적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정책(Pivot to Asia)은 ‘정상국가 일본’ 더 나아가 ‘강한 국가 일본’을 필요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범국 일본’의 해체를 추진했던 미국은 냉전이 격화되면서 ‘전범국 일본’의 존속을 꾀하는 정책 변화를 모색했다. 이른바 사회주의권의 ‘봉쇄’를 위해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서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천황제가 살아남았고, 전범의 후예들이 권력을 다시 장악했다.

중국이 G2로 부상하고 있는 21세기 국제 현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미국의 대일본 정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리처드 아미티지와 조셉 나이가 2012년 8월 15일 일본의 방위 책임범위를 확대하고, 미일 군사협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책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련 봉쇄에서 중국 봉쇄로 미일 동맹의 봉쇄 대상 국가가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 ‘정상’국가화에 날개를 달아주는 한국의 ‘비정상’ 외교
 
한국과 일본은 남수단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었다. 남수단에서 내전이 격화되고 군대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한국군 파견부대인 한빛부대는 일본군에게 실탄 지원을 요청한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유엔사령부를 통한 간접 지원이라는 초기의 해명은 ‘유엔사령부의 지시로 일본군에게 요청했다’는 뒤늦은 실토로 거짓말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자국군의 신변이 위태로운 지경에서 일본이 되었건, 미국이 되었건, 혹은 제3국이 되었건 부족한 실탄을 잠시 지원받는 것이 무슨 큰일이냐고 혹자들은 묻는다. 실탄 지원 자체만 놓고 본다면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실탄 지원과 관련한 이 문제는 실탄 지원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2012년의 두 가지 사건을 돌아본다면 실탄 지원 문제가 갖는 심각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2012년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안을 즉석 안건으로 상정해 통과시키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중단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이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협정 명칭에서 ‘군사’를 빼기도 했고, 주관 부처를 국방부에서 외교부로 옮기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명박 정부는 이 협정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임기를 마쳐야 했다.
 
둘째,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일본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해양안보상의 전략적 핵심”이라고 규정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미일 3개국의 군사적인 관여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일군사협정의 원만한 체결을 위해 “일본은 역사문제를 직시하고 장기적, 전략적 전망에 기초해서 한국과의 연계를 고려하여 정치망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까지 했다.
 
물론 이 두 가지 사건이 한국군에 대한 일본군의 실탄 지원이 한일 군사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사전 포석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한국과 일본 양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목적이나 의도를 갖고 실탄 거래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의도나 목적과는 다르게 한일 간의 실탄 지원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것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집단적 자위권 보유 등 일본의 ‘정상국가화’에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를 갖는 것은 더욱 자명하다. 특히 일본은 한일 양국의 실탄 거래를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논거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방위성이 한일 파병부대 사령부 사이의 영상통화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한국군이 일본군에 직접 실탄 지원을 요청한 사실을 부각시키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불과 며칠 전 아베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정상국가’ 일본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우경화와 일본의 정상국가화가 만나는 그 지점이 일본 군국주의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한일 실탄 거래는 ‘정상국가’로 포장되는 일본의 우경화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일본의 정상국가화가 결국 중국 봉쇄를 목적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 체계 구축으로 나아간다면 한일 실탄거래는 한국 외교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 또한 크다. 이같은 한국 외교를 정상 외교로 치부하기엔 그 위험성이 너무 큰 것이다.

장창준 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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