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편지로나마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사랑해 잘가' [사진=연합뉴스]
'사랑해 잘가'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오광수 대중문화 전문기자 】가을이 깊어간다. 아름답고 행복해야할 가을이지만 '이태원 참사'가 우리를 한없는 슬픔 속으로 몰아넣는다.

눈을 질끈 감아도 악몽 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이럴 때는 노래도 위안이 된다. 특히 가을을 노래한 곡들을 차분하게 듣다보면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은 2015년 갤럽 조사에서 '가을 하면 생각나는 노래' 1위를 차지했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제친 결과였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우리네 마음 속에서 코스모스는 귀뚜라미와 함께 '가을의 전령사'가 된 지 오래다. 가을이 되면 지천으로 피는 꽃이긴 하지만 볼 때마다 늘 반갑고 정겹다.

‘빨간 구두 아가씨’,'조약돌' 등의 노랫말을 쓴 하중희가 작사하고, KBS 관현악단장이자 <가요무대> 지휘자였던 김강섭(지난 8월 작고)이 작곡했다. 1967년 지구레코드에서 만든 편집 음반인 김강섭 작곡집의 머릿곡으로 수록됐다.

김상희는 1961년 KBS 전속 가수에 뽑힌 뒤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로 데뷔했다. 고려대 법대 재학 중에 가수 활동을 시작하여 최희준(서울대 법대)과 함께 대표적인 학사 출신 가수로 불렸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최순강이라는 본명 대신 예명을 쓰면서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해야 했다.

서정성 짙은 노래만 불러온 그녀였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시련도 있었다. 1980년대엔 KBS PD 출신 남편 유훈근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 공보비서관 출신이었기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2007년에는 대학입학 동기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세현장에 얼굴을 보였다가 한동안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가을의 얼굴을 한 여가수들이 부른 노래도 있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

어쿠스틱한 느낌이 넘쳐나는 '가을 아침'을 듣다 보면 양희은과 아이유가 동시에 떠오른다. 창법은 다르지만, 노래의 감칠맛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아침 이슬' 20주년 기념 음반 ‘양희은 1991’에 담긴 이 노래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양희은의 역작이었다. 서른에 자궁암, 서른여덟에 자궁근종을 겪고 뒤늦게 결혼한 양희은이 40세에 내놨다.

당시 뉴욕에 머무르던 양희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기타를 공부하던 이병우를 불렀다. 조동익과 함께 포크그룹 '어떤 날'의 멤버로 활동했던 이병우는 기타 한 대만 들고 뉴욕으로 날아왔다.

두 사람은 밤을 지새우며 곡을 쓰고 하루 만에 녹음했다. 이병우는 이 노래를 두고 “어떤 영감을 받아서 만든 곡이라기보다 시간에 쫓겨 만들어서 듣는 분들한테 죄송스럽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이병우의 기타와 양희은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명반 대열에 올랐다.

아이유는 2017년 두 번째 리메이크 음반 '꽃갈피 둘'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영악하게도 원곡보다도 더 담백하게 부르면서 어쿠스틱한 분위기를 살렸다. 편곡을 맡은 기타리스트 정성하와 하림의 틴 휘슬 연주가 옅게 깔렸을 뿐이다.

김창완과 함께 부른 산울림의 '너의 의미’에서 그 가능성을 보였던 아이유는 작은 호흡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로 동세대는 물론 양희은에 익숙한 전 세대들도 사로잡는다.

편지와 가을이 어우러진 노래도 많다. 세대별로 다르겠지만 올드팬들은 '가을 편지'를 맨 먼저 떠올릴 것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로 이어지는 가을 노래의 대표주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은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였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는 어니언스의 임창제가 작사·작곡한 곡이고, '편지를 썼어요. 사랑하는 나의 님께/ 한 밤을 꼬박 새워 편지를 썼어요'는 이장희가 만들고 불렀다.

두 곡 모두 '편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노래다. 동물원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는 가을과 편지가 어우러진 노래의 백미다.

'난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1988년 이들의 2집 타이틀곡으로 발표되어 청춘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훗날 김광석이 다시 불러 더 유명해졌지만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를 거듭하면서 사랑받고 있다. 연세대 의대 재학 중이던 동물원 멤버 김창기가 시험 전날밤 쓴 곡이었다.

편지가 이메일로 대체되던 시대에도 편지를 소재로 한 노래가 이어졌다. 김광진의 '편지'와 아이유의 '밤 편지'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김광진)로 이어지는 노랫말이 소월의 시와 맥을 같이 한다.

오광수 대중문화 전문기자
오광수 대중문화 전문기자

김광진의 아내 허승경이 쓴 가사로 연애 시절 겪은 절절한 사연을 담았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사랑한다는 말이에요'라고 속삭이는 아이유의 노래도 마치 손편지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만하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젊은 영혼들에게 손편지라도 쓰고 싶다. 그 어떤 것들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유족들과 희생자의 친구들에게도 긴 편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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