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왕·빌라왕’ 사건으로 불거진 전세사기...피해 속출
불안한 세입자들, 정부의 실질적 '피해구제 대책' 요구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정부의 세입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정부의 세입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동호 기자 】 집을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내 집 마련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소위 ‘영끌족’이 넘쳐났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심리적·상황적 변화다.

원인은 금리 인상에 따른 집값 폭락에 있다.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자 대출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살고 있거나 보유하고 있는 집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집값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내년에 전국적으로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30여만 가구의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 집값 하락세는 속도를 더 할 전망이다.

집값이 떨어지자 이참에 내 집을 장만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신축 아파트가 늘어나면 집값이 더 떨어질텐데 지금 뭐하러 사느냐”는 주위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공급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부동산 시장 속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내년 입주 물량이 늘어나면 집값은 물론 전세가 하락세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 강남권에 역대 최대 입주 물량이 예고돼 있어 전세가 하락폭이 더 커질 전망이다.

문제는 ‘역전세난’으로 세입자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곳곳에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 현상이 생겨나면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전세왕·빌라왕’ 사건으로 불거진 전세사기는 연말 많은 세입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들은 수십 채에서 많게는 1000여 채에 달하는 집을 대부분 전세 보증금을 이용(갭투자)해 구입하거나, 집값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은 뒤 차액으로 또다른 빌라를 사들였다. 하지만 이들 임대인이 사망하거나 잠적하면서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해진 상황이다.

특히 임대인이 사망하면 전세보험에 가입한 피해자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대위변제)받는 데 어려움이 많다. 임차인이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해야 HUG의 대위변제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임대인이 사망하면 상속인 모두에게 상속포기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같은 절차를 모두 밟기 위해서는 오랜시간(1년 넘는 경우도 있어)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소요되는 경비도 모두 세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전세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들은 사정이 더 딱하다. 경매를 진행해 낙찰자를 구하거나 본인이 직접 낙찰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대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경매가 지연되고, 선순위로 잡힌 미납 세금 때문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매가 진행돼도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아 낙찰이 된다해도 실제 돌려받는 보증금은 턱없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집값 하락도 이같은 대책이 약발을 받으면서 얻어진 효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집값 하락은 깡통전세, 역전세난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전세사기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서민들과 젊은이들의 꿈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다.

29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에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에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전세계약 체결 직후 집주인의 해당 주택 매매나 근저당권 설정 등을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임대인에게는 전세계약 전에 임차인에게 세금 체납 사실이나 선순위 보증금 규모 등의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부여하는 등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대책이 깡통전세 등 실제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모든 경우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 전세사기에 큰 효과를 발휘할 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세사기는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 꿈을 빼앗는 것은 물론 부동산 시장의 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악질적 범죄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오는 30일 국토부에 '전세사기 전담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전세사기 전담 대응 조직(TF)을 출범시켜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를 신속하게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소통과 피해구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세입자들이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해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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